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호련정
허만석 / 단편소설
호수 건너 동산 우에 방금 떠오르는 황홀한 아침해살이 송화호 수면 우에 붉은 빛발을 뿌리고 그 빛발은 길고도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호수의 동쪽 기슭에서 서쪽 기슭의 수면에까지 길고도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하다.
오늘도 한없이 자애로운 대자연은 창생들에게 공기도, 물도, 해빛도 공짜로 공급해주고 있다. 자비로운 대자연이 송화호 서쪽 기슭에서 동쪽 언덕으로 작고 낡은 쪽배를 저어 공부하러 가는 두명의 소학생을 어여쁘게 봐주며 물길에 붉은색 카펫을 펴놓은 것만 같았다.
호수의 서쪽켠 후미진 기슭에 색바랜 람색 옷에 머리숱이 더부룩하고 생김새가 다부진 십대 소년과 단발머리에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은 눈동자가 머루알 같이 맑은 소녀가 나란히 작은 쪽배를 물 속으로 밀고 있었다.
반달모양으로 만들어진 나무배는 길이가 서너발 쯤 되는 작은 쪽배였는데 낡았지만 동유기름칠이 잘되고 틈서리가 튼튼한 아직 쓸 만한 배였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쪽배를 타고 아침해살이 두둥실 떠오르는 송화호 서쪽 후미진 기슭에서 동쪽 언덕우에 덩그렇게 자리잡은 향정부마을로 향해 노를 저었다. 거기에는 그들이 공부하는 중심소학교가 있다. 둘은 작은 마을에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초급소학교를 다니고 송화호 동쪽편에 있는 큰 마을의 중심소학교에서 6학년까지 고급소학교를 마쳐야 한다.
강건너 향정부가 있는 몇천호 넘는 큰 마을에는 소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구비한 완전한 소학교가 있지만 두 소년이 살고 있는 백여호가 사는 작은 마을에는 겨우 교실이 3개뿐인 초급소학교가 있을 뿐이였다.
소년의 이름은 장소강인데 한족이고 소녀의 이름은 김향화, 조선족이였다. 장소강의 아버지는 어부여서 장소강이 여덟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고기배를 탔고 어부의 아들답게 배를 잘 다루었다.
오늘도 그들은 아침 다섯시에 배를 저어 이십리가 넘는 물길을 건너 일곱시전에 호수 동쪽 나루터에 배를 대기해놓고 송강촌이라는 향정부마을의 중심소학교로 가야 한다. 중심소학교에서는 오전 일곱시 반이면 첫번째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비옥한 송화호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장가촌은 백여호가 넘는 한족과 조선족이 혼합하여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백여년전 산동성 연대에서 동북으로 이주해온 한족들이 부락을 이루며 살았는데 장소강의 증조할아버지 삼형제가 함께 발해를 건너 동북으로 이주해서 무인지경에 첫번째로 터전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살면서 자손들을 늘려 장씨네 족속들이 사는 마을이 되고 자연히 장가촌이라고 불리우게 되였다.
그후, 김향화네는 할아버지 때 고향사람들과 함께 이민 와서 괴나리봇짐을 푼 곳이기도 하다. 장가촌의 한족들은 다수 지세가 높은 자리를 선택하여 황무지를 한전으로 개간하여 밭곡식을 심었는데 옥수수, 수수와 조이를 위주로 경작하였다. 그후 일부분 촌민은 송화호의 풍부한 어업자원을 리용하여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들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족 농민들은 일률로 지세가 낮아 한족들이 한전으로 개간하지 못하고 버려둔 습지판에 논두렁을 만들어 산골물을 에워넣고 수전으로 개간하였다. 버려진 땅에 벼농사를 지으니 백옥 같은 입쌀농사가 되였다. 그렇게 조선족이 몇십호가 안착하였다.
한족과 조선족들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서로 농경문화와 음식문화를 교류하며 돕고 배우고 호상 은혜를 느끼며 화해롭게 살아갔다.
억척 같은 조선족 농민들이 산골물에 보를 막고 그 물을 에워서 늪지판의 까토덩이를 베여내고 논을 풀어 베농사를 하고 고수확을 따내니 한족 농민들도 배워가며 한전을 수전으로 개조하고 벼농사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하여 풍작을 이루었다. 두 민족 사이에 서로 존중하며 아주 흡족하게 살아갔다.
김향화와 장소강도 앞뒤집에 살았는데 추석이나 설날이면 김향화네 집에서는 찰떡을 쳐서 앞집 장소강네 집으로 보냈고 앞집에서는 죠즈를 만들어 김향화네 집에 가져왔다.
