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학≫] 나의 사막인연 (황유복)

文摘   2024-10-01 06:16   吉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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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잡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75주년 특집호 조선어작품

나의 사막인연

황유복

황유복


1. 우연으로 이어진 사막려행

려행을 떠나는 리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익숙한 공간이 던져주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충동 때문에 익숙한 공간의 상대편인 낯선 공간에 대한 기대감은 많은 려행자가 가지는 공통점일 것이다. 려행은 기분 좋은 일탈이여야 한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그 낯섬에 대한 추억은 돌아온 일상에서 활력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정해진 목적이나 별렀던 일 없이 훌쩍 떠나는 홀가분한 려행을 하게 된다.

오래전의 일이다. 2008년 12월 31일, 계속 바쁜 일정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신년공휴일을 맞게 되였다. 끝없이 쏟아지고 쌓이는 일 때문에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진 정신줄을 잠시 풀어놓고 어딘가 낯선 곳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고 훌쩍 떠난 려행이 우연하게도 내몽골 나이만기(奈曼旗) 호르친(科尔沁)사막이였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나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우리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북경북역(北京北站)을 찾아갔다가 마침 통료(通辽)로 가는 렬차가 있어 침대권을 사서 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호르친 사막려행은 우연의 련속이였다. 무작정 떠나게 된 리유는 갑자기 밀려온 어느 한 이성에 대한 련련한 그리움이 가슴저리게 타 들어와 내 가슴을 불태워버리기 전에 어딘가로 훌쩍 떠나게 된 것이고 북경북역에서 우연히 통료행 완행렬차를 만나 차를 타게 된 것이다. 2009년 새해아침 6시경에 렬차가 덜컹 정거하는 바람에 나는 잠에서 깨여났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나이만(奈曼)이라는 역이였다. 북방민족사를 전공하던 대학생시절, 기말시험 때 고대 몽골의 한 부족이던 ‘나이만’의 지리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5점이 깎였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벌떡 일어나 통료행을 포기하고 중도에서 하차하였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나이만은 몽골족자치구의 하나의 기(旗)소재지이지만 고대 ‘나이만’부족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한족지역의 작은 현성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나이만 시내를 한바퀴 돌면서 알았다. 다만 길거리에 모래들이 바람에 따라 뒹굴고 있어 사막지역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역 광장부근의 작은 음식점에 들려 아침식사를 하고 시내를 벗어나자 사막이 한눈에 안겨왔다. 평생 처음 사막을 직접 구경하였다. 드문드문 농가들과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보였고 사막으로 뻗어나간 길의 량옆에는 울타리처럼 심어놓은 포플러나무들이 두줄로 이어져있었지만 바람에 따라 이동하는 모래들을 막기에는 턱부족이였다. 마침 지나가는 트럭이 있어 나는 바인타라수무(白音他拉苏木)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바인타라는 나이만기의 중동부, 호르친사막의 오지에 위치해있는 향(乡)에 맞먹는 행정단위였다. 호르친사막은 모래산으로 이어진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볼 수 없는 일망무제한 사막이였다. 모래들은 바람에 따라 쉴 새 없이 내물처럼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모래의 흐름을 따라 드넓은 사막을 반나절 걸었다.

그런데 걷다가 나는 모래에 반쯤 파묻혀버린 페기된 마을을 보았다. 초라한 농가의 지붕들은 마치 모래바다 우에 떠있는 풀로 엮은 떼목처럼 보였다. 모래에 묻혀 페기된 마을은 사막이 인간의 주거공간과 자연환경을 야금야금 잠식해가고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나는 사막에 나무를 심어 모래의 잠식을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2. ‘환경민족학’공부를 하다

그 당시 나는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사회학학원에서 민족학전공의 북방민족문화강의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막에서 돌아와 나는 모래에 묻혀 페기된 마을을 볼 때 받았던 충격 때문에 짬짬이 시간을 내여 과거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환경민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는 항상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가 주어진다. 이 좌표에는 항상 환경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환경민족학’의 시각에서 볼 때 문화란 생태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 양식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지구의 생태환경일 것이다. 지난 세기 50년대 이후 석유나 석탄 에네르기의 사용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지구의 생태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대기오염, 물오염 때문에 생기는 지구의 온난화, 기후의 변화, 사막화, 습지대의 상실 등 상황은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우리는 엘니뇨 현상과 지구온난화 등 생태환경으로부터 엄청난 보복을 당하고 있고 앞으로 더 큰 생태환경보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지구촌을 엄습하고 있다.

