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영올국경절련휴를반나절앞두고장백산잡지사홍려편집으로부터련락이왔다. 10월 13일 장춘에서 〈문인간담회〉를 조직할 예정인데 ‘간담회발표임무’가있다며최근2년간 《장백산》에발표된 ‘80’후시인들의시작품을언급하며장백산잡지사의원고채택과편집에대한의견이나건의를듣고싶다는것이였다. 아차 했다. 솔찍히 말해 우리 시단의 ‘80’후들에대해생소한면도있고또그들의시작을품들여연구해본적이없기에그들의시작에대해왈가왈부할면목도자신도없었기때문이였다. 또 한편10대에 시를 공개간행물에 발표하기 시작해서 지금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였으니 시력이 근 40년이 되나 시평은 종래로 써본적이없기때문이였다. 이미 가겠다고 답한 이상 울며 겨자먹기로 ‘임무’에응하는수밖에없었다.《장백산》에서 곧바로 ‘80’후시인6명의 시작을 파일로 보내왔다. 받는 즉시 읽기를 거듭했다. 그리고 나는 이내 내 자신의 게으름과 오만에 부끄러움을 감출길없었다. 《장백산》을 창간호부터시작해서한기도빠짐없이구독하여오면서도특히최근10여년간은잡지를손을쥘때마다목차에서면목이있는작가, 시인들의 작품들을 먼저 골라서 읽고 기타 작가, 시인들의 작품은 소홀하게 대해왔던 게 사실이다. 게으름이라면 약과다. 이건 분명히 오만이였음을 이번에 ‘80’후시인들의시작을읽으면서뼈저리게느꼈다. 하여서 이번에 홍려편집이 보내온 ‘80’후 시인들의 시작을 대하는 내 태도가 심히 공손해졌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미안함과 함께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편집부에서는구체적시작의작품성을론하면서잡지사의원고채택과편집에관한의견이나건의를듣고싶다고주문했지만나는시작의작품성따로, 잡지사의 원고 채택, 편집방향따로극히개인적인생각을털어놓는다.뭐니뭐니해도나는잡지사에서산재지구문인들에게따스한눈길을보내는정성에박수를친다. 집안 량수란 산골벽지에서 문단을 기웃거릴 때 가장 먼저 손을 잡아준 잡지가 《장백산》이였다. 남영전사장 때부터, 리여천사장을 거쳐 현재 안미영사장까지 그리고 홍려편집, 리혜편집을 비롯한 장백산 식구들 모두 한집안 사람처럼 정기적으로 련락을 취해 시창작 상황을 료해하군 하는데 이는 나의 창작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령단묘약이였다. 내가 지금까지 《장백산》에발표한기타시작은차치하고〈서탑〉련작시200수를 련재할 수 있은 것은 《장백산》의 지지와 고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였다. 이번 기회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뿐만이 아니다. 이번에 내가 이 회의에 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우리 심양의 전정환 등 제씨들도 꼭 잡지사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장백산》이 있어 글쓰는 동력도 생기도 글쓰는 재미도 느낀다는 것이 우리 료녕 문인들의 공동의 마음이다.중견문인들에대한조명과신진문인들에대한배려도《장백산》의한특점이다. 시기적으로 작가초대석, 기획조명, 특별조명 등 컽명을 달리하기는 했으나 지역과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포용성이 좋았다. 소설, 시, 수필, 실화(장편르포) 등 장르 제한 없이작품성만뛰여나면편집부에선적시적으로특별조명을한것으로알고있다. 소설에서도 장편, 중편, 단편 제한없이 작품성을 우선으로 조명을 기획했었다. 나는 《장백산》의특별조명코너가곧바로《장백산》의매력이자생명이라생각한다. ‘80’후뿐만 아니라 ‘90’후, ‘00’후들에게도의식적으로지면을할애하여온것으로알고있는데이는시종변함없는 《장백산》의원견성을남김없이보여준다.