철썩~ 쏴, 철썩~ 쏴, 철썩~ 쏴!
구름 한점 없이 하늘도 맑고 바람도 잔잔하고 수면은 거울처럼 고요하다. 아침해살이 수면 우에 한줄기 붉은 카펫을 펴놓았고 그 우로 장소강네 쪽배는 호수를 절반이나 건넜다.
“소강, 노를 이리 줘, 내가 좀 저을게.”
김향화가 맞은편에 앉아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장소강에게 노를 넘기라 했다.
소강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넘겨주고 오른쪽 팔소매로 이마에 송글송글 돋은 땀을 슬적 닦았다.
노를 넘겨받은 김향화는 제법 능숙한 솜씨로 노의 손잡이를 배전 아래로 내리누르니 노가 슬쩍 수면 우로 올라왔다. 노의 날개를 높이들며 뒤로 옮겨 물 속에 내리우고 자세를 뒤로 잡으며 힘껏 앞으로 당겼다. 노가 앞으로 물길을 박차니며 쪽배는 앞으로 쑥 미끄러져 나간다.
“어기여 어기 여차, 어기여 어기 여차!”
쪽배의 맞은편에 앉은 장소강은 김향화의 노 젓는 솜씨에 만족해하며 조용히 “사공의 노래”을 불러주었다.
“어기여 어기 여차, 어기여 어기 여차!”
재치있게 노를 저어가는 김향화도 따라서 불렀다.
김향화의 두팔에 힘이 흐르고 쪽배는 학교가 있는 동쪽 언덕을 향해 쏵쏵 얼음판에 박밀려가듯 미끌어져 나간다. 김향화는 노로 방향을 잡고 아침해살이 펼쳐준 아름다운 붉은색 카펫 우로 쪽배를 저었다.
붉은색 카펫은 김향화에게 성스러운 의미지로 각인되여있었다. 지난해, 장가촌에서 장소강의 형님 장소룡이 신부를 맞아들일 때 보았던 일이다. 신랑신부가 집문 앞에 펼쳐놓은 붉은색 카펫 우로 정중하게 걸어 들어가고 쪼무래기 어린애들이 울긋불긋한 색종이꽃을 그들의 머리우에 뿌려주었다. 그렇게 장소룡과 신부는 신랑각시가 되여 아기자기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상하게도 그 날 밤 꿈에 김향화는 장소강의 형 장소룡이 신부와 함께 붉은색 카펫 우를 걸어가는데 문득 장소룡이 장소강으로 변하고 자기가 신부로 둔갑하여 장소강과 나란히 붉은색 카펫 우를 걸어갔다. 꿈에서 깨여나자 공연히 옆에 있는 어른들이 알아채지 않았나 곁눈질도 해보고 제풀에 놀라 이 무슨 해괘망칙한 꿈이냐 하며 부끄러워 얼굴을 살짝 붉히였다.
지금 이 시각 김향화는 쪽배에 장소강을 싵고 송화호 수면 우에 해빛이 펼쳐놓은 붉은색 카펫 우로 가면서 장소강의 형 장소룡이 신부와 함께 붉은색 카펫 우로 걸어가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어기여 어기 여차, 어기여 어기 여차!”
조선민요 “사공의 노래”는 장가촌 조선족 어르신들이 명절에 오락할 때 부르는 노래인데 가사가 어부들의 생활을 생동하게 표현하고 노래 선률이 경쾌하고 률동적이여서 김향화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르신들의 틈 사이에 끼여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귀가 쫑긋해지고 똑똑히 들었다가 이튿날 아침 혼자일 때 조용히 되새겨 불러보기도 했다.
점차 익숙해지자 한번은 장소강이 쪽배를 저어 학교로 가는데 무의식간에 “사공의 노래” 한곡조를 뽑게 되였다.
장소강은 재미있는 노래를 들으니 노젓기가 힘도 안 드는 것 같다고 하였다.
“향화, 나 이 노래 배워줘!”
“배워낼 만 해? 꼭?”
“응, 노래 배워주면 난 노젓기를 배워주지.”
“정말?”
김향화는 언제부터 마음속으로 쪽배 젓기를 배우고 싶었으니 너무나 좋았다.
장소강과 김향화는 두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를 맞추었다.
“바다물 우에 갈매기 날고요
정든님 배머리에 옷자락 날린다…”
첫구절을 뗀 다음 그 아래 노젓는 장면이 제일 흥이 났다.
“어기여 어기여차, 어기여 어기여차!”
쪽배 맞은켠에 앉은 김향화도 장소강의 노 젓는 모습을 흉내내여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가슴 앞으로 힘껏 당기였다.
