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2024년 제5호 | 윤슬润露-고향에도 바람이 분다(수필)

文摘   文化   2024-10-18 08:01   吉林  

종이잡지-수필



고향에도 바람이 분다

윤슬 / 수필

석탄과 목재가 흔전하고 두만강물이 퇴적된 비옥한 만경벌에서 농사가 잘되는 은성한 고장이 있었다. 그 곳이 바로 내가 살던 고향이였다. 고향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풍경과 소리, 흙냄새, 시골집 창문에서 풍겨나오는 토장국 맛에 길들여져 태여나서 자라난 이 고장을 세상에 둘도 없는 명당자리로 생각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고향은 가난하였다. 땅이 작고 인구가 많은 곳에서 한해 동안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보았자 먹을거리가 변변치 못하였다.

내가 금방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였다. 따스한 봄바람에 진달래가 만발한 고향의 뒤동산은 바람과 해볕이 어울려 그 해따라 풍경이 류달리 아름다웠다.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던 고향마을에 훈풍이 불어왔다. 개혁개방이라는 시대의 바람결이 일기 시작하면서 집집마다 번영의 길로 달려가는 획기적인 력사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호도거리 정책이 실시되면서 농경지가 몫에 따라 나뉘여졌다. 개인의 능력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바람의 속도는 일사천리였다. 2, 3년이 지나지 않아 만원호가 생기고 석탄자원이 풍부한 고향의 여기저기에 탄광이 수풀처럼 일어서면서 탄광 ‘로반老板’ 호칭에 어깨에 힘주어 다니는 남정네들도 부쩍 늘어났다.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던 환상의 세계가 현실로 되여갔다. 찌그러져가던 오막살이도 차츰차츰 정체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고향에는 빈부의 차이가 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농사에만 의거하여 살던 고향사람들은 바람의 방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바람결을 타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불었다. 세차게 불었다. 가난했던 고향사람들은 잘살아보려는 일념으로 서로 뒤질세라 한국바람에 따라나섰다.

바람에 등 떠밀려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은 더는 풍의족식에 만족할 수 없었다. 배고픈 아이에게 간장에 밥을 비벼주고 수레에 앉아 동년을 즐기던 랑만이 더는 통하지 않았다. 고향사람들은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 돌아가는 바람결에 주저없이 몸을 싣기 시작했다.

바람의 위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방법과 수단도 다양화되였다. 한국바람에 이어서 로씨야, 미국, 오스트랄리아, 독일… 세상 어디에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바람결에 헛발을 옮겨 디디여 휘청거리던 사람들도 있었고 금전에 유혹되여 타인의 시선이나 도덕과 령혼의 순결을 바람에 날려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엄마를 부르면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타는 어린 것도 서슴없이 힘없는 로인네들한테 맡기고 그 바람의 부름에 따라나설 수 밖에 없었다.

바람에 날려간 수많은 불행들이 어쩌면 어쩔 수 없는 바람의 결과물이 아닐가? 물론 바람에 의해 날려가고 떨어지고 상처 입은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불행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더는 나물반찬을 먹고 랭수를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행복하다고 하던 고향사람들이 아니였다. 돈이 좋긴 좋았다. 돈을 벌어온 사람들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번쩍거리는 하이야도 문 앞에 버젓이 모셔오고 번듯한 기와집이 줄지어 늘어서게 되였다.

바람은 치마폭에 쌀 수도 없고 바지가랑이에 넣을 수도 없었다. 못 말리는 바람 앞에 어정쩡해있지 않고 바람결을 잘 탄 사람들은 금의환향이라는 훈장도 수여받았다.

세상에 절대적인 좋고 나쁨이 어디 있으랴! 바람이 불 때면 서로 부딪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우성치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의 하나의 방식이 아닐가?

바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 만족되는 고향사람들이 아니였다. 돈이 생기니 삶에 대한 더 높은 추구가 또 다른 바람을 불러왔다. 도시진출이라는 바람결을 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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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润露-고향에도 바람이 분다(수필)

[책임편집:리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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