주류문단의력작들에대한주목과번역소개도간과할수없다. 우리 조선족문학은 자체의 독립성과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류문단과 기타 소수민족문학의 영향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전제하에서 주류문단과기타소수민족문학의선진적인리념과우수한창작방법을흡수하면서발전한다고나는생각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민족성과 세계성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문학작품은 민족성 안에 세계성이 있고 세계성 안에 민족성이 숨쉴 때 진정 영원한 생명력을 잉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여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잡지사의 번역작품 소개가 가지는 의의는 극히 심원하다고 할 수 있다.《장백산》의권두언은잡지의백미다. 우리는 《장백산》의 권두언을 통해 다다소소 주류문단의 흐름이나 소중한 정보들을 료해하게 되는바편집부에서향후권두언조직에좀더심혈을기울이였으면하는바람이다.아래편집부에서보내온‘80’후 시인들의 시작에 대해 선택적으로순개인적인감상을언급해보겠다.류선희시인의시작은모두5수였다. 그중 〈허수아비의구두〉란시제를보는순간나는아주잠간흠칫했다. ‘허수아비의구두’라고? 허수아비는 곡식을 해치는 새나 짐승을 막기 위해 막대기와 짚따위로사람의형상을만들어밭에세우는물건을말하는데통념상사람의형상을만든다하여도대개무릎웃부분이위주지발까지만드는허수아비는거의없다고봐도무방하다. 헌데 ‘허수아비의구두’라고? 아주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허수아비는 쓸모가 없거나 실권이 없는 사람, 남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허수아비의구두’란시제를아주자연스럽게접수할수도있겠으나시작을읽으면서나는이허수아비의파생적의미는배제시켜야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구절인 “나는 / 구두보다못한자식이였습니다”를읽는순간무릎을탁쳤다. 시인은 이 시를 읽는 키를 시의 맨 마지막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시적화자의 “구두보다못한자식”이였다는고백에서구두의주인공이부모라는사실을확인하게된다. 그리고 “당신이원하는곳으로출발하던아침과 / 긴긴어둠으로잦아들던”이라는시어에서아침일찍일하러나갔다가날이어두워서야집으로돌아오군하던구두의주인공이아버지임을깨닫게된다. “혼자가혼자의닻이되고 / 노가되여허둥대던시간” 동안은 “취하지도않던근심”들이아버지를떠나지않는다. 이제는 저세상 사람이 되여서야 드디여 “누구에게도보여주지못했던루추한모습”을거리낌없이드러내놓고 “바람부는대로흔”드리는자유의몸이된것이다. 이생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며 “터벅터벅 / 뚜벅뚜벅” 아버지의한살붙히였던구두는저생에서도아버지를지키는살붙히인것이다. “구두보다못한자식”이였다는시적화자의참회가가슴을저미는가운데이생에서나저생에서나부모는도대체가어떤존재일가라는화두가머리속에자리를튼다.시 〈치매〉는〈허수아비의구두〉의자매편이라할수있다. 세연을 접은 아버지를 이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시화하고 있다. 요즘 세월 아무리 의술이 발달되였다고 해도 일단 치매에 걸리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지능, 의지, 기억 따위 정신적인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헤여나오기 어렵다. 환자앞에효자없다고시인은 “왜말을듣지않냐고 / 왜자꾸힘들게하냐고” 어릴적엄마가내게했던말을그냥그대로되돌린다. 