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하실래요?
김영해 / 단편소설
1
이사짐센터에서 집 안에 무더기로 부리워놓고 가버린 짐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각자 위치를 찾아 대충 정리를 끝냈을 무렵은 오후 세시가 되여있었다.
벌써 다섯번째 이사, 이젠 이사짐을 싸고 푸는 데 미립이 틀 만도 한데 매번 이사를 하고 나면 기운이 딸린다. 성준은 이 집을 사고 처음으로 자기 집이 생겼다는 마음으로 세번째로 이사짐을 풀었을 때 이사와는 작별을 고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3년 만에 다시 이사짐을 싸게 될 줄이야. 딸애 지연이의 3년 초중생활은 금방 끝나버렸고 고급중학교는 자가용차로 픽업을 하려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안해 경미는 학교는 집과 가까워야 아이도 어른도 편할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고중 근처에 세집을 맡고 네번째로 이사를 했고 3년이 지나 지연이가 대학입시를 마치고 다시 다섯번째 이사짐을 쌌던 것이다. 워낙은 입시가 끝나자 바람으로 이사 오려고 했던 것인데 지연이가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을 주소를 세집의 주소로 썼던 까닭에 통지서를 기다리느라 며칠 미뤄졌다.
성준은 이젠 이사가 지긋지긋했다. 랭장고나 세탁기 같은 큰 가전제품들을 제외한 취사용품이며 일상생활용품, 옷, 책과 같은 물건들은 하나하나 보따리에 싸거나 박스에 포장을 해야 했고 사기나 유리와 같이 깨여질 념려가 있는 것들은 더구나 조심을 해서 종이로 하나하나 감싸서 포장을 해야 했다. 일솜씨가 재지 못한 경미는 쉴새없이 일을 한다고는 하나 일축은 내지 못하고 이래라 저래라 성준이를 지휘하는 데 극성이였다. 지연이는 대학 가기 전의 자유를 만긱한다며 눈만 뜨면 밖으로 나돌면서 자기의 물건마저 챙기지 않고 나몰라라 하고 있었다. 자연히 짐을 싸고 풀고 하는 중요한 몫은 성준이가 감당해야 했다.
며칠전부터 집에서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은 자가용차로 실어 나르며 바로바로 정리했기에 그나마 이사 당일에 짐이 적은 것이였다. 지연이는 아침에 자기의 아이패드와 이어폰, 충전기만 달랑 챙기곤 친구랑 영화를 본다며 일찌감치 나가버렸고 성준이와 경미가 이사짐센터의 일군들을 시켜 짐을 옮겼다. 대도시에서는 이사짐센터에 포장이사를 의뢰하면 포장과 이송, 정리까지 다 해준다는데 여기는 아직 그런 서비스는 없고 주인이 포장해놓은 짐들을 차에 실어서 옮겨만 주면 끝이였다. 그것도 큰 짐의 개수와 집의 층수를 따지며 엘레베터 사용이 가능한지도 따져서 가격이 달랐다. 힘을 쓰는 데만 길들여진 일군들은 크고작은 짐들을 건뜻건뜻 들고 날라서 경미가 가리키는 곳에 툭툭 내려놓고는 돈을 받아들고 가버렸다. 성준이와 경미는 정리하다 만 짐들을 여기저기 벌려놓은 채로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짜장면을 시켜먹는 것으로 점심을 에때우며 숨 돌릴 새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일단은 바닥에 나뒹구는 물건이 없게 정리해서 여기저기 밀어넣고 쏘파와 침구들을 정리하고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니 이사는 대충 끝난 셈이였다. 성준이가 물건을 포장했던 박스들을 정리해서 바깥 쓰레기통 옆에 버리고 들어오니 경미는 쏘파 우에 드러누워있었다.
“어우- 이젠 힘들어서 이사를 못하겠어요.”
경미는 손부채질을 하며 다 죽어가는 소리를 했다.
“자업자득이지. 당신이 고집을 피워서 그런 거잖소. 학교 가까이에 집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 덕에 이사차수만 늘었지 뭘.”
성준이는 카펫 우에 털썩 들어앉으며 투덜거렸다.
“당신도 3년 동안 편했으면서 뭘 그래요? 픽업하는 게 하루이틀이지 꼬박 3년이 어디 쉬운 일이예요?”
