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는 ‘비’가 아니다 □ 김동진
时事
2024-11-22 15:00
吉林
내가 이런 제목을 가지고 이 단상을 쓰는 리유라면 우리라는 군체 속의 일부 사람들이 토자패(土字牌)를 토자비(土字碑)로 착각하고 있기에 한마디 여쭈고 싶어서이다. 그들은 ‘방천의 토자비’라고 하면서 패말을 비석이라고 하는 어불성설을 만들어내고 있는바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필수사항으로 제기되고 있다. 력사기재와 문헌에 따르면 훈춘 방천의 토자패는 1886년 5월, 청조 말기의 도찰원좌부도어사이며 3품명관인 애국관리 오대징이 광서황제의 어명을 받들고 동북변경 사무를 처리하는 흠차대신으로 훈춘에 와 짜리로씨야와의 국계단판에서 승리한 뒤 두만강 하단에서 30리 되는 사초봉 남쪽에 세운 중로국경패말 즉 중로국계표식이다 좀 더 소개한다면 높이 1.44메터, 너비 0.5메터, 두께 0.22메터의 화강암으로써 정면에 내리글로 ‘토자패’(土字牌)라고 새기고 뒤면에는 로씨야문자 ‘T’자가 씌여있다. 그런데 이런 패말을 비석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한자에서 패(牌)와 비(碑)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두개의 글자이다. ‘패’는 호패, 문패, 표식, 표대의 의미로 쓰이고 ‘비’는 비석, 기념과 어울려 기념비, 렬사비, 묘비의 의미로 쓰인다 사전식으로 풀이하면 ‘패’는 어떤 내용을 알리기 위해 표식을 한 나무나 돌, 쇠붙이에 글을 새긴 것이고 ‘비’는 어떤 사적이나 업적 또는 어떤 사실을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 후세에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무나 돌, 쇠붙이에 글을 새겨 세운 것이다. 패는 패자(牌子)로서 흔히 정부기관과 사업단위, 사회단체와 업종 그리고 공공장소의 명칭으로 된 문패 즉 간판으로 통하는 단어이다. 훈춘 경신의 방천에는 오대징이 세운 토자패가 있을 뿐 토자비는 없다. 토자패는 논밭의 지경을 표시하는 지경돌과 같은 중로국계표식이지 무엇을 기념하는 중로국계비석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한번 곱씹어 말하는바 패는 절대로 비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비는 절대로 패가 아니다. 단언하건대 패는 패이지 비로 될 수 없기에 패와 비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겠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패를 비라고 하는 오역이 더는 범람하지 말 것과 우리의 말과 글로 된 생활 속에서 부분적인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방천의 토자패를 토자비라고 하는 무책임한 실수를 더는 반복하지 말기를 바란다.
来源:延边日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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