사막화는 오늘날 전세계가 관심을 쏟고 있는 가장 중대한 생태환경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사막화는 가뭄이나 건조화 현상 같은 자연적 요인과 환경 오염, 과도한 개발 같은 인위적인 요인으로 땅이 황페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사막화로 생태계 파괴, 난민 발생 등의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황사 또한 사막화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막화는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인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사막화대책협의회(UNCOD)’의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600만㎢의 광대한 토지가 사막화되고 있다고 한다. 사막화 현상은 가뭄과 기상 이변으로 경작하던 농토가 사막으로 변하기 때문에 농사가 가능한 땅이 점점 줄어드는데 문제가 있다. 사막화 진행 속도도 1960년대 이전에는 매년 1,560㎢ 정도였지만 1970~1980년대에는 2,100㎢, 1990년대에 진입하면서 2,460㎢로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매년 2% 정도의 초지가 사막으로 변하는 셈이다. 지구상에는 륙지면적의 10%를 웃도는 약 1,600만㎢의 사막이 있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이 바로 사막록지화이다. 세계 인구증가에 대응할 식량 공급과 사막록지화는 범국가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과제이다. 세계는 사막록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94년 제49차 유엔 총회에서 <사막화 방지 협약>을 채택하였으며 6월 17일을 사막화 방지의 날로 정하여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한다.

중국 황막화방지판공실이 1998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도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무려 전 국토의 1/4에 해당하는 령토가 사막화되였고 그 지역에는 약 4억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사막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650억달러에 이른다고 했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사막화’를 막아주는 아주 중요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환경민족학’을 공부하다가 가장 인상적인 깨달음이 생태환경학자 데이비드 올이 제시한 ‘생태맹(生态盲)’이라는 개념이였다. 올은 “자연과 함께 화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 정서, 교감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를 ‘생태맹’이라고 했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사활이 걸린 생태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가 바로 ‘생태맹’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생태맹’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화합하면서 살아간다면 생태환경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고 최선을 다해 그 목표를 추구하는 일은 나이가 몇이든지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홍수를 방지하는 방법은 물길을 터서 물이 바다로 잘 흘러가게 하면 되지만 이동하는 사막을 방지하는 방법은 나무를 심어 모래의 흐름을 막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나는 사막에 나무를 심기로 결심했다.

3. ‘깨끗한 사막’을 찾아나서다

마침 2009년 초에 한국 명지대 P교수가 나를 찾아왔다. P교수는 ‘황막사(황사를 막는 사람들)’라는 민간자원봉사자단체를 조직하여 1999년부터 중국의 사막에 와서 나무를 심기 시작하신 분으로 2011년에는 나의 추천으로 중국의 최고 환경보호상인 “록색중국 초점인물 국제공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P교수는 중국에 와서 식수하면서 경험한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마침 나도 사막식수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우리는 중한식수단체를 무어 함께 사막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2009년 4월 P교수가 인솔한 28명의 ‘황막사’회원들과 내가 인솔한 22명의 중앙민족대학 자원봉사자들이 호르친사막에서 합류하여 <중한우호의 숲>을 조성하는 사막식수활동을 시작하였다. 반나절에 걸쳐 우리는 300여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묘목 값과 식수인공비용을 계산해서 2만그루의 나무를 심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30만원의 식수기금을 바인타라수무 정부에 위탁하고 돌아왔다. 여름방학이 되여 나는 2만그루의 나무를 점검하러 바인타라에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봄에 심은 나무 외에 한그루의 나무도 심어지지 않았다. 30만원의 식수기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2010에는 식수지점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마침 중국황막화방지기금회(中国治理荒漠化基金会)와 련락이 닿아 우리는 기금회와 함께 그들이 추천하는 녕하회족자치구 평라(平罗)현 모우수(毛乌素)에 가서 나무를 심기로 했다. 나이만은 기차로 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 20여명의 우리 대학 자원봉사자들을 인솔해 갔지만 녕하는 비행기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교통비용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도라지≫잡지사가 선정해서 출판하는 ≪조선족청년작가작품집총서≫에 작품집을 출간한 작가들을 불러 5명의 식수단을 조직했다. 황사바람이 휘몰아치는 2010년 4월 29일, 중국황막화방지기금회와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그리고 한국민간단체 ‘황막사’의 공동주최로 ‘중한황사방지식수단’은 녕하의 평라현 모우수사막에서 <중한우호의 숲>을 조성하는 식수조림행사를 벌였다. 국가림업총국 전임 국장, 중국황막화방지기금회 상무부리사장 그리고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인민화보, 길림신문 등 매체 기자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번 식수 활동은 격이 상당히 높은 편이였다.

2010년과 2011년, 우리는 2년간 중국황막화방지기금회와 련대하여 모우수사막에 나무를 심었고 2만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식수기금을 기금회에 위탁했다. 그런데 2만그루의 나무도 심어지지 않았고 식수기금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내가 호르친사막을 걷다가 사막에 매몰된 농가마을을 보면서 깨닫게 된 삶의 가치와 꿈, 그 꿈을 쫓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위탁한 돈이 사막에 나무로 심어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졌다.