“하긴 그렇소. 지연이도 편하긴 했지. 집과 5분 거리에 학교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제 다시 이사를 하라면 난 못할 것 같소.”
“이젠 이사 갈 일도 없어요. 우리가 이 나이에 새로 집을 장만할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제 집에 돌아온 것도 이사인데 이웃들에게 떡이라도 돌려야 하지 않을가요?”
발딱 일어나 앉으며 성준이를 바라보는 경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성준이는 가끔 경미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다혈질인 경미는 무슨 일을 하든 지나치게 열정적이였다.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럴 필요까지 있겠소? 처음으로 온 것도 아니고 살던 집에 돌아온 건데. 며칠전에 짐을 옮길 때부터 가며 오며 만나는 사람들과는 인사를 나눴었소. 돌아온다는 말도 했었고.”
“나도 아까 몇사람은 봤어요. 그럼 살짝 맞은켠 집에만 뭐라도 보낼가요? 그 집 아주머니가 원래 먹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당신 마음대로 하오. 이전에도 먹을 걸 나눠먹곤 그랬으니까. 워낙 마음씀씀이가 좋은 아주머니잖소.”
성준이는 경미가 말을 꺼내면 실행하고야 마는 성미인 줄 아는지라 머리를 끄덕였다. 옆집 아주머니한테 드리는 거라면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옆집 아주머니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마음씨가 착했다. 아주머니는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아들을 키워 성가시켰다. 사회구역에서 공익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한 아주머니는 년세가 60세가 될가 말가 하였고 로년대학에도 다니고 무용학습반에도 다니면서 로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워낙 대인관계가 좋은 아주머니는 아빠트단지의 사람들과도 두루 다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늘 웃는 얼굴로 열정적으로 사람을 대했다. 아주머니는 3년전에 성준이네가 여기서 살 때도 드문히 농촌에서 가져온 유기농남새라며 오이나 가지 같은 것을 건네주기도 하였고 간혹 가다 지연이한테 먹이라며 입쌀만두며 순대를 갖다주기도 하였다. 일방적으로 받아먹기만 하는 것도 례의가 아니라며 경미도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아주머니네 집문을 두드리군 하였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주머니를 한번도 못 봤네요?”
경미가 중얼거리며 휴대폰 우에서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배달앱으로 떡주문을 하는 모양이였다. 요즘엔 집 나가기가 귀찮다고 과일이며 약이며 별의별 거를 다 배달앱으로 사들이는 경미였다.
“글쎄, 나도 요즘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소.”
경미의 말에 성준이도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집에 있었으면 진작 나와서 참견을 하고도 남았을 아주머니였다. 아마 어디 나가고 없는 모양이였다.
반시간 쯤 지나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배달 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그새 다시 쏘파에 누워 끄덕끄덕 졸던 경미는 발딱 일어나 문을 열고 물건을 받았다. 팥고물을 묻힌 찰떡과 하얀 송편이였다. 경미는 접시를 꺼내 찰떡과 송편을 고루고루 담아들더니 곧장 문을 나섰다. 언제 맥없다고 축 처져있었나 싶게 씽하니 치마바람을 일구며 나가는 경미의 발걸음에는 경쾌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경미였다. 성준은 송편을 한개 집어들고 먹으며 바깥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이웃집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고 난 후에 문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잠잠했다. 절주 있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고 이어서 “계세요?” 하는 경미의 칼칼한 목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잠잠했다. 성준이는 도어스코프门镜에 눈을 대고 문밖을 내다보았다. 옆집 문 앞에 덩그러니 마주서있는 경미의 부푼 몸통이 보였다.
“없나 보네.”
성준이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문에서 떨어져 스적스적 쏘파께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 후, 경미는 떡을 담은 접시를 그대로 들고 집에 들어왔다. 나갈 때와 달리 풀이 살짝 죽어있었다.
“사람이 없소?”
“그런가 봐요. 문을 두드려도 불러도 기척이 없네요. 어디 나갔는가? 저녁에 돌아오면 주죠 뭐.”