그렇게 서로 역할을 바꾸었다가 서로 서로 더는 엄마 아닌 딸도 아닌 립장이 된다. 엄마도 아니고 딸도 아니여서 그게 더더욱 슬퍼서 시가 절절하게 안겨온다.박연의시 〈걸음〉은다소철리적이다. “시간이공간으로남을때까지 / 공간이시간으로늘어질때까지”, “세속의잡다한속박”들을벗어던지고그냥, 본능적으로 걷다보니생명의의의는오직오늘에있음을깨닫게된다. 그리하여 “모든것이사라지고”, “두발만이” 오늘을 “묵묵히걸어가고있”는것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래일은 다가올 오늘이기에 오늘에 충실하는 삶만이 진정한 삶임을 시적화자는말하고있는것이다. 시 〈해빛〉은다소생경하지만해빛으로자화상그린다는상상에높은점수를준다.변일의 〈겨울숲〉은한폭의아름다우면서도진중한화폭을독자들앞에펼쳐보이고있다. “나비의날개짓”과 “눈꽃의살결”이 “숲을흔들며” 다가오는아름다운화면뒤면에는 “날개접힌새”가 “소매바람에서둘러떠난눈발”이 “꽃따라” “피고지”는동안 “열반”에드는진중성이깔려있다. 그리하여 “가슴에구겨넣은모닥불의온도가 / 다시발톱이닳은새를마주할때 / 물차는보리밭엔봄이온”다. “겨울숲”은결국 “물차는보리밭”에다가올봄을마중하기위한무대배경으로삶의한현장인것이다.변일의다른한수의시 〈봄그리움〉은덜익은, 혹은 못다한사랑이야기를쓰고있다. “꽃잎처럼날아와서성인봄이였다가 / 버들개지처럼말랑한물찬련정”이였으나 “느닷없이울음을토해내는부질없는봄비”로 “어설펐던사랑”이였으며 “보이지않는어둠속에숨어들어” 유심히 “바라보아야만빛낼줄아는별이여서” “곁에두”고도 “잊혀갈줄은전녕몰랐다”.“눈감고찾아온봄바람에딸려온그리움 / 어느해의가지에맺혀졌던누구의그리움 / 그그리움이그리움에서또그리워지며는 / 그리움은언제쯤그리움이되였던걸가”보는 바와같이시작은3련에서 첫 두련의 시적 정서를 더욱 승화시키지 못하고 추상적인 언어놀이에 그친 느낌을 주는 아쉬움이 있으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은 대개 이러하리라.배소윤의시 〈코스모스밭에서〉와 〈연변박물관에서〉 두수를인상깊게읽었다. 두수 다 시적완성도가높은수준급이여서우리시단의밝은미래를보는듯했다.〈할머니령전에〉라는부제가붙은시 〈코스모스밭에서〉 시적화자는할머니의일생을반추하고있다.“바람없는날에도 / 휜허리는수없이휘청거렸다”가족을위한일에온갖정성을깡그리몰부어오며기력이쇠잔해질대로쇠잔해져바람없는날에도휜허리가휘청거린다. 이처럼 산전수전 온몸으로 다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하늘향해얇은귀를열고있”는것은 “애써감춰진통증만큼이나깊어진 / 야윈가슴엔늘하늘이숨쉬고있”었기때문이였다. 여기 하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할머니는 한 가족의 오늘과 래일을 개척온 것이다. 이러한 할머니가 어느 가을날 하루살이처럼 조용히 “바람속에한세상묻었다.” 시적화자의기억속에 “잃어버린가을흐트끼던 / 그 날의코스모스”는영원히각인되였으리라!시에서 “하루살이”란시어를대하는순간에는한국조오현스님의〈아득한성자〉란시가생각났다. “하루라는오늘 / 오늘이라는하루에 // 뜨는해도보고 / 지는해도보았다고 // 더이상더볼것없다고 / 알까고죽는하루살이떼”로부터 “죽을때가지났는데도” 살아있지만 “그어느날그하루도산것같지않고보면” “천년를사”는성자도아득한하루살이떼에불과하다는시인데배소윤시인의시에등장하는할머니는성자다름아니리라!배소윤의다른한수의시 〈연변박물관에서〉도 〈점토상앞에서〉란부제가시를읽는데도움을주고있다. 현재를 “서있는조각상”은 “필름을거꾸로돌”리며력사를말하고있다. “시대를뛰여넘”으며 “억겁세월을넘나드는혼”도 “어느쯤에서부서져먼지로남아 / 또한번의죽음을살아가”게되는데죽음으로써살아가는것은조각상의삶의방식인것이다. 헌데 어찌 조각상뿐이랴? 이 세상 살아가는 사람(먼지 속을 걷는 사람들)들 또한 조각상 다름 아니다. 아무리 치렬하게 살아간다 한들 카메라 속 한장의 사진으로 남을 인간에게 “장인의거친손끝” 에 “매달렸을한조각분신”이 “잃어버린것들을더듬고서서” “오래된미래를질문한다.” 