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남 문학세상] (단편소설) 글쎄

文摘   2024-10-21 08:30   吉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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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글 쎄
한영남
글쎄…
그는 벌써 글쎄를 다섯번인가 여섯번인가 곱씹고있었다. 딱히 뭐라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때 의례 내뱉군 하는 입버릇이다. 그리고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렇다고 특별한 의미도 없는 말로서 그에게는 너무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때로 그는 글쎄라는 말을 만들어낸 선인들의 지혜에 깜짝깜짝 놀라군 했다. 이 글쎄라는 말이야말로 오로지 그를 위해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그는 은근히 즐기고 무척이나 애용하고있었다. 그는 언젠가 글쎄라는 제목으로 시까지 지어본적이 있었다. 
커피잔에 뜨거운 눈물이 떨어지겠지 글쎄
떨어지는 눈물이 비처럼 소리없겠지 글쎄
소리없는 비물이 창문을 두드리겠지 글쎄
두드리는 소리가 커피를 뒤흔들겠지 글쎄
뒤흔드는 바람에 커피가 신음하겠지 글쎄
신음하는 커피에 눈물이 쏟아지겠지 글쎄
만일 단어와도 결혼이 가능하다면 그는 단호히 글쎄라는 낱말과 결혼했을거라는데 의심을 두지 않았다.
글쎄…
또 한번의 글쎄를 내뱉은 그는 그러나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글쎄는 글쎄 그한테 무척 필요한 말이긴 하되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때만큼은 전혀 도움이 되여주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그가 이토록 주저하고 주춤하고 서성거리고 머뭇거리는데는 까닭이 있었다. 
모처럼 찾아오는 주말인데 오는 토요일에 결혼이 둘, 일요일에 회갑이 하나 있단다. 회갑의 주인공은 평소 별로 가깝게 지낸 사이가 아니라서 그냥 인편에 돈만 주어도 괜찮은데 토요일 결혼은 그가 꼭 가봐야 하는, 말하자면 충분히 신세를 진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충분히 신세를 질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거의 반드시 꼭 가봐야 하는 사람들인것이다.
처음에 먼저 k평론가로부터 딸이 결혼한다는 말을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에서 들었을 때 그는 마치 자기일처럼 기뻐하면서 저 꼭 갈거니까 자리 남겨두고 기다려요 하고 우스개삼아 그러나 웨치다싶이 말했었다. 그 전화를 받고 회사에 도착해서 잠시 이제 결혼식에 참가해서 어떤 축사를 해줄가 단어들을 고르는데 청첩이 그의 앞에 도착했다. 모 잡지사 부총편의 아들결혼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 둘의 결혼식은 시간까지 꼭같았다. 
글쎄...
두곳 다 그가 꼭 가야 하는 결혼식이고 자칫 이 결혼식에 빠졌다가 그의 문학행보에 어떤 장애물이 놓일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먼저 k평론가 딸의 결혼식에 참가해서 얼굴도장 찍고 교통체증으로 이제야 왔습니다하고 부총편 아들결혼식에 참가하면 어떨가? 
썩 신통치는 않다. 
k평론가의 딸 k양의 결혼식에 꼭 참가해야 하는 리유는 그 k양이 그를 졸래졸래 따라주는 문학후배라기보다는 그녀의 아버지가 평론계의 거물급 비평가로 그의 눈에 나기만 하면 가차없이 문단매장을 당하기 십상이기때문이다.
누구누구 쟁쟁한 그의 선배들이 일 같지도 않는 그런그런 일로 그렇게 쓰디쓴 고배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이미 십수년전에 벌써 문단의 이슈가 된지 오래고 이제 막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k양의 아버지가 더구나 무시할수 없는 커다란 바위덩이같은 존재로 어디까지나 부담스레 안겨올뿐이였다. 
가긴 가야 하는데 어디를 먼저 간다?
차라리 같은 례식장에서 하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허구픈 생각까지 해보지 않은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그의 생각이요 상상일뿐이였다.
