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대문
문설근 / 단편소설
언제부턴가 그녀는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언제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는지 그녀 자신도 기억하지 못했다. 몸은 공중부양된 것처럼 붕붕 떠있는 느낌이였고 정신은 약에 취한 것처럼 흐리멍텅했고 자주 찾아오는 두통으로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건망증이 심하여 방금전 무얼 했는지조차 자주 까먹군 하였다.
한번은 라면을 끓이는데 자신이 라면을 끓인다는 사실을 망각하여 라면국물은 물론 면발까지 모두 타 없어질 때까지 넋 놓고 있었다. 탄 냄새가 집 안을 진동했지만 그녀는 냄새조차 제대로 맡지 못하고 방 안에 연기가 꽉 차서야 가스불을 켜놓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하마트면 큰 화재로 이어질 번한 아슬아슬한 상황이였지만 그녀는 무덤덤했다. 연기로 자욱한 집에서 그녀가 취한 대책은 기껏해야 가스불을 끄고 창문을 열어놓는 정도였다. 새까맣게 탄 남비를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지듯 몸을 던졌다. 90킬로에 육박하는 몸무게 때문에 침대가 출렁거렸다.
집에는 까맣게 탄 남비처럼 당장 처리하고 치워야 할 물건들이 많았다. 싱크대에는 기름때와 고추가루와 이물질이 덕지덕지 묻은 음식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배달시킨 일회용 그릇들도 그대로 방치해두어 역한 냄새를 풍겼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시간이 오래되여 말라비틀어진 데다 파리와 좀벌레들이 욱실댔다. 그런 파리와 좀벌레에 완벽하게 적응되였는지 그녀는 가볍게 파리채로 때려잡는다거나 그것마저 귀찮을 때에는 살충제를 뿌려 죽이는 정도였고 죽은 파리와 좀벌레들을 제때에 치우지 않아 바닥에는 죽은 벌레의 시체들이 란잡하게 널려있었다.
그녀는 고향의 아버지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은 매우 작아서 거실이자 주방으로 쓰고 있는 큰방과 화장실 그리고 화장실 옆으로 이어진 작은방이 전부였다. 그녀의 집은 시체로 널려있는 벌레의 수량 만큼이나 지저분해서 시급하게 처리하고 정리해야 할 주방외에도 거실에는 각종 박스와 계절을 가리지 않는 옷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고 일부 뜯지 않은 택배에는 무슨 내용물이 들어있는지조차 몰랐으며 문이 꼬옥 닫겨있는 작은방에는 인터넷 구매의 흔적들로 종이박스가 가득차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말 그대로 쓰레기집이였다. 발 디딜 자리조차 없는 데다 지독한 냄새에 찌들어 각종 질병에 로출될 위험이 있었으나 그녀만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한때 국내에서 100위권에 속하는 S건설기업에 취직하였다. 대기업에서 1년 남짓이 근무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로후준비로 장만해둔 아버지의 집에 기거하였다. 아버지는 힘이 남아있을 때 좀더 번다면서 외국에서 건설현장에 다니고 있었고 그녀가 소학교에 입학할 무렵 외국에 나간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달리 귀국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대학졸업식에 맞춰 아버지는 대학졸업을 축하한다면서 귀국하였고 그녀가 당차게 대기업에 취직하여 대도시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었다. 그리고 나중에 늙고 병들어서 그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결혼비용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다시 출국하였다.
그 때가 3년전 일이였으니 이렇게 페인이 되여 산 지도 벌써 2년 가까이 되고 있었다.
그 때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양꼬치를 먹었다. 아버지와 맞술을 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였다.
“네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였으니 벌써 10년 되는구나.”
“전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목수일? 그게 뭐가 좋다고. 톱밥 먹으면서 하는 일인걸.”
“무얼 만들어내는 일은 위대한 것 같아요. 목재만 있으면 원하는 모든 걸 만들어내는 아버지가 멋있었어요.”
“그러게. 넌 아버지가 일할 때 옆에서 지켜보는 걸 좋아했어. 계집애가 얼마나 꼬치꼬치 캐여묻던지.”
“사실은 아버지의 기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공도 건축설계로 선택한 거구요.”
“그래그래. 넌 남자로 태여났으면 크게 될 사람이였지.”
“아버지도 참, 직업에 남녀구분이 어디 있다구요.”
당시만 해도 그녀는 직업에 남녀구분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직업에 남녀를 구분짓고 그에 따른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그녀는 알지 못했었다. 그 때의 그녀는 순수했었다.