날마다 송화호 건너편 동쪽언덕 중심소학교로 등교하려 쪽배를 타면서 장소강은 열심히 노래를 배웠다.
가사도 점차 “바다물 우에 ”는 “송화호 물 우에”로, “정든님 배머리에”는 “동창생 배머리에”로 고쳐서 배워주었는데 제일 잘 부르고 성수나는 구절은 “어기여, 어기여차”였다.
“어기여 어기여차, 어기여 어기여차!”를 부를 때면 쪽배의 노 젓기가 식은죽 먹기처럼 느껴젔다.
쪽배를 젓는 기술은 삼일간 아침저녁으로 장소강이 김향화에게 손수 가르친 기술이다. 령리한 김향화는 사흘만에 능숙하게 노를저어 전진, 후퇴를 마끈하게 처리했고 좌회전 우회전도 재빨리 해냈다. 좌회전할 때는 왼쪽 노를 뒤쪽으로 물속에 깊이 박고 물길을 왼쪽으로 틀고 오른쪽 노를 괘속으로 련속 저으면 순간에 휙하고 물 우에 원을 그리며 왼쪽으로 돌아간다. 반대로 우회전할 때는 오른쪽 노를 뒤쪽으로 물 속에 깊이 박고 물길을 오른쪽으로 틀고 왼쪽노를 쾌속으로 련속 저으면 재빨리 휙하고 오른쪽으로 회전한다.
김향화는 이미 장소강처럼 훌륭하게 쪽배를 다루어 넓다란 송화호의 물길을 물새들이 날아가듯 저어나갔다. 열심히 노를 저어 송화호를 건너편 언덕에 평소보다 십분 이상 앞당겨 중심소학교에 도착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방과시간이 늦어지고 설상가상으로 나루터 오는 길에 변덕스런 날씨가 먹장구름을 모아오더니 갑자기 밤처럼 사위가 어두워졌다.
장소강과 김향화는 바쁘게 숨을 몰아쉬며 달음박질로 나루터에 도착하였다. 쪽배가 물에 뜨자 젖먹던 힘을 모아 노를 저어 나갔다. 장가촌으로 가는 이십리 물길을 분초를 다투어 가기 위해 두 사람이 같이 노를 저어나갔다.
“우르릉 쾅, 우르릉 광!”
검은 하늘에서 번개가 찢어지듯 울리더니 송화호 호수면에 후둑후둑 콩알 같은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우르릉 쾅!쾅!”
연출무대의 조명등 같은 불빛이 사위에 번쩍이더니 갑자기 김향화의 눈앞을 덥치는 듯했다.
“아, 아아악!”
김향화는 눈을 꽉 감고 짧게 비명을 지르며 노를 뿌리치고 장소강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장소강이 김향화의 들먹이는 두 어깨를 다독여주며 달래였다.
“괜찮아, 괜찮아, 곧 우뢰가 멈출 거야.”
장소강이 김향화의 따뜻한 체온과 들먹이는 가슴에서 특수한 체취를 처음으로 느끼며 그의 피가 자기의 혈관까지 흐르는 듯한 느낌을 인식했다. 조금은 당황하기도 하였다. 김향화의 몸은 두려움에 떨었고 급촉한 호흡소리에 장소강이 녀동생처럼 다독여주며 당황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겁나지 마, 나 있잖나.”
장소강이 쪽배를 삼킬 듯한 노한 파도에도 꿈쩍없이 파도의 선률을 타고 쪽배를 안온하게 저어나갔다.
“이제 곧 멈출 거야.”
어느새 하늘을 층층겹겹 덮었던 검은 구름이 장검에 휘둘려 찢기듯이 여러조각으로 찢기더니 바람에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미안해.”
김향화가 고개를 갸웃 돌리며 입속말처럼 하였다.
“소강이 너는 대장부처럼 끄떡없는데 나는 졸장부처럼 겁쟁이니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너 녀자로 태여났잖아…”
장소강의 말에 김향화도 따라 웃었다.
소년 장소강이 앞으로 크면 더욱 사내장부다울 것이라 김향화의 어린 소녀의 마음에도 믿음이 생겼다.
천둥번개도 먼 하늘로 이사가고 먹장구름이 거두어 소나기도 지나갔다. 주황색 저녁노을이 송화호 서쪽 언덕에 서서히 펴지며 아름다운 꽃무늬를 송화호 수면에 던지였고 칠색무지개가 반원을 그리며 반공중에 걸렸다. 소년과 소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열심히 노를 저어 서쪽편 호수언덕에 닿았다. 평소보다 한시간 가까이 늦었지만 집에서 저녁 밥상에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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