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도에서의 만남
서정순 / 수필
나는 내가 왜 그녀를 찾아 떠났는지 알 수가 없다. 문득 그녀가 보고파졌다. 사무치게 보고파졌다. 그녀가 살고 있다는 호로도를 무척 가고 싶어졌다. 폭염이 늘어지게 내리쬐는 팔월의 어느 날. 그래서 료양에 있는 친구에게 위챗으로 문자를 남겼다. “우리 호로도에 가지 않을래?”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한 내 마음과는 달리 료양에 있는 친구는 “조금 더 있다 가자. 내가 지금 비염으로 치료를 받고 있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호로도에만 가면, 거기에만 갔다 오면 뭐가 달라질가? 나는 몰랐다. 하지만 나의 직감은 나에게 종용하고 있었다. 거기를 가, 거기, 호로도를. 가서 그 친구를 만나 봐.
호로도를 가겠다고 하는 내게 남편과 딸은 괜찮겠느냐며 물어왔다. 봄철에 맥이 쭉 빠져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 분명하다. ‘아직까지는 좀 조심하는 것이 좋을 텐데…’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날마다 홀로 집에 있으면서 창밖으로 마주하는 고층빌딩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눈앞에 고층빌딩이 떡하니 서있으니 내 마음에도 커다란 벽이 막혀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열흘이 지나 잠간 잊어버릴가 했을 때 료양에 사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난 요즘 괜찮은데 넌 어때?” 당연히 괜찮다였다. 우리 둘은 짝짜꿍을 하며 번개에 콩 구워 먹듯 가는 날을 정하고 전화를 날리기 시작했다.
나와 그녀는 중학교를 나와서는 별로 만난 적이 없다. 나는 대학을, 그녀는 고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다닐 때도 한반이 아니여서 자주 같이 있는 편은 아니였다.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유별나게 생각하는 것은 소학교 때 한반에서 죽이 쭉쭉 잘 맞은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한 고향에서 나서 자란 우리 둘은 가족상황은 물론이고 자란 환경까지 엇비슷했다. 그리고 공부를 괜찮게 했고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녀는 반장을 했고 나는 잘 따라줬고 둘다 웃기를 좋아했고 시시콜콜 별로 따지지를 않았다.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젊은 모습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 여름방학 때 봤던 모습이다. 그녀가 아들을 낳고 친정에 왔을 때였다. 그 때 그녀는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말만 꺼내면 아들자랑이였다. “우리 아들 보는 사람마다 눈에 정기가 돈다고 그래.” 강보에 쌓인 아들을 보며 눈빛을 반짝거렸던 그녀의 모습, 아주 천연덕스럽게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들한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부끄러워 눈길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댔다. 세상이 맑은 이슬과 산들바람만 있는 줄 알았던, 세상물정 몰랐던 스무세살의 나. 하기에 모성 풍만한 그녀에게 아들 참 잘생겼다는 그 흔한 멘트 하나 하지 못했다.
몇년전 ‘인연’이라는 동창췬에서 나를 발견한 그녀는 인차 나를 추가하고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받으니 “안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인차 받아주구나.” 수십년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의 통쾌한 웃음소리는 여전했고 시원시원한 말소리도 변함이 없었다. 시집가기 전까지 고향에 남아 단지부서기 노릇을 했던 그녀는 고향의 구석구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노라니 잊혀졌던 기억들이 되살아나 그 옛날의 고향으로 돌아가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였다.
그로부터 1, 2년이 지났을가. 그녀는 역시 료양의 친구와 같이 나를 보러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그 날은 내가 수업이 꽉 차있었고 그녀들도 그날로 왔다 그날로 떠나야 해서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나버린 것 같아 두고두고 애석해했다.
이제 그녀를 만나면 아니, 우리 셋이 만나면 하루밤을 뒹굴면서 해도 해도 끝없는 회포를 마음껏 나누리라. 렬차를 타고 가며 나는 수없이 많은 상상을 했다. 그 상상 속에는 옛날 기억도 끼여있었다. “맞지, 맞지, 그게 제일 맛있지?” 서로 자기가 먹어본 것이 제일 맛있다며 한껏 과시하려고 목에 피대를 세웠던 쬐꼬맣던 우리의 모습이 저 멀리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파아란 료서벌이 파랗게 스쳐지나고 있었다. 그녀들과 함께 했던 고향의 전야가 떠올랐다. 고향 하면 떠오르는 풍경중에 빠질 수 없는 가없는 벌판, 춘하추동 펼쳐지는 부동한 풍경은 얼마나 많은 어린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정서와 감성을 남겨주었던가. 더구나 노랗게 물든 가을들판에 메뚜기를 잡는다고 올망졸망 나섰던 까아만 머리들, 메뚜기가 뛰면 우리도 뛰고 우리가 펄쩍대면 메뚜기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병사리마다 가득채웠던 메뚜기들, 저녁 어스름을 타고 따스한 불빛을 향해 힘차게 걷던 그 희망의 순간들, 반짝이던 눈빛들. 오늘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바로 그 희망의 눈빛을 만나러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산, 금주를 거쳐 렬차는 호로도북역에 도착하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달음에 달려나오는 내 눈에 기럭지 긴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젓는 것이 눈에 띄였다. 서로를 향해 달려가 손을 맞잡았다. 그녀는 거침없는 큰소리로 “너네 온다고 하니까 내보다 우리 신랑이 더 신났어.” 하며 옆에 있는 남편을 소개한다. 어느 대학의 교수로 정년퇴직한 그녀의 남편은 대학교 선생님답게 점잖아보였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료양에서 오는 친구를 기다렸다. 갑자기 그녀가 “넌 왜 그렇게 비싼 차를 타고 와? 차값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럴 필요없어.”라고 한다. 그녀 남편은 “벌써 호로도를 한번 왔다 갔네요.”라며 롱담을 한다. 실은 나도 내가 타고 온 렬차값이 배나 비싼 줄 몰랐다. 쓸데없이 돈을 더 낸 것, 참으로 억울하기도 했지만 없으면서도 있는 척 허영을 떤 것처럼 보여 괜히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오래간 만에 만났는데도 어렸을 적처럼 격 없는 친구의 허물없음이 내심 좋았다.
(전문을 읽으시려면 아래 문자를 누르십시오.)
制作:金惠琳
编校:李 慧
审校:洪 丽
核发:安美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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