저녁 무렵에 경미가 다시 이웃집의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미는 “저녁거리로 먹으면 좋을 건데.” 하고 아쉬워하며 떡접시를 도로 갖고 들어왔다. 지연이는 저녁식사 때에 맞춰 집에 돌아왔고 경미는 식사를 하면서도 자꾸 밖의 동정에 신경을 썼다. 식사가 끝나자 지연이는 짐정리를 한다고 방 안에 틀어박혔고 경미는 TV를 보는 성준이를 닥달해서 한번 더 이웃집의 문을 두드리게 하였다. 경미는 여덟시가 넘어서자 실망하는 어조로 “밥때가 지났는데 웬 떡이냐?”고 혼자말로 궁시렁거리며 떡을 랭동실에 넣어버렸다.
이사짐을 푼 이튿날부터 경미는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지연이를 대학교에 보낼 준비를 한다며 물품목록까지 만들어놓고 바지런히 물건들을 사서 집으로 날랐다. 평일에는 퇴근하는 길에 영업중인 상가에 들려 샴프와 린스, 화장품세트와 세면도구, 잠옷과 침구를 비롯해서 손톱깎기와 면봉을 포함한 자잘한 것까지 빠뜨리지 않고 사들였다.
휴일이 되자 싫다는 지연이를 구슬려서 전매점이며 쇼핑몰, 백화점을 이틀 들락거리더니 여름옷과 가을옷을 캐주얼과 정장으로 몇벌을 사고 신도 서너컬레를 사왔다. 캐리어도 큰 것, 작은 것 두개를 샀고 책가방과 핸드백, 화장품가방, 세면도구가방, 약품가방과 지갑까지 샀다.
지연이의 방은 침대 주위에 쌓아놓은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빼곡한데도 경미는 더 살 것이 없는지 자꾸 살폈다. 아무리 봐도 저 많은 물건들이 캐리어 두개와 멜가방 하나에 다 들어갈 상 싶지 않아 성준이는 경미의 등뒤에 대고 혀만 끌끌 찼다.
“일단은 학교생활 하는 데 꼭 필요한 것만 챙겨보내오. 나머진 나중에 천천히 택배로 보내면 되지. 기숙사에 백화점이라도 차릴 작정이요?”
“남자들은 이래서 안된다니까요. 이게 어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것들이구만. 집을 떠나면 다 필요하다구요. 지연이가 아무 거나 허투루 사기보단 내가 사서 보내는 게 더 맘이 놓여요.”
경미는 성준이 쪽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휴대폰다이어리에 적은 물품목록들과 물건들을 대조하며 하나하나 체크하느라 바빴다.
“지연이는 오늘도 저녁을 밖에서 먹는다오?”
“걔 딱친구 혜은이가 오늘 승학연을 한대요. 쇼핑하기 싫다고 투덜대더니만 냉큼 새로 산 옷을 떨쳐입고 나갔지 뭐예요?”
“헛참- 지연이의 외식이 우리보다도 더 빈번하구만. 지금은 애들이 더 요란스럽소. 생일파티다, 승학연이다 하면서 어른들처럼 식당출입을 하고 호프집이나 노래방에도 간다면서?”
“다 그렇대요. 어른들이 나서서 장소예약도 해주고 결산도 해준다는데요. 그나저나 우리도 지연이의 승학연을 해요 말아요?”
경미가 지연이의 방에서 나오며 성준이를 빤히 쳐다봤다.
“당신이나 나나 다 공직에 있으니까 못하지. 안 한다고 승낙서까지 썼으면서 새삼스레 뭘 그러오?”
성준이는 경미의 심사가 빤히 엿보였지만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렇긴 한데… 이전에 우리도 남의 승학연에 부조돈을 냈는데 우리만 안 하면 밑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좀 찝찝해요. 부조돈은 주고받고 해야 공평한 건데.”
경미가 미간을 살짝 찌프리며 볼부은 소리를 했다. 아니나 다를가 돈문제였다. 밑지고 못 사는 경미였고 성준이도 그동안 나간 부조돈을 생각하면 배가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이전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승학연을 하지 못한다는 규제가 없었기에 동료나 친구를 비롯한 지인들 자식의 승학연에 꼬박꼬박 참석하였던 성준이와 경미였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공직인원들이 마음대로 이런저런 명목으로 축의금을 받는 개인연회를 베풀지 못하고 승학연은 열어서도 안되고 참석해서도 안된다는 규제가 생겨버린 것이였다.
“에이, 사람두! 얼마 되지도 않는 걸 탐하려다 무슨 큰 코 다칠려구 그러오. 생각도 하지 마오.”
