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놓고 벌이는 지략대결… “장이야!” “군이야!”

时事   2025-01-20 15:02   吉林  
따스한 해살이 내리쬐는 한낮, 티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은 남정네들의 모습은 마치 한폭의 그림 같다. 장기쪽이 번갈아 장기판 우를 오가며 내는 소리 그리고 승부에 긴장감을 더하는 숨소리까지, 조용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곁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의 탄성과 웃음소리까지 더해져 한낮의 정적이 깨트려진다.
살랑이는 바람에 나무잎이 흔들리고 풀벌레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는 가운데 때때로 멀리서 들려오는 닭울음 소리와 개짖는 소리가 정겨움을 더한다.


1980년대 이전, 장기를 두고 있는 장기군들.
“어이구, 어이구, 이제는 막힌다구. 또 쫓는군, 그럼 들어오면 됩지.”
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훈수꾼이 대뜸 판에 끼여든다.
“합졸하란 말입니다. 그러면 둘 다 죽는다구요.”
“상자리입니다. 차를 하나는 살려얍죠. 그러다 장을 치면 차 두개를 다 잃겠네.”
이윽고, 끝내는 장기군과 훈수군의 입씨름이 터지고 만다.
‘장기 훈수는 뺨을 맞으면서도 한다’는 우리말 속담이 어디 틀린 데 없다.
밭일을 마치고 흙투성이 손으로 장기쪽을 만지작거리던 남정네들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는 오히려 활기가 넘쳐보인다. 장기판 우에 펼쳐지는 전략은 마치 인생을 축소해놓은듯 하다.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눈빛과 집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모습은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준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갈 무렵, 이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이웃들과 정을 나눈 시간은 그들에게 큰 기쁨이였을 것이다. 장기판 우에서 펼쳐진 흥미진진한 승부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마을 공동체의 끈끈한 뉴대감을 만들어냈다.
여든을 넘긴 리근 할아버지에게 장기판은 삶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언어이다. 중국조선족장기대회에서 1등상을 받을 정도로 장기 고수인 그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장기쪽 하나하나에는 잊지 못할 추억들이 새겨져있다.
리근은 “장기판 우에서 승패를 넘어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이웃들과 정을 나누었다.”고 말한다.
그 시절 장기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느티나무 아래, 밭머리, 동네 골목 어디든 장기판만 펼쳐지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을 나누고 웃음꽃을 피웠고 마을 어르신들은 장기판을 둘러싸고 인생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세월의 켜가 쌓인 장기판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은 아름다운 유물 같다. 먼 옛날부터 이어져온 사람들의 숨결과 정이 깃든 장기는 이제 우리 문화의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장기는 우리에게 아날로그 감성을 선사한다. 장기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1980년대 이전 설날 모습,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 훈수는 뺨을 맞으면서도 한다’는 속담에 깃든 이야기를 곁들인다.
“옛날 한 마을에 차씨 성을 가진 나젊은 총각이 있었다. 하루는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소소리높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로인 두분이 앉아 장기를 두는데 그날도 그 총각은 빠짐없이 그곳에 가 장기구경을 하다가 속이 근질거려 제법 훈수를 들게 됐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성격이 무뚝뚝한 로인 한분이 ‘아니, 이 사람 젊은이, 남이 노는데 또 공연히 훈수질인가? 썩 물러나게!’라고 질책했다. 로인이 하도 엄하게 구는지라 그 총각은 할 수 없이 느티나무 우에 기여올라가 멀찌감치 우에서 내려다보며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내려다 보니 한 로인이 자기의 차가 당장 잡혀 죽게 된 것도 모르고 다른 말을 쓰려고 했다. 이에 그 총각은 ‘아이구, 차가 떨어집니다.’하고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멎기도 전에 그 총각은 몇길 잘되는 나무에서 허망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때 성격이 과묵한 로인이 총각이 떨어졌든 말았든 단통 그 총각의 뺨을 후려쳤다. 이로부터 뺨을 맞으면서 훈수한다는 속담이 널리 전해지게 되였다고 한다.”
장기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4000여년 전의 고대인도로부터 비롯되였다. 그 후 중국에 류입되고 또 조선반도에까지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2000년대, 장기대회를 열고 있는 연변조선족장기협회.
장기판은 초하(楚河), 한계(汉界)에 의해 갈라져있고 장기쪽 장군은 초와 한으로 구분되여있는데 이는 초패왕 항우와 한왕 류방의 대결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장기를 보통 ‘상희(象戏)’ 또는 ‘상기(象棋)’라고 부르는데 력사문헌에 의하면 중국 상기의 연원은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진한시기부터 당나라 이전에는 상기쪽이 장, 차, 말, 졸 등 네가지였으나 당나라에 들어서면서 일정한 변화가 생겼고 포가 증가되여 지금의 상기와 비슷한 모습을 갖춘다. 북송 말년과 남송 초기에 중국의 상기는 거의 기틀이 잡혔고 그 후의 몇개 조대를 걸쳐 지금의 상기로 된다. 송나라 사마광의 《상희도법》에는 장, 사, 보, 차, 마, 노, 포 등의 쪽이 있어서 오늘날 류전되고 있는 상기와 비슷했다.