문득 그는 둘 다 문단사람들인데 나 하나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이 선택문제를 두고 고민할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왜 그걸 생각못했지?
그는 먼저 가볍게 메신저로 여기저기 찔러보기 시작했다. 
-토요일 어디 갈건데?
-토요일? 토요일에는 낚시 가야지.
-낚시 같은 소리 하시네. 결혼식에 안 참가하고?
-아참, 그렇지. 결혼식이 있지. 그럼 자넨 어디 가려고?
-물음에 물음으로 대답하는것은 매우 좋지 못한 습관이야.
-매우 좋지 못한 습관이라고 치고, 대체 어디 가려고?
답답하기는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였다.
-알았어. 가면 같이 가?
-좋을대로.
-오케이.
한사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여보세요? 오는 토요일 결혼식 가시나요?
-네.
-어느 쪽에 가요?
-저야 글도 잘 안 쓰고 평론과는 큰 상관이 없지만 잡지사와는 두루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부총편 아들결혼식에 가야 할건데요. 왜요? 정선생님은 어디 가시려구요?
역시 물음을 던져온다. 그나마 자기 결정결과를 알려오고 물어오니 괜찮다고 해야 할가.
-제가 그래서 지금 좀 답답해서 물어보는겁니다.
-맞다. 정선생님은 두곳 다 대충 넘어갈수 없는 처지지요.
-처지? 제 처지가 뭐 어때서요?
-호호. 아니요. 그냥...
쓸데없이 말 걸어서 괜히 속 보인것 같아서 그는 저으기 심기가 불편해졌다.
왜 하필 하루 한시지? 하루 한시 태여난것도 아니면서 하루 한시에 결혼식을 할건 뭐람?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손바닥만한 문단에서 맨날 문필회 같은걸 하면 코 맞대는 사람들이 왜 이래야 하나?
결혼식장은 한곳은 고려원이요 한곳은 민족호텔이다. 민족호텔은 그나마 시내 중심이라 할수 있지만 고려원이라면 시교다. 두곳을 이동하려고 해도 택시료금만 30원 넘게 나온다. 이런 젠장할!
그러니 결론적으로 한곳에 가서 얼굴 보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해도 날씨 좋은 토요일 교통체증으로는 결혼식 끝날 때나 도착할지말지다. 아아 해골 아퍼!
그날 이후로 어느 결혼식에 가느냐가 문인들 사이 인사말이 되여버렸다. 두 집 모두 점쟁이들한테서 사주팔자를 보고 받은 날자요 시간이라고 천하 별일이 있어도 그대로 진행해나간다는 의지였고 수많은 문인들을 두고 누구의 파워가 더 강한가 은근히 경쟁이 붙어버렸다. 그 경쟁은 그들 두집의 의지와는 달리 떠밀려서 붙게 된 경쟁이라 해야 하는게 바른 표현이 될것이다. 이제 누구도 물러설수 없게 되였고 문인들 역시 날이면 날마다 팽팽해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지어 화약냄새마저 희미하게 맡을수 있었다.