“지연이가 좋은 대학에 붙었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러죠. 자식 키운 소감 한번 근사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아참, 옆집 아주머니도 울 지연이가 대학 입학한 걸 알고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겠죠? 내가 그 집 손주 첫돌 때 부조를 했거든요.”
경미가 말을 하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를 낮추며 눈동자를 좌우로 재빨리 굴렸다. 이사를 와서 첫 며칠 저녁은 어떤 날은 가지와 오이를, 어떤 날은 수박 반통, 어떤 날은 입쌀만두를 들고 거의 매일이다 싶이 옆집의 문을 두드리며 “계세요?” 하고 목청을 뽑던 경미였다. 그런 경미를 보면서 성준이는 경미가 옆집 아주머니가 보고 싶어서인지, 대학에 붙은 지연이의 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뭔 같잖은 소리를 하고 그러오? 그 아주머니가 그럴 사람이 아니잖소. 소견머리하고는 쯧-”
성준이는 정색을 하고 혀를 차며 경미를 향해 손을 홱 내저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옆집 아주머니가 그깟 몇백원 때문에 이웃을 피해다닐 사람은 아니였다. 덩치는 갈수록 부풀어가면서 속 좁게 생각하는 경미가 못마땅해서 성준이는 슬그머니 한숨을 뱉어내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네시가 채 안되여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였다. 종일 집에만 죽치고 있었던 성준이는 바람이라도 쏘일 겸 슬리퍼를 끌로 집에서 나왔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해볕이 그나마 강렬하지 않아서 숨이 턱턱 막히지는 않았다. 멀리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대라서 성준이는 아빠트단지 아래에서 스적스적 걸어다녔다. 두 아빠트 사이에 나무와 풀이 심어진 공터가 있고 공터 중간에 운동기재 몇개와 정자 하나가 있는지라 단지의 사람들이 드문히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어 꽤 인정미 있어보이는 아빠트구역이였다. 성준이가 정자 아래의 돌의자에 걸터앉아있는데 1층집 할아버지가 먼발치서부터 반색을 했다.
“로친네가 3층집에서 이사를 왔다고 하더니만 진짜 왔네그려.”
“온 지 며칠 되였습니다. 이제야 보게 되는군요.”
성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한테 목례를 하였다.
“애 공부 때문에 고중 근처에 간다 그랬었지? 그럼 애가 대학교엔 붙었겠지?”
“네, 지금 고중만 다니면 다 가는 대학인걸요. 건강은 괜찮으시죠?”
“나야 뭐 아직 십년은 끄떡없네. 지금도 놀음을 놀고 오는 걸음에 채소를 사가지고 오는걸세. 안 그럼 로친네한테 혼나. 후훗-”
할아버지는 성준이 앞에 파며 오이며 도마도가 들어있는 비닐구럭을 들어보이며 껄껄 웃었다.
“이렇게 또 한 아빠트에서 살게 되여서 좋습니다. 근데 울 옆집 아줌마는 여태 못 봤습니다. 많이 바쁜가 봐요. 워낙 활동적인 분이니까.”
성준이는 말하면서 카텐이 꽁꽁 쳐져있는 옆집 창문을 피끗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본 지 꽤 오래된 것 같네그려. 지금이야 다들 이웃끼리 문안도 안 하고 사니까 뭐. 밖에 나다니는 시간이 서로 달라서 마주치지 못하거니 하고 있었네마는. 별일이야 있겠소?”
할아버지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냥 마주치지 못해서 그렇지 아무 일 없겠죠. 저도 이 아빠트에 사는 사람들을 몇분 밖에 몰라요. 워낙 관계가 소원한 이웃인데 코로나시대를 겪고 나서 사람들 사이가 더 멀어진 것 같아요. 워낙 얼굴도 안 부딪치는 사이인데 거리를 두고 다니더니 이젠 완전 멀어진 거죠. 참-”
성준이는 습관적으로 혀를 한번 끌 찼다. 할아버지는 몇마디 더 하다가 할머니가 문을 열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버렸고 성준이도 잠간 더 서성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성준이가 신발도 벗기 바쁘게 경미는 저녁밥을 짓기가 귀찮아서 랭면을 주문했다고 알려왔다. 그러는 경미에게 성준이는 1층집 할아버지를 만났던 얘기를 하였다.