“그렇긴 하지. 네 어머니만 아니였어도 난 출국하지 않는 건데… 그 때 난 세집 맡고 네 뒤바라지를 하고 싶었어. 어린 널 기숙사에 보내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어.”
“엄마 닥달이 좀 심했어요. 절 박사로 키워내는 게 꿈이라잖아요.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기어코 아버지를 외국으로 불러냈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그깟 돈이 뭐라고? 이 흔한 양고기도 못 사주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잘 구워진 양꼬치를 건넸다.
“네 어머니는 네가 대학 4년으로 그만둔 게 퍽 서운한가 봐. 자기 뜻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내가 그렇게 함께 귀국하자고 했는데도 끝내 고집을 꺾지 않더라.”
“대신 대기업에 취직했잖아요. 졸업전에 공개채용에서 취직된 건 우리 학교에서도 몇명 되지 않아요.”
“그래, 우리 딸은 항상 장하지.”
그 때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따뜻했던 아버지의 손길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같아서 슬며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그러자 손바닥에 기름기가 가득 묻어나왔다. 기름기 묻은 손바닥을 습기에 가득찬 이불에 쓰윽 닦으면서 처절하게 널려있는 파리와 좀벌레의 시체를 초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찾아온 불면증 만큼이나 언제부터 라태해지고 게을러졌는지 알지 못했다. 2년 가까이 되는데 그것이 1년인지 10년인지 알지 못했다. 봄이 되여 꽃이 피고 여름이 되여 나무잎들이 무성해지고 가을이 되여 열매를 맺고 그러다 겨울이 되여 눈꽃이 휘날리는 자연의 섭리도 그녀는 인지하지 못했다. 더우면 옷을 덜 입고 추우면 더 입는 정도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체감했을 뿐이였다.
은둔형 외토리로서 그녀는 거의 외출을 거부했고 어쩌다 한번 외출한다 쳐도 모두가 잠들어있는 깊은 밤에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짙은 향수를 뿌리고 잠간 나갔다 오는 정도였다. 그녀의 외출은 대개 24시간 편의점에 들려서 라면이나 과자, 음료수와 같은 식량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현재 상황을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지금도 자신의 외국행은 그녀의 뒤바라지를 위한 거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외국국적을 따놓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그 곳의 생활에 적응되여 귀국할 의향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에 대한 기대만큼은 제법 커서 매사에 그녀의 삶을 간섭하고 계획해주고 심지어 자기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야장창 이야기하군 하였다. 그녀가 연구생시험을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꽤나 큰 충격을 먹었는지 한동안 그녀에게 련락조차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그녀의 대학졸업을 축하한다고 귀국할 때도 ‘배신자’라고 치를 떨었을 뿐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학위에 대한 욕망이 컸다. 당신 스스로가 중학교 졸업생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아니 입버릇처럼 람발하는 자기소개에 따르면 자신은 왕년에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고중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아쉬움 때문에 그녀의 공부에 대해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리하여 적당하게 둘러대면서 현재의 퇴락된 삶을 살고 있었다. 스스로 철저한 고립을 선택하였기에 친구마저 없었다. 홀로인 생활에 적응되였고 언제부턴가는 아예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지고 심지어 전화를 받는 일조차도 공포스러워지고 말았다.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일은 말 그대로 공포스러운 일이였다. 그러니까 매번 비슷한 내용으로 전화하는 어머니를 피하는 일은 제법 곤혹스러운 일이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얼마든지 연구생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 아니면 다시 일자리를 구하든가. 공무원시험은 어때? 너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면 남자 만나 시집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니? 어머니의 전화내용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였다.
은닉생활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어머니의 잔소리는 낯설고도 불편하여 무언의 짜증과 우울을 유발시키는 불편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벌레들의 시체처럼 저조하고 구태의연했다.
고향에 들어올 때 어머니의 따져묻고 지시하고 명령하기를 좋아하는 일관성에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그녀는 영상통화는 받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어머니는 련이어 영상통화를 보냈지만 그녀가 끝내 거부하자 그후로는 음성통화를 보내왔고 언제부턴가는 그 음성통화마저도 무시했다. 그녀가 자신의 전화를 자주 무시하자 어머니도 그후로는 웬만하면 문자를 보내군 하였는데 그녀는 짧게는 몇분, 길게는 몇시간 혹은 하루이틀 지나서 단답형으로 ‘오케이’의 이모티콘을 보내주는 것으로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군 하였다. 대개는 어찌어찌하라고 다그치는 문자내용이였기에 ‘오케이’이모티콘은 아주 적당한 대응이였다.