사실 모 잡지사 부총편과 평론가 k선생은 각별한 사이이기도 했다. 그들은 대학 동기동창인데다 둘 다 젊어서부터 문명을 날렸으며 문단에서는 알아주는 소설가요 평론가였다. 그들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얻어터질 각오를 하고 서로를 지켜주었고 그래서 그들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져갔다. 특히 동기동창이면 의례 있을법한 라이벌의식도 그들한테서는 찾아볼수가 없어서 다들 그런 그들의 우정을 부러운 눈매로 바라보군 했었다. 지어 많은 사람들은 지체가 어금버금인 그 아들과 그 딸이 결혼하지나 않을가 은근히 지켜보고들 있었고 절강대학에 간 딸과 남경대학에 간 아들도 서로 곧잘 어울린다는것을 대학에 갓 입학했을 무렵에는 총편과 평론가마저 은연중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요 더구나 사랑감정은 지어 한치앞도 모르는게 인생사라 했던가. 그 자식놈들은 평생 친구로 지낼지언정 결혼상대는 아니라는 결론을 대학졸업을 앞두고야 각각의 부모들한테 알렸고 그 소식과 더불어서는 각각의 대상자를 소개했다. 남자는 한족처녀를 끌고 집에 왔고 녀자는 만족총각과 손잡고 집에 왔다. 장성한 자식들이고 본래도 자식들 일에는 그들이 알아서 하는데까지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리라던 두집 어른들은 약간씩 씁쓰레한 입들을 다시면서도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식만은 고향에서 조선풍속대로 한다는 조건에는 그 딸과 사위될 사람, 그 아들과 며느리될 사람도 선선히 따라주었다. 그렇게 되자 바빠진것은 두집 안주인들이였다. 그들은 사처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탐문하고 수소문과 암소문을 거듭한 끝에 아무아무날 아무아무시에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는 결론을 부적처럼 받아들고는 남편들과 자식들에게 통보했다. 다들 이의가 없었다. 있을리 없었다. 점쟁이가 택한 길일이라고는 하지만 력서장을 훑어보아도 그만큼 좋은 날자 또한 달리 눈에 띄지 않았던것이다.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인 까닭은 5월 18일이라는 날자가 날자인것도 있지만 하필 그 점쟁이들은 각각 다른 점쟁이로되 하는 말은 이구동성으로 이제 일요일이 좋다는 재래식 편견에서는 벗어나야 하며 토요일이야말로 세상 최고의 결혼길일이라는것이였다. 게다가 현대인들은 일요일에 술 마시고는 월요일 정상출근에도 영향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둥 토요일만세식의 리론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결혼식 날자가 정해졌고 서로 통지하기전까지는 두 집에서도 서로의 결혼날자를 까맣게 모르고들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일은 결혼날자에서 터지고 말았으니 처음에는 웃으면서 어 그럼 우리 서로 축복만 해주고 각자 자기의 결혼식 잘 치르도록 합세 했는데 곁에서들 어찌나 이러니저러니 극성인지 어느새 그들은 이상한 회오리바람에 휘말려들지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어쨌거나 토요일 오전 11시 18분에는 정식 웨딩마치를 울릴것이니 오고 안오고의 판단은 알아서들 하세요였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문제에 당착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어려움을 겪을대로 겪은 문인들은 결국 작가협회 주석을 무기명투표로 선거할 때보다 더 긴장되여서 아무에게도 나는 어디로 가오 말은 하지 않을망정 은근히들 이번이야말로 사람들 편을 확실하게 갈라볼수 있게 되였다고 눈에 힘을 주고 사태의 흐름을 주시하고들 있었다.
드디여 결혼식을 앞두고 두집에서는 하객쟁탈전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둘 다 체면을 구길수 없는 판이고 뒤로 물러설 여지가 전혀 없는 배수진이였다. 더러 심성이 착해서 이 선택문제를 풀길이 없는 속수무책의 문인들은 이럴거면 아무데도 안간다는 식으로 여차여차한 사정이라고 부조를 턱 먼저 해버리고는 아예 먼 타지로 출장을 떠나는 축들마저 있었고 일부 오기 있는 문인들은 이 무슨 미친 개싸움이냐고 호질을 하기에 이르렀다. 
문단의 기싸움은 서서히 도시를 잠식해들어가서 이제 문인이 아닌 일반사람들도 곧잘 결혼식건을 술안주로 삼군 했다. 그만큼 도시는 커도 조선족권이란 어디까지나 손바닥이였던것이다.
수요일 오후나절 그는 이제 소임인 맡은 신문지면을 다 만들어놓았으니 퇴근이나 해버릴가 잠시 궁싯거리고있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이 드르륵드르륵 몸을 세차게 떨었다. 진동모드라 바지궤춤속에서 핸드폰은 못살겠다는듯 바르르바르르 요동을 치고있었다. 얼른 꺼내들었다. 문제의 부총편님이시다.