“그 집 할머니는 기운도 좋으셔요. 아까 소리쳐 부르는 소리가 방 안에까지 들렸다니깐요. 후훗-”
“그 할아버지도 옆집 아주머니를 본 지 오래다는구만. 혹시 이사라도 간 건 아닐가?”
“그럴 리가요? 언제까지고 여기서 살 거라며 노래처럼 부르고 다니던 아주머니인데요.”
경미는 입을 쭝긋하더니 쭝드르르 달려가 도어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고 밖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옆집 아주머니가 당장이라도 문 앞에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성준이는 그러는 경미를 보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랠모레면 나이가 50일 사람이 가끔 유치한 행동을 할 때면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 또한 경미의 다른 모습이라서 성준이는 그냥 웃어넘기군 하였다.
성준이는 혼자서 낮에 먹다 남은 밥과 반찬으로 저녁끼니를 에때우고 쏘파에 앉아 할일없이 이모컨을 꾹꾹 눌러 TV의 채널을 바꾸었다. 뉴스시간대라 거의다 뉴스를 중계하고 있었고 딱히 볼 만한 프로는 없었다. 경미한테서 저녁에 친구들이랑 밥을 먹고 들어온다는 문자가 왔었고 오후에 놀러 나간 지연이도 저녁밥을 먹고 들어온다는 문자 한줄을 가족위챗그룹에 올린 상태였다. 채널바꾸기를 포기하고 이모컨을 내려놓은 성준이는 뭘 할가 궁리하며 집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쿡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연이가 자기의 방문에 “노크 똑똑!!!”이라고 수성펜으로 커다랗게 써서 붙여놓은 A4용지가 눈에 띄였던 것이다. 이사 온 첫날 저녁에 지연이가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벼락같이 써서 붙여놓은 것이였다.
“녀석두 참-”
지연이가 자기 방문을 걷어닫기 시작한 것은 소학교 5학년 때부터였다. 소학교 5학년 때의 어느 여름날인가 하학하여 돌아온 지연이는 뜬금없이 “오늘부터 제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고 허락을 받으세요.” 하고 통보를 해왔다. 그러고는 방 안에 들어박혀 한참이나 끄적이더니 도화지 한장을 들고 나와 방문에 척 붙이는 것이였다. 도화지에는 동물캐릭터 몇개가 그려져있고 “함부로 문을 열지 마시오!” 하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지연이의 갑작스런 행동에 성준이와 경미는 마주보며 입만 커다랗게 벌렸었다. 장난인 줄 알고 며칠 지나면 괜찮겠거니 했지만 지연이는 그 날부터 방에 들어가면 잊지 않고 문을 꼭 닫아버렸다. 성준이는 썩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부녀간이라도 남녀유별이라는 데서 그 날 이후로 지연이의 방문을 벌컥벌컥 여는 것을 삼가하였다. 바로 그즈음 지연이가 첫 생리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성준이가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썩 지나서였다. 경미는 처음에는 안 하던 짓을 한다고 지연이를 나무람하다가 몇번 말다툼이 있고서는 차츰 노크를 하는 데 익숙해져갔다. 지연이가 방문을 걷어닫고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였지만 성준이와 경미는 눌러참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참을성 없는 경미가 간식을 준다든가 과일을 준다든가 하며 노크를 하고 들락거리다가 지연이의 항의를 받은 적이 드문히 있었다. 다행히 방문을 걷어닫은 후에도 지연이는 커가면서 경미와 의견 차이가 두루 있기는 하였지만 사춘기를 심하게 겪거나 선을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공부성적이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파동이 심한 편은 아닌 걸 보면 방문을 닫고 성적에 영향을 줄 만큼의 딴짓거리는 하지 않는 모양이였다. 하여튼 지연이가 방에 있으면 노크는 필수였고 지연이가 집을 비운 시간에도 방에 들어가 지연이의 물건을 이것저것 뒤져서는 안되는 것이 어느새 이 집의 불문률도 되여있었다.