장기가 언제 조선반도에 전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으나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이 아닐가 추측된다. 조선의 《고려사악지》에는 <례성강곡>의 유래와 더불어 송나라 상인과 고려인이 며칠 동안 련거퍼 장기를 두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런 기록으로부터 보아 조선장기는 고려시기부터 보편적으로 류전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기에는 장기를 ‘광상희’라 하였는데 ‘광상희’라고 하는 장기판의 선은 세로 14줄, 가로 15줄이였으며 교차점은 210개였다. 조선시기에는 ‘상희’가 널리 보급되였으며 조선장기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장기판은 세로 9줄, 가로 10줄로 되였으며 장기쪽은 각각 16개씩 가지고 놀았다. 조선시기에 들어서서 장기를 두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고 대중들 속에서 보편화되였으며 그 당시의 적지 않은 문헌에 장기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타나며 민화에서도 장기를 두는 장면이 묘사되여있었다.
넓은 의미의 ‘장기’는 우리의 장기 이외에도 마찬가지로 고대인도의 보드게임 차투랑가, 중국의 상기, 일본의 쇼기, 태국의 말룩 등을 모두 장기계렬 게임으로 부르기도 한다. 기본 놀이법은 상대방의 왕 혹은 장군을 잡는 것으로 승패를 가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특정한 룰로 움직이는 말들을 리용하여 하는 게임이다. 다만 세부적인 룰은 각 놀이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19세기 말엽부터 중국 동북으로 이주해 정착한 조선족들은 일상생활이나 명절을 막론하고 기회만 있으면 장기겨루기를 했다.
성급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족장기의 대표적 기능보유자는 중국조선족장기련합회 부회장으로 지내고 있는 조룡하이다.
그는 “중국 조선족장기는 장기쪽은 물론 포진법이나 행마법이 중국 상기와 구별됩니다.”라고 말한다.
조선족장기의 장기쪽은 왕이 가장 크고 차, 포, 상, 말이 다음으로 크고 병과 졸은 작다. 중국 상기는 왕을 장과 수로 나눈다. 그러나 우리는 초와 한으로 나눈다. 포진법도 다양하고 행마하는 활동범위가 넓고 령활하며 장기수가 다종다양하다. 조선족장기의 포진법과 행마법을 보면 장기판 밑부분 중심 즉 구궁중심에 왕을 놓고 량 옆 밑줄에 사를 놓는다. 차는 밑줄의 량끝에 놓고 순차적으로 마와 상을 놓는다. 장기군들의 전술에 따라 차, 마, 상 혹은 차, 상, 마로 대칭되게 놓는데 마와 상의 포진위치에 의해 오른 장기, 왼 장기, 량등상, 량등마 네가지 종류로 이뤄진다.
“장기기물이 없게 되면 빅을 수밖에 없는데 조선족장기는 빅장이 많습니다. 우리는 또 빅장을 허용합니다. 아마도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성격이 장기판에서도 구현되나 봅니다.”
장기를 잘 두었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장기수로 크고 작은 대회를 휩쓸었던 조룡하는 지금도 어릴 적 아버지가 흥얼거렸던 장기민요를 잊지 않고 있다.
상투배기 늙은이들
떼당 뚜당 뚜당 뚜당
낄낄 모여앉아
장기를랑 둔다네
장이야 군이야
옛다 어서 장 받아라
포가 펄쩍 넘나 뛰면
장이사 뚝 떨어진다
절씨구나 돌개장기
훈수군도 많고 많아
얼싸 장군을 받아라
절싸 멍군이 아니냐
이 장기를 이기면은
논을 사나 밭을 사나
장기판 술 한상에
긴긴 세월 다 가누나
“장기가 미래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룡하는 장기동호회를 활성화하여 젊은 세대들이 서로 교류하고 함께 성장할 수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장기는 더 이상 친숙한 놀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들에게 장기의 가치를 알리고 다시한번 매력적인 놀이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다.
조룡하는 시간이 나면 화룡시신동소학교에 마련된 민속장기양성반을 찾아 아이들에게 장기의 묘수를 가르친다. 화룡시장기협회와 화룡시신동소학교에서 손잡고 마련한 장기전승기지이다.
연길시조선족민속장기협회에서도 청소년양성부를 설립하고 연길시연남소학교, 연길시제13중학교 학생들을 조직해 무료로 민속장기양성반 수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조금씩 변화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장기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직접 장기를 두어보면서 그 매력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장기대회에 참가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승패를 떠나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장기의 력사와 문화가치를 알리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추진중에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젊은 세대들이 쉽게 장기를 접할 수 있도록 온라인 시스템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크고 작은 장기대회들도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길시조선족민속장기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창호는 “전국조선족장기대회를 앞두고 기량을 키우기 위해 우리 주 각 지역의 장기협회와 힘을 모아 대회를 자주 엽니다.”고 전한다.
지난 2004년에 설립된 연변조선족장기협회의 주최로 전국조선족장기대회는 2년에 한번씩 꾸준히 열렸다. 협회는 세계조선족장기대회에서 두번이나 우승을 한 조룡호 선수를 비롯해 장기 최고단수인 9단 고수가 20여명이 포진되여있으며 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우리 조선족장기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되고 있다. 
신연희 기자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复审:郑恩峰

终审:金星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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