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욱 서울 여의도고 동문 FC 감독(59)은 매주 토요일 모교에서 축구할 때마다 마치 고교 시절로 돌아간 듯 활기가 넘친다. 어릴 때부터 공 차는 것을 좋아했다. 수업 중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엔 어김없이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공부에 집중해야 했던 고교 시절에도 축구는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였다. 대학과 대학원, 교수 재직시절은 물론 사업을 하면서도 축구를 놓지 않고 있다. 삶의 활력소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땐 조기축구로 매일 새벽에 하는 것이었죠. 등교할 때마다 축구하는 분들을 보면 부러웠어요. 나중에 저도 성인이 되면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지금은 조기축구라기 보다는 축구동호회로 움직이며 매일 새벽이 아닌 주말에 하는 것으로 바뀌었죠. 물론 매일 새벽하는 분들도 아직 있기는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매일 공 차는 것은 쉽지 않더라고요.”
70여 명의 회원 중 명예회원 일부 빼고 99% 여의도고 동문들로 이뤄진 여의도고 동문 FC는 매주 토요일 오후 2~3시간 공을 찬다. 주로 모교 여의도고 운동장에서 타 동호회를 초청해 찬다. 가끔 타 동호회 구장으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오 감독은 “우리팀은 대회 출전은 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을 차며 선후배들끼리 우의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고교 선후배들이 주축이다 보니 ‘회원 규율’이 세기는 하지만 축구 하나로 끈끈하게 뭉치며 경조사는 물론 생업까지도 돕기도 한다. 여의도고 동문 FC는 2009년 창단했고, 오 감독은 2011년 합류했다. 1996년부터 경북 경주시 서라벌대(현 신경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해서 생활권이 서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1년 아이들 교육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바로 가입했고, 올해 임기 2년의 감독을 맡게 됐다. 그만큼 애정이 각별하다.
“학창 시절 공부했던 학교에서 축구하는 기분 아세요? 교정이 좀 바뀌긴 했지만 제가 공부했던 교실 건물은 그대로예요. 강산이 여러 번 바뀔 시간이 지났지만 저 자신은 마치 고교때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물론 이제 나이 먹어 낼모레 환갑이지만 기분은 그렇습니다. 대학 시절, 서라벌대 교수 시절에도 축구를 했지만 지금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죠. 동문 선후배들과 공 차는 지금이 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감독이지만 실제 지도는 여의도고 축구선수 출신 동문 후배들이 맡고 있죠.” 오 감독은 축구로 건강을 챙기면서 사업할 때 ‘축구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그는 다소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전자공학과 교수였던 그는 학교측이 지방에서 경쟁력 있는 학과를 만들라는 지시에 2008년 다이아몬드학과를 개설해 학과장을 맡았다. 그는 “평소 다이아몬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학교측에서도 좋은 평가를 해 학과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다이아몬드학과 특성상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확보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기도 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중앙아프리카에 머물며 다이아몬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축구를 했죠. 주로 거래 은행 직원들하고 했어요. 그런데 은행은 물론 거래처에 갈 때 유명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가면 좋아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술술 얘기도 잘 통하죠. 그래서 사업상 중요한 일이 있을 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등 유니폼을 입고 갔죠. 제가 있을 땐 박지성이 은퇴한 뒤였지만 그래도 인기가 있었죠. 박지성의 맨유 유니폼, 국가대표 유니폼 자주 입었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사람들은 박지성은 그 존재만으로 축구 선수 이상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오 감독은 일찌감치 축구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일이었죠. 호주 뉴질랜드 단기 연수가 겹쳐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을 비행기에서 기장의 목소리로 확인했죠.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골을 내줬다는 소식에 한국 사람 전체가 실망했죠. 설기현의 동점골에 비행기가 떠나가게 함성이 쏟아졌죠. 안정환의 골든골 땐 난리가 났어요. 기장도 ‘혹시 몰라 샴페인을 싣고 왔다’며 이코노미석 승객들에게도 샴페인을 제공했죠. 무엇보다 과거 ‘일본 혹은 중국 사람이냐?’고 묻던 호주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냐? 지금 한국에서 난리 났더라’며 엄지척을 해줬죠. 축구 하나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알려졌어요.”
오 감독은 지난해 2월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다이아몬드 사업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원석을 확보해 해외에 납품하거나 국내에 들여와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주로 수비를 보고 있는 오 감독은 “아직 건강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엔 틈틈이 몸으로 하는 웨이트트레이닝 스쾃과 런지, 팔굽혀펴기 등을 하며 체력을 키우고 있다. 그래도 25분씩 3~4경기는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 오 감독처럼 주말 1회 축구하는 것도 건강 유지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강도 높게 운동해야 한다. 미국의학회지(JAMA)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주말 전사(Weekend Warrior·격렬한 운동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국제보건기구(WHO)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면 건강을 유지하며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WHO는 주당 75~150분 이상의 격렬한 운동이나 150~300분 이상의 중강도 운동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격렬한 운동은 수영이나 달리기, 테니스 단식 경기, 에어로빅댄스, 시속 16km이상 자전거 타기를 말한다. 중강도 운동은 시속 4.8km로 걷기나 시속 16km 이하 자전거 타기, 테니스 복식경기 등을 말한다. 오 감독이 축구를 25분씩 3~4경기 하는 것은 격렬한 고강도 운동이다.
‘스포츠 천국’ 미국 헬스랭킹에 따르면 WHO 기준에 맞게 운동하는 사람은 23%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엔 주말에 축구하거나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축구는 25분씩 3~4경기를 뛴다. 75분에서 100분의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등산은 한번 하면 1,2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보통 4~6시간 걸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중강도 이상의 운동을 240분 이상 하는 셈이다. 주말 축구, 등산으로도 건강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동문 선후배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뛰고 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수비에 구멍이 생겨 골을 내줄 수 있죠. 그럼 온갖 비난이 쏟아지죠. 저 하나 때문에 팀이 지는 일이 없도록 늘 긴장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야구는 투수와 포수 놀음이라 야수들 중에 구멍이 있어도 티가 안 날 수 있지만 축구는 제가 안 뛰면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평생 축구를 하면서 느끼는 게 있죠. ‘녹색 그라운드에서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다’는 것이죠. 정말 이젠 1년이 달라요. 그래도 축구가 있어 버티고 있습니다.”
동문들이 뭉치다 보니 모교 관련 행사에도 자주 참여 한다. 체육대회 자원봉사, 장학금 지원, 진로 상담 등 학교측에서 요청이 오면 흔쾌히 참여하고 있다. “차범근 감독이 여의도고에 축구부를 만들었죠. 한때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뭐 명문은 아닙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죠. 그 축구 선수들이 졸업한 뒤 진로를 고민할 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문들이 각계에서 활동하다 보니 여기저기 소개해 주기도 하죠.” 주로 수비를 보는 오 감독은 ‘유튜브’ 등에 올라오는 축구 관련 동영상도 자주 찾아본다.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의 과감한 패싱 플레이를 가장 좋아한다. “이강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좋습니다. 뭐 일찌감치 해외에서 생활해서 다소 한국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건방지다고 느낄 수도 있죠. 하지만 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하는 게 좋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죠. 이강인 같은 선수가 많아야 한국축구가 발전하죠. 축구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것 있죠. 제가 실력은 이강인에 비할 바 안 되지만 수비를 보다 전방으로 킬 패스했는데 그 공을 잡아 공격수가 골을 넣으면 마치 제가 이강인이 된 것처럼 즐겁죠. 그 맛에 축구합니다.” 동아일보 양종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