그렇게 자기의 령역을 고수하며 자랐던 지연이는 자기의 주장이 뚜렷했고 어른들이 이것저것 간섭을 하는 걸 싫어했다. 18살에 학교에서 조직하는 성인식에 참가하고 나서는 더구나 성인이랍시고 뭐든 자기 뜻 대로 하려고 했다. 대학지망도 자기가 원하는 학교와 전업을 선택해서 적었던 지연이는 인터넷으로 대학입학을 확인하자 바람으로 자유를 선언하였다. 지연이는 경미가 사준 영어4급 교재는 한페지도 펼치지 않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머리를 연갈색으로 염색하고 굽실굽실하게 파마까지 하면서 한껏 멋을 부리고 밖으로만 나돌았다. 지연이는 오전 아홉시 쯤에 기상을 하여 늦은 아침을 먹고 나가면 친구랑 같이 커피숍에 가서 시간을 때우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으로 되여있었다. 집에서 먹는 끼니는 아침밥 한끼면 족했고 집이라야 기껏해서 아침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잠을 자는 곳이였다. 그 사이 단짝친구인 혜은이와 같이 5박6일로 려행도 다녀왔고 네댓씩 모여서 캠핑장에도 두어번 다녀왔다.
경미는 처음에는 지연이의 생활능력을 키워준다며 집청소를 해라, 세탁기를 돌려라, 저녁밥을 지어라 하며 닥달하였지만 지연이가 그러마 대답만 하고는 퇴근하여 돌아오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지라 며칠 안 가 손을 들어버린 상태였다. 성준이는 워낙 딸애를 공주처럼 귀하게 키워야 한다며 지연이를 오냐오냐 하고 받들기만 하는 사람인지라 지연이가 하는 양을 지켜보며 혀만 끌끌 찰 뿐 잔소리마저 생략하고 있었다.
지연이를 향한 경미의 잔소리는 늘 같은 레퍼토리였고 한동안 “빨리 개학해서 보내버렸으면 시원하겠다”고 투덜거리다가 개학이 림박한 지금은 또 “어린 것이 부모를 떠나 외지생활을 어찌 할가?” 하며 애잔한 눈빛으로 지연이를 바라보군 하였다. 성준이도 지연이를 보낼 생각을 하면 가슴 한구석이 짠해났지만 남자가 되여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서 지연이의 주위만 서성일 뿐이였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은 지연이와 지연이를 보내기 섭섭해하는 성준이와 경미의 사이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등교날자를 고작 열흘 앞두고 있었다. 요즘 들어 지연이는 입학통지서에 찍혀나온 큐알코드를 스캔하여 대학교큐큐그룹에 가입하고는 선배와 동기생들과 련락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대학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들떠있었다.
“저 녀석이 저 종이장은 언제까지 방문에 붙여두려나? 이제부턴 자기 인생을 산다고 어깨에 힘을 팍팍 주겠지.”
성준이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다 말고 휴대폰을 집어들고 쏘파에서 내려와 카펫 우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각양각색의 동영상 게시물이 란무하는 틱톡앱을 열어 추천하는 게시물들만 열람을 해도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이제 나이를 먹은 것인지 성준이는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게임을 할 줄 모르는 성준이는 기껏해야 TV를 보거나 휴대폰으로 위챗계정이나 틱톡게시물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게 다였다.
성준이는 틱톡의 게시물들을 이리저리 들추다가 드라마이어보기를 재생시켜놓고 휴대폰을 받침대에 고정시켜놓았다. 카펫 우에 드러누워 드라마를 보며 말며 막 어슴푸레 잠이 들가 말가 하는데 문이 “덜컹” 열렸다가 “쾅” 닫히는 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성준이가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머리를 들어보니 경미였다.
“음?! 문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내고 그러오? 사람 놀라게.”
“놀라서요… 저도… 놀라서 그런다구요.”
경미는 현관에서 신발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아 허둥거리며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어지간히 놀랐는 모양이였다.
“왜?!”
성준이는 일어나 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아까 들어오면서 옆집 창문을 쳐다봤거든요. 근데 불이 켜져있어요.”
“아주머니가 집에 있나 보네. 그게 무슨 놀랄 일이요?”
“아뇨. 근데 불빛이 이상해요. 뭐랄가? 카텐이 꽁꽁 쳐져있는데 약간 젖혀진 틈새로 불그스레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암튼 우리가 쓰는 일반 조명의 불빛이 아니였다니깐요!”
경미는 확신하다고 말하면서 천정에 붙어있는 솥뚜껑 만한 둥그런 등을 손으로 가리켜보였다. 성준이도 경미의 손끝을 따라 피끗 등을 올려다보았다. 흰색에 가까운 부드러운 불빛이 비쳐나와 집 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보통 가정에서 쓰는 조명은 불빛이 흰색이거나 약간 푸르스름한 것이 대부분이고 간혹 누르스름하거나 불그스레한 색갈의 불빛도 있긴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뭐. 조명이야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좋아하는 색갈의 불빛으로 할 수 있는 거지.”