중앙민족대학이나 조선족자원봉사자들 외에도 한국의 자원봉사자단체 ‘황막사’도 2009년부터 자신들의 사막식수 활동을 나의 ‘지도’아래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렵게 모아온 식수기금이 증발해버린다면 도의상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누구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나의 그 꿈은 자아의 삶을 추구하려는 내 인생의 통과의례 기록이다. 내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것, 바로 그것대로 살아보려고 했지만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지? 서글프지만 살면서 꿈을 쫓기란 쉽지 않다. 나는 ‘깨끗한 사막’을 찾아 나섰다.

4. ‘중한우호의 숲’을 조성하다

마침 녕하회족자치구 조직부에서 재직하는 제자를 만나게 되여 그의 소개로 나는 ‘국가사막방지영웅(国家治沙英雄)’ 령무(灵武)시 바이지탄(白芨滩)국가급자연보호구 관리국의 왕유덕(王有德) 국장을 만나게 되였다. 왕국장은 나를 데리고 바이지탄 모우수사막을 구경시켰다. 모우수사막은 중국의 4대사막가운데 하나이다. 짚차가 덜컹거리며 제일 높은 모래산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눈앞에 펼쳐진 사막풍경에 놀랐다. 내가 호르친사막에서 본 것처럼 모래산들이 이어져 일망무제한 사막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 곳의 사막은 밀짚을 모래에 심어 만든 1제곱미터로 된 정방형의 격자(草方格)들이 마치 그 넓은 사막을 그물로 씌워놓은 듯했다. 사막식수는 여러가지 절차를 거치게 된다. 우선 순 사막에 밀짚으로 격자를 심어 모래의 움직임을 막는다. 격자가 모래의 움직임을 막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아무리 거세여도 사막은 정지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순 사막에 나무를 심으면 모래의 이동 때문에 한그루의 나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 격자들은 림장 로동자들이 일일이 인공으로 모래에 심었다고 왕국장은 설명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평생 여기에 와서 나무를 심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왕국장은 사막의 중심지역 가운데서 53헥타르의 사막을 우리의 식수장소로 나에게 맡긴다고 했다. 그 지역의 사막에는 밀짚격자가 이미 심어졌고 풀씨를 뿌려 모래를 고정시켰으며 사막싸리 같은 관목도 일부 심어져있었다. 사막식수를 위한 모든 기초작업이 준비되여있는 셈이였다. 2012년부터 2년간 나는 가치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를 결성하고 한국의 ‘황막사’ 회원들과 함께 이 곳에서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2013년 다시 갔을 때 우리 식수장소 입구에 산더미같이 큰 기념비석이 세워져있었다. 비석에는 ‘중한우호의 숲’이라는 큰 문자아래 중국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와 한국 ‘황막사’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바이지탄사막관리국에서 우리를 위해 세워준 것이였다. 2013년 나무심기는 기념비석제막식과 함께 아주 큰 행사로 진행되였다. 녕하회족자치구 정부에서는 성급 령도가 참석했고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는 정무공사를 파견하여 참석하였다. 환경보호활동을 중한우호활동과 결합시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민 간의 우정은 량국 협력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밑거름이 된다. 그 당시 중한관계의 현실에서 이러한 사막식수를 통한 우호활동은 현지에서 상당히 큰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되였다. 사막화방지와 생태개선은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는 전 인류의 공통 과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중한우호의 숲’ 조성 10주년을 취재하기 위해 바이지탄을 방문한 중국신화통신사 기자는 이렇게 보도했다.

“하늘에서 모우수사막을 내려다보면 길이 60㎞ 이상, 폭이 약 30㎞인 록색 장벽이 사막의 서남쪽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바이지탄 국가자연보호구다. 길게 이어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록색 장벽에는 ‘중한우호의 숲’이 있는데 이 곳에는 록지를 보호하려는 한국인들의 끈기와 사막화 방지를 위한 중한 량국 국민간의 우정이 새겨져있다.”

“최근 몇년간 삼림구역에는 3m가 넘는 소나무가 4,000그루 이상 증가했다. 약 60만원의 자금이 묘목 육성과 나무 관리에 사용됐다. 추위와 가뭄에 강해 사계절 내내 자라는 소나무 덕분에 오늘날 바이지탄의 겨울은 단조로운 노란색 사막이 아닌 초록빛을 띠고 있다.”

‘중한우호의 숲’은 길게 이어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록색 장벽중심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한 중한 량국 국민간의 우정을 다이아몬드같이 새겨넣고 있다. ‘중한우호의 숲’은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의 생동한 구현일 것이다.

