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2024년 제5호 | 주향숙朱香淑-시간은 무심하다(수필)

文摘   文化   2024-10-15 08:00   吉林  

종이잡지-수필


시간은 무심하다

주향숙 / 수필

시간은 울고 웃지도 않으며 떠들지도 않는다. 그냥 우리 곁을 흐를 따름이다.
나무잎이 물들고 떨어지고 그리고 삭아가는 것도, 밤이 지나고 다시 해가 뜨며 하루가 열리는 것도, 꽃이 피였다 지고 다시 씨앗으로 영그는 것도, 인간이 태여나 자라서 세상을 살다가 죽는 것도… 모든 것은 시간의 거대한 흐름 안에 있다. 그럼에도 결코 시간은 그것에 마음이 없다. 다만 자기 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게 시간의 일상이다.
시간이 약이라거나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진다고 우리는 아프고 힘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곧잘 말해준다. 어쩌면 위로를 해주려고 해도 어떤 슬픔인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립장에서 그 슬픔을 완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왜곡할 뿐이다. 내가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타인의 슬픔은 결코 타인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개인적인 슬픔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가장 쉬운 위안이 시간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과연 시간이 흐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이니까. 그 어떤 괴로움도 여전할 수만은 없는 것임을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다. 지금 당장 슬픔으로 힘겨운 고투를 벌이는 사람에게 그 감정은 영원하다. 그래서 그런 말은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 시간 또한 슬픔을 어쩌지 않는다. 밀어내거나 당기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시간은 본 모습 대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흘러갈 뿐이다. 그 때 만큼 처절하게 외로울 때가 없는데 그것이 더더욱 슬픔을 극심하게 만들어준다.
시간은 약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은 없다. 다만 스스로 기진맥진할 때까지 혼자 싸우다가 맥이 진해서 그만둘 뿐이다. 견디고 견디다가 견디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이름을 잊을 때 쯤 가슴에만 남은 흔적이 견디는 행위를 의례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아니라면 한 감정을 다른 한 감정이 와서 누르거나 대체할 뿐이다. 더 이상 처음처럼 살을 저미는 듯하거나 뼈에 사무치는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느끼면서도 이미 순응하여 습관이 된 채 의식하지 못한다. 무의식의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의식할 때에 우리는 더 고통스럽다. 꿈결처럼 흐르는 고통은 육신에 실제적인 아픔을 가하지 못한다. 계속 어제와 같다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다. 다만 예전의 기억을 살아내는 것 뿐이다.
그러나 기억도 내 것이 아닌가? 그 기억을 의식적으로 아파하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겪어내는 것도 내 감정이 아닌가? 그렇게 되물어도 결국 우리는 생생히 피부로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진실로 가슴이 전률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뢰 울고 번개 치며 퍼붓던 소나기가 그치듯이, 거대한 갈퀴를 세우며 달려들던 파도가 스러지듯이 모든 것은 다 사그라들고 정지하고 가라앉을 때가 있다. 처음처럼 똑같은 감정이라고, 더 고조된다고 우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허나 진정 점점 더 강렬해졌는가? 스스로 그렇게 관념화하는 것은 아닌가? 이는 누군가의 감정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분명 잊지 말아야 할 기억도 있고 모지름을 쓰지 않아도 뿌리처럼 깊숙이 박혀 스스로 거대해지는 기억도 있다. 다만 오래된 감정에 대해 정직하게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우리를 송두리채 흔들던 기억도 참아내기 어렵던 감정과 함께 무덤 속에 스스로 들어가 누울 때가 있다. 그 감정이 덜 진지하거나 약해서가 아니다. 고통을 다 치러내고 더 이상 치러낼 힘이 없을 때를 기다리면 그리된다. 어떤 감정을 받아들이고 적응하여 더는 아프고 힘들지 않게 느껴질 때, 그 때면 생명은 죽어버린 것일가? 어쩌면 죽지 않기 위해 무덤 속으로 들어갈 줄 아는 의지가 단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다. 결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은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죽었다고 여긴 자연이 자신의 힘에 의해 회복되듯이 생명도 자신의 의지가 있어서 일부 상처를 묻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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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향숙朱香淑-시간은 무심하다(수필)

[책임편집:리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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