다가올미래가아닌과거형의 “오래된미래”라는표현은이세상모든것들이궁극에는박물관안의한단락의력사에지나지않음을말해주고있는것이다.전지현의시를읽으며시인만의강한개성을느끼기에충분했다. 시 〈회전목마추락사건〉은제목에엉뚱한(묘한?) 시적 장치를 숨겨두고 있다. 추락은 높은 곳에 떨어짐을 말하는데 시인은 회전목마에서의 떨어짐을 하나의 사건이라 명명해놓고 정작 본문에서 추락 사건의 구체적 행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왜 추락하는 높은 곳이 굳이 “회전목마”냐이다.먼저구체적인시의내포를보면 “도망가자”란총적인욕망아래 “지나온시간이반복되여흐르던곳”과 “나를 둘러싼 이 별의 모든 피조물들이 / 축복의약속이라여겨지던 / 행복을발설하던곳”은도망의목적지요, “변하지 않는 풍경에 새로운 계절을 입히고 / 내가담겨있던필림에다시가만히안”기는것은목적이요, “겨울의 유서로 피여난 봄이 / 다시모든계절을짓이겨겨울이되는 / 이고단한작업의축제가 / 지상에내려와심장소리를내”도록하는것은바라는효과다. 그리고 이런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의 실현이 한 인간의 성숙을 필요로 하고 있고 보면 “회전목마”(유년)에서의 “추락”(탈출)은 필연코 하나의 “사건”임에틀림없다. 허나 그 “추락”은쉽게이루어지는것이아니다. 강한 반항의지가 필요하기에 시적화자는 “도망가자”고사자후를내뿜는것이다.전지현의시 〈영화말고평범하자〉는세상가장달콤한사랑을담담한어조로읊조리고있다. 사실 “우리아무것도하지말자”는함께사는동안자신들에게다가오는모든일들은회피하지말고자연스럽게받아들이자는뜻일게다. 내 옆에 네가 있고, 네 옆에 내가 있고, 또는 내 옆에 네가 없고, 네 옆에 내가 없어도 서로 각자 또는 함께 서로에게 나눠줄 이야기를 모으는 삶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은 행복인 삶은 단연코 이 세상 가장 달콤한 사랑임에 틀림없겠다. 이 시에서 보여준 사랑은 득도의 경지다.토정의시는언제봐도한결같다. 시 〈승무〉는로련미가넘치는문장력으로펼쳐보이는춤사위속에그만의독특한사유가녹아든시세계가놀랍다. 지금까지 토정시인 말고 어느 시인이 중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이 다니며 동냥하는 일이나 절에서 식사 때 중들이 바리때를 들고 식당에 가는 일인 탁발을 고깔과 장삼을 걸치고 두개의 북채를 쥐고 추는 민속춤인 승무로 시적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였는가 말이다.탁발이세간의온갖번뇌에서벗어나는가장원초적인행위방식이라면 “주름진번뇌를띄”우기위해선 “승무”는 “멈추지말”어야할일이다. “엷은결하이얀고깔피여날” 때까지, “붉은심장푸른주먹잠에서깨여날” 때까지, “보습에끌려온보리고개/채찍으로얼룩진등가죽서러울” 때까지 “승무”는진정멈추지말어야할일이다. 그리하여 “엄연히좌해있”는고鼓를향해 “일고一鼓에머물지아니할/거침없이련타连打로/독무는외롭지아니할”때까지 “승무”는기어이멈추지말어야할일이다. 이제 우리는 승무에 등장하는 북은 일반적인 북이 아닌 부처앞에서치는북이나예불할때나의식때치는북임에주목할필요가있겠다.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 “일고一鼓에머물지아니할/거침없이련타连打로/독무는외롭지아니하”는리유를깨칠것이다. 세간의 온갖 번뇌가 머리 속을 떠나는 순간이다.토정시인과는 안면식도 있고 또 맥주잔을 마주치며 시를 론한 적도 있어서 언제 봐도 한결 같은 그의 시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주제넘는 짓이여서, 이 시점에서 이번의 횡설수설을 끝내면서 여러 동인들께 미안함을 전하는 동시에 장백산잡지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