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으로부터 조선족 출신 아역배우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족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서울시 신대방의 한 아파트에서 아역배우의 어머니를 만나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수수한 옷차림의 조선족 녀성이였다. 그녀는 갸름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큰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잘난 자식을 두었다고 틀거지를 차리거나 거들먹거리지를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양예원, 올해 41세였다. 고향이 같은 연길시라는 이유로 우리는 쉼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2024 부산국제영화제 참석한 최연소 아역배우 윤소율(6세)
“한국에는 언제 나왔을까요?”
“저는 중국에서 사범학교 유사반을 졸업했고 남편은 대학교에서 경제관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2013년 말에 결혼하고 곧바로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월세 20~30만 원하는 지하방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제가 임신을 하자 좀 더 넓은 빌라로 옮겼지만 여전히 시부모한테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님과 살다보면 보통 고부간의 갈등이 있는데 그런 건 없었을까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고부갈등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중간에서 남편이 역할을 잘해주었습니다. 첫애가 태어났을 때 생활용품들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는데 때로는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이 많이 배달될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시부모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속앓이를 하자 남편이 부모들한테 잘 얘기해주는 바람에 원 없이 상품구매를 할 수 있었습니다.”
“ 한국에서 부부가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처음에 남편은 가이드 일을 하고 저는 백화점 판매원, 동대문매장 야간복무원 등 일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이 류통업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돈을 빌려 시작을 했지만 현재는 비교적 규모가 큰 대한류통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원만 50여명이 넘고 일년에 매출액도 백억이 넘습니다.”
백억이라는 숫자에 나는 내심 놀랐다. “와우, 기성세대 중에는 성공한 분들이 좀 있기는 하지만 젊은 세대들 중에는 이 정도로 성공하기가 어려운데 참 대단합니다.”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남편이 성공했지만 가정에 소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이제 슬슬 아역배우의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막내딸 윤소율(2019.9.24.)의 화려한 프로필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율은 문창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생이다. 2023년 NETFLIX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순심 역), 2023년OTT드라마 <망내인>에서 (어린다은 역), 2024년 JTBC드라마 <굿보이>에서(하영 역), 2024년MBC 실화탐사대 <엄마를 고소합니다>에서 (주인공 어린시절 역), 2024년 채널A <탐정들의 영업비밀 39회>에서 (하연 역), 2024년 부산국제 영화제단편영화 <심부름>에서 (니코 역), 2024년 상업영화 <엄마**>에서 (유치원 학예회 어린이 역) 등이다.
윤소율 출연한 장면
“소율이가 어떻게 되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2024년 10월 2일부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그 화려한 막이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심부름>은 5분간 진행되는 단편영화인데 거기서 소율이 니코 역을 맡게 되었는데 그 원인으로 영화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푸른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윤소율은 녀배우 인도계 미국인 재즈의 손을 잡고 레드카펫을 밟으면서 관중들을 행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조선족 출신 영화감독 장률도 직접 찾아와서 소율이와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족 출신 영화감독 장률과 함께 기념사진 남긴 아역배우 윤소율
“그 단편영화에 지원한 아역배우들만 100여 명이 넘는데 그중에서 소율이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5일 내내 우리 어른들은 너무 좋았지만 소율이는 아직 어리다 보니 그 과정을 소화하는 것을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그럴 때는 부모된 입장에서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인터뷰 도중에 소율이와 소민이가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나는 소율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6살 여느 애들처럼 한참 까불고 뛰어다니는 아이였지만 두 눈이 똘망똘망하고 애교가 넘치고 활달한 아이임이 틀림없었다. 언니 소민이는 엄마를 많이 닮아 늘씬한 키에 갸름한 얼굴을 가진 조금은 소심한듯 싶지만 성숙미가 느껴지는 소녀었다.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윤소율(6세 가운데)와 언니 윤소민(10세)
“그런데 어떻게 되어 소율이는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나요? 혹시 유전적인 요소는 있는건 아닌가요?”
“유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소율이가 아니고 언니 소민이가 아기 시절 의상모델을 시작했습니다. 산후도우미로 우리 집에 왔던 이모가 소민이가 예쁘다고 하면서 산후도우미 사이트에 사진을 올려주었습니다. 그 바닥이 뭔지도 모르고 저는 그때부터 소민이의 사진을 여러 곳에 보냈는데 그 뒤로 모델대회에 나가서 여러 번 상을 받았습니다. 내가 자기일을 시작하면서 잠시 멈추었었는데 얼마전에는 전격적으로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소민이의 프로필을 각 회사에 보냈으며 다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지원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의 애들한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나만의 직업이나 일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나보다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 더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민이의 프로필을 보여드릴게요.”
