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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빈집’을 그릴가?
-시와 시작노트를 쓰는 리유-
전은주 / 수필
내 고향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량수진 량수촌이다.
그곳, 마을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작은 강의 이름이 량수(凉水-차거운 물)이고 그 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만강 본류가 흐른다. 마을에서 한두키로메터 쯤만 가면 1945년 일본군이 패퇴하면서 폭파한 단교(斷橋)- 온성대교가 있고 그 다리 건너편에 조선의 온성군이 있다.
강물은 저희들끼리 스스럼없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럴가? 그 한이 그리 짙어 강바닥에서 차거운 샘이 펑펑 솟아나 한여름에 들어가도 시려서 강 이름을 량수(凉水)로 지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도문고중을 거쳐 연변대학교 조문학부에 들어갔다. 지금 그 마을에 ‘우리 집’이 사라져버려, 내 마음에는 그 마을도 빈 채로 있다. 모두 다 그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는 암으로 쉰이 못되여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30대에 리혼하고 한국에 와 일하고 있다.
아니, 우리 집은 있다. 내 마음속에 쓸쓸하나 찬연하게 서있는 그 ‘빈집’에는 20대였던 ‘빈 아버지’와 ‘빈 어머니’가 ‘빈 채’로 산다. 그 모두가 내 마음에는 오래 전부터 비여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과 마을이, 연변과 연변대학도 비여있다. 빈 채로 슬프게 있어도 밤이면 그리워진다.
나는 이따금 그 ‘빈집’ 꿈을 꾼다. 그 집에 예쁜 어머니와 다리를 절어도 굳센 아버지가 다정히 살다가 돌연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새파랗게 싸우고 벼락처럼 헤여지는 무서운 꿈을 꾼다. 그래도 내게는 그 ‘빈집’과 ‘빈 마을’과 ‘빈 아버지’와 ‘빈 어머니’가 눈물겹게 소중하고 잠이 깨여서도 그립다. 나는 늘 그렇다. 떠나온 연변과 연변 사람들 생각만 해도 나는 부끄러워진다.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닌데도 그들은 그 먼 곳에서 빈 채로 서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전혀 모른다. 그래도 그들이 그립고 그곳이 서러울 때마다 나는 시와 시작노트를 쓴다. 내가 쓰는 시는 그 빈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가득차도 잠 깨고 나면 다시 빈 채로 눈을 감는다. 아아, 그곳 사람들도 낮술에 취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버럭 화를 내고 돌아서지만 그 뒤모습이 너무 애달프다.
나는 한국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공간을 헤매고 다른 사람과 만나면서도 내게 소중한 그 ‘빈 것’들을 련모한다. 바삐 돌아가는 낮보다 불이 꺼지고 앞산도 어둠 속에 묻힐 때 되살아난다. 무슨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도 아무 노래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가능하면 건조한 이미지로 눈물 나고 울컥 솟구치는 화나는 것들을 ‘빈집’으로,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발처럼 내 작은 슬픔으로 ‘빈 것’들로 형상화하려고 한다. 연변의 눈은 너무 추워 바짝 마른 채 내리지만 한국의 함박눈은 늘 젖은 채 내려 내 머리나 옷깃을 눈물처럼 흐느끼며 적신다. 나는 금방 사라지는 것들을, 눅진한 채 쌓여있는 눈을 굴려 눈사람이라도 만들 참이다. 그 눈사람이 녹아 사라져도 그것은 내 마음속에 밤 내내 창밖에 서서 내 잠을 지켜줄 것이다.
그렇다. 이 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잠시 떼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사라져버릴 테지만 그 눈사람이 가고파 하는 ‘빈집’은 언 채로, 생각만 해도 소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 그리워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미워한다고 다시 오는 것도 아니다. 연변과 연변 사람들 틈에 언제나 머무는 것은 뒤돌아버리면 싹 사라져버리는 안타까운 뒤모습 뿐이다.
한국으로 류학 온 뒤로 내 마음은 아직도 두리번거린다. 행여 비여있지 않고 꽉 차있는 곳이 있을가? 그러나 이곳에도 휘황한 것들이 참 많지만 다 비여있고 이곳 사람들도 비여있고 그들이 말하는 기쁨이나 사랑도 비여있고 이곳의 그 숱한 아빠트도 ‘빈집’으로 있더라. 누가 언제 그걸 채워줄 수 있을가? 그 ‘빈집’에 무엇을 채우고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무엇으로 이 세상의 ‘빈집’을 채울가? 내 고향의 ‘빈집’을 채울가?
아니, 내 마음속에 쓸쓸히 서있는 고향의 ‘빈집’을 어찌 채울가?
나는 그걸 몰라 ‘빈집’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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