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금희锦姬-삶의 호의(수필)

文摘   文化   2024-09-18 08:01   吉林  

위챗판-수필

삶의 호의

금희 / 수필

딸래미랑 오붓이 영화 한부 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발견했다.

그 아이는 장르와 평점과 친구의 추천, 더 보태봤자야 감독이나 배우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선별하려고 했던 반면 나는 더 구체적인 줄거리와 어떤 세절들을 알아보고 선택하기를 원했다.

“엄마, 그 정도는 스포剧透야. 그렇게 다 알고 나면 무슨 재미로 봐?”

딸래미가 반기를 들었지만 나는 대체적인 륜곽을 알고 나서야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것(너무 나쁘지 않게 끝나도 좋다) 하나만 알아도 오히려 안심하고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우겼다.(어쩌면 그게 중요했다.)

“아니, 왜 꼭 결말을 알아야 하냐고? 엄마, 소설책 볼 때도 그래?” 딸래미는 도무지 나의 생각을 리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그 말에 갑자기 생각났다.

소설책 읽을 때, 나는 가끔 결말을 먼저 번져보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대개는 처음부터 순서 대로 읽어내려가지만 스토리에 유난히 곡절이 많거나, 주인공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쳐 헤쳐나올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전반 분위기가 어쩌면 내가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으로 흘러가겠다 싶을 때, 나는 곧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책장의 마지막 부분을 뒤적거리군 했다. 때로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해피도 새드도 아닌 여전히 불가측한 삶의 진행형으로 여운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모진 경우에는 정말 슬프고 어둡게 종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차라리 나는 그런 결말들이 주는 충격에 대한 면역의 감정을 미리 접종함으로 다시 돌아와 멈췄던 부분에서 읽어내려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

혹 내게는 비극을 감당할 심력이 약했던 것일가? 아니면 비극적 경험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던 탓일가? 영화 한부 무람없이 가볍게 즐기고저 하는 나의 바람마저도 혹시 꺾이우지 않을가 념려할 정도로 나는 삶에 대해 습관적인 불신을 가진 사람이 되여있지 않나 생각해보았다.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있었다. 나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서른이 훨 넘어까지 “긍정적으로 살라” 는 말이 너무 뜬금없이 들렸고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와 위로의 진정성이 대부분 의심스러웠으며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대하며 살아가는 친구를 만나면 ‘저 사람,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잘 모르는군.’ 하고 속으로 판단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 솔직히 얘기하면 그런 마음자세가 이미 내 안에서 어떤 패턴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삶에 대한 불신과 불안의 감정도 어느새 나의 한가지 습관이 되여버린 것이다.

설겆이를 하면서, 홀로 산책과 드라이브를 하면서 좀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왜 삶을 이렇게 불신하는 사람이 되였을가? 아주 어린시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의식적으로 가지게 된 첫 기억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삶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동경과 즐거움이 있었다. 세상은 경이롭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차있었고 그것들이 나를 해할 것이라는 가설적 전제는 내게 설립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동산에서 뜨는 태양은 그 날 그 날 표정이 달랐고 언제라도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항상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양태의 구름을 흔상할 수 있었다. 마당에, 터밭에, 마을 길가와 강변 빨래터에 나가보면 처음 만난 듯 갖가지 들풀과 들꽃들과 어린 친구들이 반갑게 손을 저어 그 날의 놀이 속으로 나를 요청하군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난 줄 알았고 내가 가장 행복한 줄 알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러한 줄 알았다. 시간의 흐름은 잘 감지되지 않았고 사람이란, 세상이란 그냥 영원히 그렇게 사는 줄 생각했다.

할머니집에 맡겨졌다가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즈음(동네 어린이집을 다닐 정도였으니 다섯살 쯤이라고 생각된다), 오후 나절의 마을길이라고 기억되는데 아무 걱정없이 탈탈거리며 집으로 달려오던 내게 어떤 어른이 길을 막고 물었다. “넌 누구 딸이지? 아버지 성함 무엇인지 아니?” 어린이집에서는 똑 부러졌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찰나, 나는 그 물음에 도무지 답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 이름이라? 난 왜 아버지 이름을 모를가? 엄마 이름은 아는데, 오빠 이름도 아는데… 근데 아버지 이름은 모르겠는 걸. 나는 아마 눈을 깜빡거리며 열심히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사실 ‘아버지’라는 호칭 자체가 내게는 아주 생소한 것이였다. 친구들한테는 모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한테는,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은 내게 어느 집에는 강아지가 있고 어느 집에는 돼지가 있는 것처럼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였다. 나는 그 때까지 한번도 우리 집에는 왜 ‘아버지’가 없는지 궁금한 적도 없었고 그것을 엄마한테 물어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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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금희锦姬-삶의 호의(수필)

[책임편집:리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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