그녀의 마음이 급해졌다. 더 많은 걸 자랑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윤소민 (2015.04.10.)은 문창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2023년 재능TV <두둥탁 못 말리는 판씨네>에서 (주인공), 2023년 tvN <경이로운 소문 2>에서 (이미지 단역), 2024년 JTBC <비밀은 없어>에서(이미지 단역), 2024년 JTBC<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이미지 단역), 2024년 MBC <서프라이즈> 1133회에서 (주인공 딸역), 2024년 MBC <서프라이즈> 1138회에서 (주인공 딸역), 2020년 [다다푸드] 농수산식품 유통공사 바이럴(인스타 혹은 유튜브 광고)광고 모델, 2023년 현대자동차 바이럴 광고모델로 출연했다.
윤소민 출연한 장면
“소율이는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차츰 이 일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소율이는 원래부터 승벽심이 강하다 보니 언니가 하니깐 자기는 더 잘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게 두 딸이 다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참 뜸을 들인 후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제가 먼저 중국인이라고 말합니다. 부유층이 많이 모여 사는 강남 쪽에서는 우리 딸들이 조선족인걸 알고 있지만 <그냥 괜찮은 집의 자식이다>라는 개념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애들을 깔끔하게 그리고 될수록 브랜드만 입히며 2억의 넘는 고급 차량을 갖고 다니는데 누가 감히 저희들을 차별할 수 있나요? 딸들도 엄마가 중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녀가 이어가는 뒷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강남 판에도 분명히 잘 사는 조선족들이 많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학부모는 아이한테 월 500만을 투자해서 무용을 전문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잘 사는 조선족은 아닙니다. 저보다 더 부유한 조선족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고민했던 나는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 앞에서 내심 부끄러웠고 외국인은 무조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 자체가 어쩌면 고정적인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배우를 하려면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네. 투자가 적지 않습니다. 연기학원 학원료만 각기 월 40만이고 큰딸의 무용 수업료는 월 90만 원입니다. 두 딸의 과외비만도 한 달에 200만 원이 들어갑니다.”
“혹시 애들 아빠는 애들에 대한 지출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가요?”
“애들 아빠는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애들한테는 무조건 제일 좋은 것으로 해주라고 합니다. 자신이 바쁜 일상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애들과 같이 외식하거나 놀러 나갑니다. 오늘도 딸들과 놀이동산에 간다고 지금 집에서 대기 중에 있습니다. 저는 늘 남편한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남편이 돈도 잘 벌고 딸들도 배우로 잘 나가고 있는데 그래도 고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애들이 과외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9시가 되는데 그때부터라도 애들을 쉬게 하고 싶은데 배역이 들어올 때면 대본을 보면서 애들을 련습시켜야 합니다. 때로는 12시가 넘을 때도 있습니다. 애들이 연기 때문에 학교를 못 갈 때도 있는데 작은 딸은 아직 어려서 괜찮지만 큰 딸이 혹시 학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연기를 한답시고 공부에 지장이 되면 혹시라도 연기가 낭패를 보게 되면 그때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까 봐 근심입니다.”
“혹시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이 배우의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닙니다. 나도 때로는 애들한테 이 일을 그냥 하고 싶은가고 묻기도 합니다. 만약 애들이 싫다고 하면 바로 그만둘 생각이지만 이미 애들은 연예인에 꽂혀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예인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최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답할 수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렇게 어려운 길이 아닌 아주 평범한 아이들고 키운 다면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왕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라도 썰다 보면 언젠가 칼질이 는다고 하니 얘들이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변함없이 밀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말 그랬으면 오죽 좋을까요.”
혼자서 애 둘을 케어하기는 버거울 것 같아 혹시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네. 그럼요. 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이만큼 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시어머니는 출근하기 전에 아침 일찍 우리 집에 들러 손수 아침밥을 지어 남편을 출근시키기를 몇 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매니저가 없이 여기저기로 촬영을 갈 때면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를 운전해서 케어를 해주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크네요. 그럼 엄마가 바라보는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요?”
“저는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운도 따라야 합니다. 우리 애들은 동네에서는 예쁜 애들이지만 촬영장에 가보면 우리 애들보다 더 예쁜 애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는 애들한테 무조건 이 길로 가야 한다는 것보다 애들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파란 가을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조선족 출신 아역배우 윤소율과 윤소민이 한국 영화계에서 빛나는 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튀르키예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로 마무리를 장식해 본다.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아직 건너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아이는, 아직 자라나지 않았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나날들은,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날들
게다가 네게 하고픈 가장 아름다운 말들은, 아직 말해보지도 못했는데...
/박연희 사진: 리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