5. ‘민족단결의 숲’을 조성하다

뜻밖에도 2013년 식수활동이 끝나고 P교수는 나에게 한국 ‘황막사’가 공익활동을 먄마의 교육지원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중국에서의 사막식수는 마감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는 2014년부터 우리 힘으로 계속 맡겨진 53헥타르의 사막록지화를 실천하기로 했다.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는 성립 당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갖고 심각하게 토론했다. 우리는 중국 조선족의 민족교육, 민족문화 발전과 환경보호 등 여러가지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민정부에 중국조선민족사학회산하 2급학회로 등록했다. 특히 국가의 대사 가운데서 각 민족들의 공동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관심하는 환경보호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사막화를 방지하고 자연환경을 개선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막에 나무를 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2012년부터 2년간 한국 황막사와 함께 모우수사막에서 ‘중한우호의 숲’을 조성하는 식수활동을 하였다. 2013년, 바이지탄국가자연보호구 관리국은 우리 식수장소 입구에 ‘중한우호의 숲’이라는 기념비석을 세워주었고 2014년에는 국가에서 이 기념비석을 중심으로 6만 6,000무의 사막을 국가사막공원으로 지정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중국 유일의 사막방지전시관을 우리의 식수지역 옆에 세워주었다. 그 전시관에는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 식수전시판이 개설되였다.

매년마다 만명이 넘는 전국 각 성, 시에서 온 방문단과 견학단 그리고 유엔에서 파견한 세계각국의 대표단들이 바이지탄국가사막공원에 세워진 기념비석과 사막방지전시관을 참관하고 간다. 그들을 통해 환경보호를 위한 조선족의 노력이 전국과 전세계로 알려지고 있다. 바이지탄국가자연보호구 관리국 위몽 부국장은 “녕하의 인민들은 이런 특수한 방식으로 녕하의 사막방지를 지지하고 후원하고 동참해준 조선족 유지인사들의 노력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다민족국가에서 우리는 나 홀로 발전할 수 없다. 민족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때문에 어느 한 민족의 발전은 주변민족사회와의 조화와 협력, 다시 말해 민족단결을 통한 국가의 발전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계속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려면 선대들이 항일전쟁과 해방전쟁 시기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민족국가의 발전을 위해 계속 관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책임성 있는 민족임을 실제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한편 2023년, 녕하회족자치구당위원회는 바이지탄국가자연보호구를 자치구민족단결진보시범구로 지정했다. 이것은 그 동안 우리가 녕하의 회족, 한족, 몽골족 등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사막방지를 위한 식수활동을 견지해온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9월, 바이지탄국가자연보호구관리국 설립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왕흥동(王兴东) 국장은 우리의 식수구역에 ‘중한우호의 숲’ 기념비석외에 ‘민족단결의 숲’기념비석을 더 세우겠다고 했다.

6. 인생가치를 실현하는 귀중한 경력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상상력을 가장 잘 사용한 결과는 창의력’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조선족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인생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였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막식수를 계속하기로 약속했다.

2012년부터 2023년까지 10여년간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 회원들은 바이지탄 모우수사막에서 사막방지 식수활동을 해왔다. 심지어 코로나가 창궐했던 2020년, 2021년에도 우리는 사막식수활동을 정지하지 않고 계속 견지해왔다. 그 결과 우리의 식수구역에는 4,000여그루의 소나무가 심어졌고 약 60만원의 식수기금이 묘목 육성과 나무 관리를 위해 사용됐다. 사막관리국은 우리를 위해 ‘중한우호의 숲’과 ‘민족단결의 숲’이라는 두개의 기념비석을 세워주었고 국가는 그 비석을 중심으로 4,400헥타르의 사막을 국가사막공원(2014년)으로 지정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유일의 사막방지전시관(2017년)을 우리의 식수지역 옆에 세워주었다. 그 전시관에는 우리의 식수전시판도 개설되여있다. 그리고 녕하회족자치구당위원회는 2022년부터 2년간의 조사와 검증을 거쳐 우리가 10여년간 사막방지식수를 견지해온 바이지탄국가자연보호구를 자치구민족단결진보시범구로 지정했다.

환경보호는 중국 여러 민족이 공동으로 관심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인류가 주목하는 일이기도 하다. 조선민족발전전문위원회는 중국조선족사회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조선족의 발전을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려는 경제, 문화, 교육, 과학기술 등 분야의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사막식수활동을 통해 조선족들이 자체의 발전을 초월해 중국 여러 민족 나아가 전세계 인류의 공동관심사인 사막방지를 통한 환경보호사업에 공헌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조선족은 다민족국가의 발전을 위해 계속 관심하고 공헌할 수 있는 책임성 있는 민족임을 실제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은 중화민족공동체의식 구축, 인류운명공동체의식 구축을 위한 사회실천이며 이 역시 인생가치를 실현하는 가장 귀중한 경력이다.

≪민족문학≫ 2024년 제5호에서


[김창석작가가 만난 사람들] (7) 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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