“아니예요. 뭐라고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 야릇한 색갈의 불빛이였다니깐요. 제가 보통 가정에서 사용하는 불빛도 구별하지 못하겠어요? 그 뭐더라? 음- 옛날 사당 안에나 밝힐 듯한 그런 불빛… 아- 맞다! 장의사 빈소에 전자향을 피울 때 켜는 그 불 있잖아요? 바로 그런 색갈의 불빛이였어요.”
손짓발짓을 해가며 열심히 설명하던 경미가 손벽을 탁 쳤다. 성준이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호들갑을 떠는 경미가 오늘따라 마뜩잖았다.
“그래서 뭐 어떻다고? 말하려는 게 뭐요? 아주머니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거요?”
“무섭다구요! 옆집에 아주머니가 사는 게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이 있으면 어떡해요? 난 왜 아주머니가 이사를 갔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지? 거의 한달째 못 보고 있는데…”
술기운에 얼굴이 발가우리 상기된 경미는 손으로 가슴께를 누르며 쏘파 앞에서 서성이였다.
“아주머니가 이사를 가면 갔지 그게 뭐 대수라고 이 밤중에 란리요? 그만 요란을 떠오. 정 궁금하면 래일 아빠트관리소에 가서 알아보든지 하고.”
성준이는 문께를 흘끔거리며 경미한테 언성을 높였다. 혹시 마침 지연이가 돌아와 경미가 황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라도 할가 봐서였다. 성준이는 걸핏하면 늦게 귀가하는 지연이에게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찍일찍 다녀라. 늦어도 10시까지는 집에 돌아오도록 해.” 하는 문자를 적어서 지연이한테 발송하였다.
“아니, 그게 아니고…”
경미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았다. 무슨 일이든 느긋하게 생각하는 성준이는 경미가 과민반응을 한다고 나무랄 게 뻔하기 때문이였다. 경미는 떠나있던 3년 사이에 무슨 일인들 생기지 않았으랴 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지내는 마당에 옆집에 무슨 변화가 생긴들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미의 생각이였고 그 생각마저도 오늘 갑자기 이상야릇한 불빛을 보는 순간 생겨난 것이라서 성준이에게까지 납득시킬 물증은커녕 심증마저도 없었다.
“에이-”
경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온밤 자반뒤집기하듯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던 경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성준이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당신한테 이 아빠트단지 주민위챗그룹 있죠? 거기에서 302호실 찾아봐요. 프로필사진 보면 누군지 알수도 있잖아요?”
고무줄로 대충 묶은 머리가 푸수수하게 흘러나온 데다가 눈두덩이까지 퉁퉁 부은 경미는 보기에도 데퉁스러워보였다.
“밤새 그 생각을 한 거요? 제대로 자는 것 같지도 않더구만.”
성준이는 탁자 우에 놓인 휴대폰을 가져다가 위챗을 열었다. 성준이도 엊저녁에 경미의 말을 듣고 나서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생각할수록 미심쩍긴 하였다.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 말이죠.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어요. 그 불빛이 도대체 뭔지 알아야겠다구요.”
경미는 성준이의 턱밑으로 머리를 바짝 들이밀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그 와중에 당신 머리가 잘 돌아가긴 하나 보오. 어떻게 위챗그룹에서 확인할 생각을 했을가? 난 여태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좀 데면데면한 구석이 있어요. 내가 주민위챗그룹에 들어가있었더면 언녕 찾아봤을걸요. 내가 거기에 없다 보니 이제야 문득 생각난 거죠.”
“그러게 말이요. 나도 이전에 이사를 가면서 주민위챗그룹은 실시간 메시지 접수를 거부한 상태로 설정해놓다나니 그룹이 접혀져折叠있었소. 그룹에 공지 같은 것이 뜬 지도 오래니까 그룹이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감감 잊고 있은 거지.”
“얼른 설정을 실시간 메시지 접수로 바꿔요. 사회구역 통지나 아빠트관리소의 통지도 다 그 그룹에 뜰 거잖아요.”