-아 예. 오랜만입니다. 잔치준비는 잘 되십니까?
-잔치야 뭐 애가 하지 내가 하나?
-허허 그래도 잔치를 치르려면 일들도 많고 하겠는데요.
-뭐 애 엄마가 다 알아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나는 편안한 백성일세.
-사모님 로고가 이만저만 아니겠습니다.
-응, 딸 치우려면 그쯤은 각오해야지.
-근데 며칠 뒤면 바로 뵐건데 전화는…
-응 그게 말이야. 오늘 저녁 시간 낼수 없겠나? 나 자네랑 술 한잔 하고싶어서…
-아 저야 좋지요. 불러만 주신다면야…
-그럼 다섯시쯤 부산비빔밥집에서 만나세.
-알겠습니다.
그렇게 간 술자리인데 모인 사람들이 꽤 되였다. 흡사 어떤 세미나가 조직되지 않았나 싶었다. 각 신문사, 잡지사, 방송국 등 문단과 이런저런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런데 정작 일정한 직위도 있고 문단에서는 말깨나 선다는 중요한 인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개 그처럼 확실하게 이편도 저편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들 말하자면 평소 아무한테도 싫은 소리를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눈을 슴벅이고있었다. 이네들은 문필회에 가서도 극상해야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남들의 말이나 열심히 듣는체 하다가 술이나 좀 축내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신문사, 잡지사, 방송국에 출근을 하고있지만 지위도 없고 그와 마찬가지로 말단직원이 대부분이였다. 그러나 정작 문단에서 글을 제일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였고 연줄이 닿지 못하고 빽이 없고 또 두루두루 뭐가뭐가 결여되여서 문학상 하나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였다. 
술이 시작되자 부총편이 일어서서 정중하게 개주사(开酒词)를 했다.
-여기 오늘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바로 오늘 우리 문단의 중견들입니다. 여직 잡지사 부총편이랍시고 턱만 잔뜩 쳐들었지 사람구실 제대로 못한 점 량해 구합니다. 여러분들의 문운형통을 빌면서!
위하여가 거듭되고 건배가 거듭되면서 술자리가 서서히 흐벅지자 이제 문학에 대한 이야기만 쏟아져나왔다. 이런저런 병페따위 이를테면 간행물들에서 편집의 구미대로만 작품들을 대하는 문제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지면을 더 할애해야 한다는 문제에 적은 원고료나마 제때 주지 않는 문제에 비평이 문학을 리드하지 못하는 문제에 아무튼 평소에는 속에 깊이 넣어두고 감히 아무데서나 누구한테라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고있었다. 다들 오늘 술자리의 의미를 너무 잘 아는지라 은근히 잡지사를 겨냥한 말들을 꺼냈다. 그렇다고 해결을 바라는것은 아니였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한 말들이 해결을 볼수 있다면 그 많은 공직자들이 다 뭘 먹고 산단 말인가. 그저 속에 있던 말들을 어쩌다 요행 차례진 기회를 빌어 발설하고있었을따름이였다. 
비평이 문학을 리드하지 못한다는 화제가 나오자 부총편은 기다렸다는듯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점잖게 한마디 했다.
-거 평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오늘 이 장소에서 하지 맙시다. 가뜩이나 요즘 그렇고그런 판에…
-총편님, 저희들은 문단의 병페가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지 절대 어느 평론가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그바람에 술좌석이 많이 식어버렸다. 부총편은 괜히 한마디 께끼였다가 술상 차린 값도 하지 못할가봐 좌중의 기분을 풀어주기에 안깐힘이였다. 밀린 원고료도 준다는둥 이제 나같은건 물러서고 여기 젊은이들가운데서 패기있고 전도 유망한 사람들로 편집들을 물갈이해야 한다는둥 속에 있는 말 없는 말을 한바탕 널어놓았다.
