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2024년 제5호 | 주향숙朱香淑-말이 되지 못하는 것들(수필)

文摘   文化   2024-10-14 08:01   吉林  

종이잡지-수필


말이 되지 못하는 것들

주향숙 / 수필

휴대폰을 열고 문자를 쓰고 보내려다가 머뭇거린다. 다시 지운다. 나는 지금 명확하게 무언가를 적고 싶고 전달하고 싶다. 그런데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그러기만 여러번을 반복한다. 결국 따로 흩어져있는 자음과 모음만 망연히 바라본다. 내 속에 머무는 내용들은 뚜렷한 의미의 단어로 적히지 못한다.

물끄러미 자모음으로 배렬된 자판만 바라보며 앉아있으려니 말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내밀한 죄는 혼자만의 것으로서 결코 말로 고백하지 않는다. 어떤 불행은 자기만의 것으로서 나눌 수 없다. 어떤 야비한 생각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않고 건너가려 한다. 그렇게 내밀한 것이 큰 것이다. 내밀한 사랑, 내밀한 아픔, 내밀한 수치, 내밀한 고독, 내밀한 비겁함, 내밀한 허위, 내밀한 잔인함… 남에게 절대 꺼내보일 수 없는 것, 그래서 완전히 자기에게만 속하는 것,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다. 말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말이 된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속내를 다 보여주지 못해서, 누군가 알아주지 못해서 가끔 억울하고 괴로울 때도 있겠지만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을 수 있고 속속들이 투시할 수 없어서 어떤 경우에 우리는 덜 슬퍼하고 덜 실망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자신의 속에 숨겨진 채 우글거리는 것들을 멀찍이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낯 뜨거울 때가 많다.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은밀하게 심층에 남겨진 생각들이 투시되지 않아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말이 되는 것은 또한 얼마 만큼 진실일 수 있을가? 아무리 표현력이 뛰여나더라도 유일무이한 표현으로 적확하게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흔히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부족하거나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흐름에 맞춰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거짓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려고 애쓰는가? 자신도 말하고 타인도 말한다. 요란을 떨기도 하고 비밀스레 수근대기도 한다. 시간도 벗어나고 공간도 벗어난다. 말해야만 직성이 풀려한다. 말하지 않고서는 몸까지 불편해한다. 사실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생리학적으로 따져도 해가 되는데도 말이다. 말해야 누군가 알아준다고 생각한다. 벙어리 속은 난 어미도 모른다고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말은 없다. 말해야만 자신이 존재하는 듯 착각한다. 말로써 세운 존재는 말이 흩어짐에 따라 부서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이나 더우기는 말하지 말아야 좋은 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은 또 한마디의 말에 얼마나 쉬이 현혹되는가? 말 한마디에 누군가에 대한 믿음을 뒤집기도 하고 함부로 욕하거나 비난한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아파하고 절망한다. 말 한마디에 의심하고 결론 짓고 다시 허무해진다.

말을 배우고 익혀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 말하는 것의 고단함 때문에 우리는 많은 말들을 안으로 끌여당겨 살아가는 경우가 생기는지 모른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이미 준비되였으나 말하지 않은 것들도 있고 의식하지 못해서 아예 준비조차 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만 외면하려 애쓰는 것도 있다. 그 많은 것들을 우리는 안고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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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향숙朱香淑-말이 되지 못하는 것들(수필)

[책임편집:리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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