“잠간만…”
경미가 턱밑에서 자꾸 말을 하는 바람에 시끄러워난 성준이는 경미의 머리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성준이는 검지로 화면을 이리저리 터치하여 주민위챗그룹을 열고 그룹성원들의 아이디를 확인했다. 아빠트관리소 직원이 그룹에서의 아이디는 문패번호로 고치라고 루차 강조했는데도 위챗의 아이디를 그대로 사용하는 주민들이 여럿 있었다. 다행히 302호라는 아이디가 눈에 띄였고 프로필사진은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있는 풍경그림이였다. 옆집 아주머니의 프로필사진이였는지 아니였는지 성준이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프로필사진이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성준이는 얼른 302호 아이디를 클릭했다. 302호와 성준이는 친구가 아니였다.
“가만있자… 내가 예전에 여기에 살 때 옆집 아주머니랑 친구추가를 했던가?”
성준이는 경미를 돌아보며 눈을 껌벅거렸다.
“안 했을걸요. 한 아빠트 사람들끼리는 일이 있으면 위챗그룹에서 이야기를 하면 된다던 당신이였잖아요. 이전에 여기 살 때도, 전번에 세집에 살 때도 이웃들을 친구로 추가한 적 없잖아요.”
“내 주장이 그렇긴 한데 옆집 아주머니랑은 가깝게 지냈으니까 혹시라도 추가했었나 하고 그러는 거지. 지금 친구추가를 해보면 옆집 주인이 도대체 누군지 알 수 있을 거요.”
성준이는 “옆집에 사는 301호입니다.”라는 문자를 적어 친구신청을 보냈다.
위챗을 열어놓은 채 잠간 기다려도 친구수락을 하였다는 알림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성준이는 위챗을 닫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경미더러 조급해말라고 타일렀다. 경미는 성준이에게 친구수락이 되면 원래 살던 아주머니인지, 새로 입주한 사람인지, 불빛의 색갈은 왜 그런 건지 꼭 물어보라고 당부를 하였다.
성준이는 출근하여 일을 하면서도 가끔 위챗을 열어보았지만 302호의 친구수락이 들어오지 않았다. 심심하면 성준이한테 문자로 친구수락이 어찌 되였는지 채근하던 경미는 오후가 되자 성준이한테 아빠트관리소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사회구역이며 아빠트관리소의 련락은 성준이의 소관이였고 경미는 이제껏 모르고 살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였다. 그러던 경미가 주동적으로 전화번호를 찾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속이 탔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성준이는 혼자서 씩 웃어버렸다.
저녁에 성준이가 퇴근하여 돌아오니 경미가 두 손으로 옆구리를 짚은 채 거실에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니, 무슨 관리소가 이래요? 관리비는 해마다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왜 물어보는 걸 안 알려주냐구요? 주민인 우리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권리가 있잖아요?”
경미는 성준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련주포를 쏘아댔다. 성준이가 신발을 벗고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 경미는 현관에서부터 방까지 졸래졸래 묻어다니며 흥분된 목소리로 오후에 아빠트관리소에 전화를 했던 일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경미는 낮에 아빠트관리소에 전화를 해서 옆집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지 물어봤다. 관리소 직원은 옆집 아주머니가 이사간 지 1년이 되였다는 얘기를 하면서 옆집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화번호가 얼마인지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경미가 옆집에서 왜 맨날 카텐을 꽁꽁 치고 있는지, 카텐 틈새로 비쳐나오는 불그스레한 불빛은 무엇인지를 따져물었으나 사적인 것은 모른다는 것과 알아도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 답변에 오후 내내 앙앙불락하던 경미가 반시간 쯤 조퇴를 하여 아빠트관리소에 들려 옆집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여전히 거절을 당했던 것이다.
“립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오. 우리라도 누군가 우리의 신상을 캐고 다니면 기분이 나쁠 게 아니요. 그리고 업종마다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거요.”
성준이는 가슴을 팔딱이며 씩씩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경미의 잔등을 쓸어주었다. 경미는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한참이나 막말로 욕을 하더니 씽하니 거실로 나가버렸다. 성준이가 옷을 다 갈아입고 거실에 나오니 경미는 도어스코프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아보고야 말 잡도리였다. 성준이는 경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어 “픽-” 하고 물찌똥 같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전문을 읽으시려면 아래 문자를 누르십시오.)
[책임편집:홍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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