다들 그 속내가 너무 뻔히 들여다보였지만 남에게 절대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넘어가주고 넘어가주고 넘어가주었다. 
그리고 부총편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서 결혼식날 꼭 참가하겠다는 언질을 두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2차 어쩌구 하는것을 간신히 말려 부총편을 택시에 밀어넣어보내고 다들 서로를 바라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2차도 없이 제 갈길을 가기로 했다. 2차를 하면 반드시 결혼식말이 나올것이요 그러면 적어도 술기운에 말실수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은즉 그들은 아예 그런 사고가능성을 배제하기로 한결같이 합의를 보았던것이다.
합의는 했으나 술을 지극히 사랑하는 몇몇은 기어이 2차를 가고야 말았다. 술상에서 술상으로 옮겨지는 2차란 소주가 맥주로 바뀌였을뿐으로 화제나 사람이나 비슷비슷했다. 다만 부총편이 불러서 모인 사람들이라 해도 평소 같이 어울리는 끼리끼리가 다른지라 그렇게 그렇게 서로 갈려서 두어서너너덧일여덟묶음이 되였을뿐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기어코 아무도 그 어려운 숙제를 먼저 꺼내려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 술 마시는 내내 술에 서서히 취해가면서도 다들 극력 그 화제만은 피하려고 애를 무등 쓰고있었다.
이튿날 휑한 속을 부여잡고 출근해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한번 핸드폰이 포르르포르르 떨어댔다. 평론가의 목소리는 저으기 단호해보였다.
-오후 네시. 한강불고기. 밥이나 합세.
불고기집에서 밥을 먹자고 하는것은 꼭 평론가 어투다. 만세시를 쓰다가 목이 갈려서 평론으로 넘었다는 k평론가는 매우 가냘픈 몸매와는 달리 무척 단호한데가 있었고 그래서 늘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무슨 전보처럼 전달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어제도 좋아서 간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더구나 안갈수 없는 상황이다. 에라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은 태깔도 좋다고 했으렷다.
그래서 갔는데 그는 웃음이 실실 새나오는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어제 만났던 문우들이 한결같이 집결해있었던것이다. 평론가는 딸까지 데리고 왔었다. 그 딸은 절강대학을 나온 뒤 아버지의 막강한 힘을 빌어 방송국에 탑승했고 일년인가 지난 후에는 주임자리를 꿰차고있는 유능인물이였다. 
방송국은 누구나 노리는 노른자였다. 월로임이 만원을 상회하는 곳이요 하는 일이 너무 쉬워 방송국 전체 직원들은 자나깨나 다이어트의 밀방만을 찾아 헤매는 처지였다. k양에 따르면 방송국에서는 굳이 원고를 교정보지 않는다고 한다. 기자가 원고를 써서 담당아나운서에게 넘기면 다 알아서 제대로 읽어준다는것이다. 그러니 철자나 띄여쓰기에 약한 사람이라 해도 얼마든지 방송국 기자생활을 해먹을수 있다는게 또한 전설같은 이야기였다. 
-시끄러운 말은 잘라버리겠소. 오늘 이 술자리를 마련한것은 다름아니라 토요일 결혼식에 꼭 와주십사 하는 어려운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요. 다들 잘 아시겠기에 해석은 생략하기로 하고 오늘은 코 비뚤어지게 술이나 마시기오. 자 건배!