어머니는 그럭저럭 둘러대면서 넘기는 한편 아버지에게는 예전에 날씬하고 예쁘고 쾌활할 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낸다든가 가끔은 먼저 안부인사하는 것으로서 아버지를 기만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거해서 살았기에 아버지만 잘 속인다면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녀의 보잘것없고 하찮은 인생은 왕과장의 은밀하고도 음란한 마수로부터 벗어나고저 발악할 때부터 시작되였을 것이다. 그녀는 짧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분명한 음영에 휩싸이면서 피페해지고 병들고 말았다. 완전히 부서지고 무너져버린 그녀의 시간은 속절없이 자책하고 자해하는 자기학대 속에서 흘러갔고 비분강개한 마음은 우울이라는 감정 속에 삼켜져버린 채 마침내 재기불능의 페인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전까지 그녀는 우수한 녀자였다. 쾌활하고 진취적이였으며 의욕도 넘쳤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사진에서처럼 그녀는 예쁜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가졌고 남다른 총기와 근면성을 지녔기에 우수한 성적으로 중점대학을 졸업하였다. 특히 설계도의 기초가 되는 캐드CAD를 다루는 솜씨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베테랑급이였다. 운도 따라줘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국내 굴지의 S건설기업에 취직하였다. 전공이 토목학과의 건축공정이였고 주로 건축설계를 배웠기에 전공에 걸맞게 설계사로 취직된 셈이다. 하지만 현장을 알아야 제대로 된 도면을 그릴 수 있다 하여 초창기에는 현장에 나가있는 시간이 많았다. 말하자면 실습기간에 취해지는 렬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신입사원에 대한 일종의 의지와 끈기에 대한 체크 같은 거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농민이면서 유능한 목수였다. 재주가 좋아 시골마을에서 짓는 집이나 대문, 담장 그리고 내부인테리어까지 아버지가 도맡아하였다. 집의 상, 하수도 시설과 전선련결과 옷장, 주방의 식장 및 책상과 같은 가구들을 톱과 줄자와 망치로 뚝딱 만들어내군 하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몰입하여 작업할 때면 옆에서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목재를 자르고 다듬고 쐐기로 이어놓는 전통목수작업은 치밀한 계산과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매번 새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일은 기이하면서도 신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버지가 작업할 때면 옆에서 꼬치꼬치 캐여묻거나 때로는 따라해보기도 하면서 목수작업에 무한한 동경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계집애가 참, 별난 취미가 다 있어, 하면서 차근차근 가르쳐주군 하였다.
어렸을 때의 기억과 습관 때문인지 그녀는 현장의 업무에 제법 적응이 되였다. 인부들이 도면을 보고 기둥라인을 긋고 라인내에 철근을 엮고 콘크리트를 타설할 벽공간을 작업하는 과정이 사뭇 흥미로웠다. 그런 까닭으로 그녀는 다른 신입사원들보다 일을 빨리 배웠고 자기 앞의 일을 수걱수걱 잘해냈다. 일부 익살스러운 인부들은 녀자가 벽돌이나 들 수 있을는지 몰라? 치마 입고 뭔 망치질이래? 하면서 비아냥 섞인 어투로 가끔은 치근덕거리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그러건 말건 그녀는 닷새에 한개 층씩 올라가는 건물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실습지침상 햇내기 신입사원들은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회사에서 출품했던 기존의 도면들을 배우고 연구하고 오후에는 여러 현장을 이동하면서 현장경험을 쌓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녀가 배정된 설계과에는 남자직원들이 많았고 녀자직원은 거의 없었는지라 그녀는 마치 외계인마냥 희귀하고 기이한 존재가 되여 남자직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였다. 기술일군으로 채용되였으면서도 그녀는 출근하면 차 끓여 대령하기, 자료 복사와 인쇄, 엑셀에 기초적인 수치 입력 및 간단한 통계, 령수증 정리하기, 청소 등 하찮은 업무들만 주어지군 하였다. 그녀는 다른 남자 신입사원들처럼 어서 빨리 현장과 직결되는 도면을 배우고 익혀야 했지만 그녀에게 그런 일들은 차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사무실에서도 현장에서도 남자들의 걸죽하고도 불쾌한 롱담을 받아야만 했다.
(전문을 읽으시려면 아래 문자를 누르십시오.)
[책임편집:홍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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