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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40대 주부 A 씨는 몇 달째 자신이 갑상샘암에 걸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턱 밑에서 미세한 통증이 느껴지면서부터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갑상샘암 증상과 가장 비슷해 보였다. “암이 확실해….” 그때부터 A 씨는 마음속으로 자체 암 선고를 내렸다. 그런데 초음파나 혈액 검사는 정상이었다. 그럴리 없다는 생각에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구강내과, 한의원 등을 돌았지만 여전히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배와 옆구리 통증이 있었던 작년에는 대장암, 췌장암, 신장암 등을 차례로 의심하며 괴로워했다. A 씨는 “가족들도 공감해 주지 못하고, 병원도 못 믿겠다”며 “밤새 인터넷 검색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다”고 토로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아프면 마음도 괴롭다.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아 조바심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각종 검사 등 충분한 의학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당연하다.
● “의사가 병명을 또 못 찾았네” 불신
심리적 원인으로 다양한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신체 증상 및 관련 장애(Somatic Symptom and Related Disorders)라고 하는데, 건강염려증(질병불안장애)도 이 가운데 하나다. 작은 증상만으로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집착하고,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크게 아팠거나, 주변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건강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질병을 두려워한다.
·몸 어딘가에 심각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몸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자주 알아차린다.
·여러 가지 통증 때문에 괴로워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질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건강에 대해 ‘걱정할 게 없다’고 말해도 믿기 어렵다.
·대중매체나 아는 사람을 통해 어떤 병에 대해 알게 되면 그 병에 걸릴까 봐 걱정된다.
자료: 건강염려증 척도(Whitely Index·WI)
건강에 대해 걱정한다고 전부 건강염려증 환자는 아니다. 정식 진단을 받으려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집착 △신체적 증상이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그 정도가 경미 △계속해서 두려워하는 질병이 바뀜 △건강에 대한 불안이 높음 △질병 집착이 6개월 이상 지속 △과도하게 병원을 찾거나, 아예 가지 않는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건강염려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만3972명이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50, 60대였다. 건강염려증 증상은 있지만,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병원 방문 환자 중 4~9% 정도가 건강염려증으로 알려져 있다.
● 신체감각 증폭해 과도하게 해석
건강염려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신체감각을 증폭해서 지각한다. 두통, 기침, 피로, 심장 두근거림 등 흔히 나타나는 증상도 심각한 질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면 더 아픈 것 같고, 진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한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도 문제다. 집요한 검색으로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정보만 끌어모은다. 특정 질병이 자신의 증상과 일치하는 것만 기억하고, 불일치하는 내용은 무시한다. 그러다 보면 암이나 뇌경색, 간경화 등 왜곡된 해석을 내놓게 된다.
사소한 일이 비합리적으로 과장돼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사고도 작용한다. 기침이 나면 폐암부터 떠올리는 식이다. 이에 더해 ‘건강=아픈 곳이 단 한 곳도 없는 상태’라는 비합리적 기준이 있어 작은 증상에도 건강이 크게 상했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 상실감, 버림받은 느낌이 원인?
이 외에도 건강염려증의 원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몸이 아프면 주변의 애정과 관심을 얻고, 고통스러운 의무와 책임은 피하는 반복적 경험이 건강 집착을 키울 수 있다. 자연스럽게 원하는 바를 이루기 쉬운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꾀병이 아니라, 진짜 아프다고 느끼기에 이 모든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건강염려증이 과거에 상처받고, 실망하고, 버림받은 경험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기도 한다. 이때 상실감이나 분노, 자기 비하 등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직접 느끼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우니 대신 몸이 아프다고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현대 이상심리학’에서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보다는 신체적 이상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견딜 만하기 때문에 신체적 건강에 집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건강 때문에 만성 스트레스…오히려 수명 짧아
질병에 대한 집착은 만성 스트레스로 이어져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
스웨덴 카롤리스카 정신의학 연구센터의 데이비드 마타익스-콜스 임상 신경과학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건강염려증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과 비교해 사망률이 84%나 높았다. 연구팀이 1997년~2020년 사이 건강염려증을 진단받은 환자 4129명과 일반인 4만1290명의 사망 원인을 추적한 결과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특히 순환계, 호흡계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4.14배나 높았다.
연구진은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기능 장애, 만성 염증, 알코올이나 약물 남용, 진료 회피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높은 자살률은 몸과 마음에 대한 적절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 정작 건강에 진짜로 중요한 운동, 건강한 음식 먹기 등 기본적인 것을 놓아버리는 것도 문제다.
● 어떻게 완화할까?
건강염려증을 완화하려면, 아픈 원인이 100% 신체에 있다기보다 심리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게 관건이다.
·‘폭풍 검색’은 그만
의학 정보를 찾아보면서 불안감이 심해지면 통증이 더 크게 느껴지고, 통증이 커지면 불안감도 커진다. 그러다 보면 다른 심각한 질병도 다 나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도한 의학 정보 검색은 불안감만 높일 뿐이다.
·객관적으로 증상 살펴보기
의심되는 질병명과 내 증상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객관적으로 다시 따져보면 도움 된다. 예를 들어 복통으로 인한 췌장암이 의심된다면, 췌장암 증상 중에 나에게 나타나지 않은 증상(황달, 체중 감소 등)은 무엇인지 따져본다. 편향된 관점을 벗어나 현실적 해석을 시도해 보자.
·의료진에게 자세한 설명 듣기
짧은 진료 시간에 간략한 설명을 듣고 오면 오히려 불신과 의심이 증가할 수 있다. 기왕 병원을 찾았다면, 증상의 속성과 의심되는 질병과의 관련성에 대해 최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추후 병원 방문 횟수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도움 청하기
질병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심리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도 몸에 문제가 없다면,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주변에서 꾀병이라고 오해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심해질 수 있으니,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건강생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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