그 커다란 컵에 담긴 소주가 파죽지세로 쏟아져들어간다. 역시 평론가 아니면 나올수 없는 언이요 행이였다. 그래서 다들 덩덩한 김에 술들을 서너순배 건배를 했고 그 딸이 두번째로 부어주는 술까지 건배를 하다보니 대충 술들이 익어갔다. 그래서 그들은 또 평론에서 문단의 구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릴 문제에 구체 작품에 대해 구체적인 평론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문제에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평론은 하나마나하다는 문제들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한바탕 떠들어댔다. 평론가는 처음에는 안색이 굳어질듯 하더니 인츰 미소를 띄우면서 당연한 말이지 더 이를데 있나 진작에 그렇게 됐어야지 하고 두서없이 말을 늘여놓더니 이제 자기는 나이도 먹을만치 먹었으니 너희들 가운데서 쌩쌩한 평론가가 나와야 한다면서 주먹으로 술상을 탕탕 쳤다. 그바람에 평론에 관심이 있던 몇몇은 당장 평론가가 된듯 무게있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술이 약한 평론가는 그 딸이 대신 마셔주었는데도 많이 취해서 술좌석을 파할 무렵에는 거의 남에게 업히다싶이 택시안에 던져졌다.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끼리끼리는 다시 2차라는걸 갔고 어제 마신 술과 오늘 마신 술이 심각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많이는 마시지 못하고 각자 집들에 돌아가고 말았다.
문제의 결혼식날자가 래일로 다가와있었다. 그는 어쩔수없이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또 글쎄 하고 우물쭈물에 주춤주춤을 섞고있었다. 이럴 땐 왜 입원이라도 하지 못하는지 건강한 몸뚱아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차사고가 났다고 해볼가. 토요일이라 아무도 모를걸. 이김에 아예 청가도 좀 맡아서 아픈체 몸보양이나 한다? 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금요일 오후였다.
그는 될수록이면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누구누구처럼 출장이라도 가는걸 그랬다고 조금 후회하고있었다. 지금 떠난다면 너무 눈에 나는 꼴이 되겠으니 이제는 꼼짝없이 결혼식행차의 선후를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있는데 희소식이 전해왔다. 문단의 원로님들답게 그들 두집에서 협상한 끝에 서로 대형버스를 파견하기로 했단다. 즉 고려원에서 결혼식을 하는 부총편네가 파견한 차는 민족호텔 앞에서 대기하고있다가 고려원쪽으로 이동하는 손님들을 실어나르고 민족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평론가네가 파견한 대형버스는 고려원 앞에서 대기하고있다가 민족호텔쪽으로 이동하는 손님들을 실어나르기로 합의를 보았단다. 그리고 철저히 문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 선택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아무 군말이 없을것이며 그들의 이동에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단다. 
야호!
만세 삼창이 절로 터져나오는 순간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다시 얼떠름해졌다. 그래도 선택은 해야지 않는가? 먼저 어느 집에 가야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최종선택이요 대형버스는 이 선택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 도움도 되여주지 못하는 존재였다.
젠장!
아직도 누가 누구를 하는 계급투쟁시기란 말인가? 내가 누구한테 먼저 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대로 할테다. 그들때문에 글 쓰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잡지에 안내주면 말고 평론가가 욕하겠으면 하라지. 매장당해도 좋아. 만일 결혼식에 불참해서, 불참이 아니라 성의를 보이지 못해서 문단매장을 당한다면 기꺼이 당해주리라.
그는 평론가만치나 단호한 표정이 되여 몰래 주먹을 꽉 쥐였다. 손에서는 땀이 나고있었다.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도 그는 래일의 문제로 뇌즙을 짜고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부총편한테는 먼저 가되 천원을 부조하고 버스로 이동해서 평론가네에 가서 오백원 부조하고 거기서 끝을 보리라. 아직도 천원씩 부조하는것은 특별한 관계가 아니고는 그렇게 못할것이라고 그는 계산하고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랭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에서는 커피가 아닌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것을 그는 요즘에야 깨닫고있었다.
멀리 푸른 밤하늘에서 저들끼리 이마 맞대고 도글도글 익어가는 별들을 그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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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남

언론출판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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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남 프로필

1967년 2월 21일, 길림성 안도현 출생

1986년 <천지>(현재 <연변문학>)에 처녀작 시 <소원>발표

지금까지 시,소설, 수필,평론 300여만자 발표

각종 문학상 수십차 수상

소설집<섬둘레 가는 길>,시집 <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등 출간.

연변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중국시가학회 회원.현재 상상문학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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