여유미
한나 / 수필
평화로운 주말에 느긋하게 커피 한잔을 하고는 배낭을 메고 발이 가는 대로 문을 나섰다.
다리 란간에 이르러 허공에 매달린 왕거미를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풀잎에 엎드린 풀벌레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스르륵 길 건너가는 뱀의 그림자 보고 화들짝 놀라서 뛰는 가슴을 한참 진정시켜야 했다. 락엽이 덮여있는 땅이 파헤쳐진 자리를 보고는 메돼지가 한 짓이 아닌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눈앞에서 후닥닥 튕기는 꿩 한마리 때문에 뒤로 자빠질 번하기도 했다. 보아하니 열한개 꿩알이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사람이 코앞에 다가갈 때까지 알을 지키고 싶었을 어미의 마음이 엿보였다. 락엽 몇장 더 가려주고 여유작작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여유, 이런 우아한 단어가 내 지난 세월의 사전에 기록되기나 했던 걸가?
2017년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의 주말을 리용하여 서울 둘레길-총길이 157km(도합 8개 코스로 됨)를 도보로 완주한 적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는 해설원들의 인도하에 한양 도성길을 완주한 뒤 내친 김에 등산 전용신발을 구매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나 홀로의 도보길이였다. 각 구간에 빨간 우체통 형태의 스탬프시설이 설치되여 28개 스탬프를 전부 받아가면 둘레길 완주가 인정된 것이다. 157km, 계산해보면 연길로부터 화룡까지의 왕복거리보다 조금 더 긴 려정이다. 주말에만 진행하는 탐방길이기도 하지만 이른 시일내에 완주할 욕심 때문에 곁눈 하나 안 팔고 무슨 경합이라도 하듯 부리나케 코스를 찾아서 급급히 발걸음에 박차를 가하기만 했었다. 구간마다 스탬프위치를 확인하기에 급급했고 말이 둘레길이지 경사도가 꽤 있는 데다가 인적이 없는 형제봉(제8코스인 북한산北汉山 코스에 속함)을 넘을 때는 무서움에서 오는 각종 상상이 더해져서 미친 사람처럼 산봉우리를 뛰여올라갔다가 한달음에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7년이 지난 지금에 돌이켜보니 남은 것이란 달랑 사진 몇장과 인증서와 큐빅이 박힌 완주 기념배지가 전부였다. 그 157km 되는 긴 거리에서 보고 느꼈던 감동이나 아쉬움 등 감성의 편린들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숲길, 하천길, 마을길을 련결한 이 둘레길은 자연생태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도보길이여서 누구나 천천히 산책하면서 여유와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였다. 구간별로 사찰, 유적도 있어 천천히 둘러보면 많은 공부가 되겠건만 이런 과정을 말 타고 꽃구경 하는 격으로 휙휙 스쳐지나가 버렸으니 대추를 통채로 삼키는 것과 다를 바 있으랴? 과정이 결과 못지 않게 중요함을 그 때는 왜 몰랐을가? 그 정도의 여유가 내게 없었단 말인가?
그 뒤 매번 등산시에도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된 모습에는 경황이 없었고 정상에만 눈을 두고 오르고 또 올랐다. 오로지 정상이 등산의 유일한 목적이듯이, 정작 산꼭대기에 올라서 보면 바람이 세차고 드디여 정상에 발도장을 찍었다는 후련함만 클 뿐 길에서 빨리 올라야겠다는 리유로 나를 향해 웃어주는 풀들과 작은 꽃들에 눈을 맞춰본 적이 몇번이나 되였을가? 나는 과연 무엇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을가? 정녕 한조각의 조그마한 여유도 없이 마음에 다른 그 무엇으로 그득 차있었단 말인가?
광동에서 일하던 때 나는 일년에 한번씩 명절에만 집에 와서 어린 딸아이를 품에 안아주고 다시 일하러 갔었다. 떨어지기 싫어하지만 생떼를 안 부리는, 너무 이르게 철들어버린, 내 눈치마저 봐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딸애를 떼여두고 다시 일터로 향했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딸애와 일상을 같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때에는 왜 몰랐을가? 지금 보면 고맙게 잘 커준 딸애지만 커가는 과정에 학교의 모든 행사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이모가 대신해주긴 했어도 아이의 마음속에 엄마의 자리는 정녕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왜 인지하지 못했을가? 늘 바빠서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 속에 파묻혀 헤여나오지 못한 나는 그 때 왜 미처 못 느꼈을가? 밖에서 떠돌아다니던 20여년 사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곁을 못 지켜드렸고 조카들 결혼식에도 늘 회사의 피치 못할 중요한 사정이 겹쳐서 축의금만 보냈다. 지금 시장에서, 길거리에서 부모님 닮으신 분들을 보면 눈가가 젖어오르고 가슴이 먹먹하여 그 분들에게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최대한 도와드리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나의 부모님의 생전에는 곁에서 흰 머리카락 한가닥 뽑아드리거나 어버이날에 랭면 한그릇 사드리거나 엄마 곁에 나란히 누워서 조곤조곤 일상을 이야기해드리린 적이 없다. 나는 그 사이 왜 여유가 그처럼 없었을가?
이제라도 여유를 즐겨야지 생각한다. 여유가 있어야 마음에 해빛이 그득 차서 구경한 경치도, 받은 감동도 배가 되는 법이다.
은은한 벼꽃 향기와 눈이 까만 감태와 얼굴 빨간 꽈리를 따 입에 넣으면서 동년시절도 그렸다. 시장에서 구매한 개암 한주머니를 배낭에 챙겨서 산기슭에 좌르륵 쏟으며 다람쥐밥이 되거나 몇년이 지나면 푸르러질 개암숲을 상상했다. 하늘이 한결 높아져 더더욱 말갛고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주말 등산에 심취한다.
(전문을 읽으시려면 아래 문자를 누르십시오.)
[책임편집:리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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