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수기) 내 마음속의 별 (현애옥)

文摘   2024-10-11 05:59   吉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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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별 

현애옥 

당신 그간 하늘나라에서 잘 있었어요? 
그곳은 아픔도 슬픔도 없는 천당인가요? 

오늘 나의 이 편지가 당신에게 전달 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쌍의 비둘기라도 우리를 가엽게 여겨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고 가면서 우리의 마음을 전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은하수가 가로 놓여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는 견우와 직녀처럼 마음이 애처로와요. 

무정한 세월은 고장도 없이 흘러서 당신이 하늘나라로 떠나간지 어느덧 13년에 가까워 오네요. 

강산이 한번은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지났건만 어찌하여 우리들의 추억은 사라질 줄 모를까요? 

아마도 당신은 지울수 없는 내 마음속의 별이 되여 남은 내 인생을 끝까지 동반할 건가봐요.

당신은 무엇이 그렇게도 급하여 60주세 그 아까운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을 떠나면서 남아있는 친인들의 가슴에 아픈상처를 남겨야만 했나요? 나 홀로 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간 당신이 때때로 너무나 원망스러웠어요. 그간 당신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오늘은 쓸쓸한 이 내 기분을 달래며 잊을수 없었던 우리들의 옛 추억속에 푹~ 잠겨보고 싶어요...... 

당신은 생전에 인간미가 확 풍기는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였어요.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이 아내에게 넘쳐나는 사랑을 주었구요. 언제나 가정에 충실했고 친척 친우들과의 관계도 너무나 돈독했어요. 우리는 그렇게 백년해로하며 긴~긴 세월은 아니였어도 결혼생활 35년간 잠시라도 떨어질세라 늘 함께 했지요. 그 동안 혹시 티격태격도 해보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후회없이 사랑했었어요. 

당신은 늘 내 마음속의 우상이였어요. 당신의 그 우수한 능력과 진실함, 특히 유모아적인 성격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것 같아요. 살다보면 불가피하게 의견분쟁이 있을 때도 있잖아요. 혹시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당신은 번마다 유모아적으로 나를 꼭 웃어 넘기게 하였어요. 우리가 항상 알콩달콩 하는걸 보면서 지인들은 우리에게 잉꼬부부란 별명을 달아주었지요. 나는 지금도 당신과 함께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며 영원히 잊을수가 없어요. 

우리가 젊어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하며 동생들의 뒤바라지까지 해야했잖아요. 당신은 린근에서 둘도 없는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했었지요.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2등 잔페군으로 돌아와 평생을 불편하게 지내신 아버지와 자식 넷을 혼자 키우다 싶이하며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당신은 자랑스러운 효자 아들이였어요. 그러다 보니 금방 시집 온 첫날부터 나는 당신의 본을 받게 되였고 당신의 의지를 따르게 되였어요. 

그런 환경속에서 우리는 자식들을 키워야 했지요. 마음속으로 중히 여겼지만 남들처럼 애지중지 해주지 못한것이 지금 생각하면 애들한테 참 미안하네요. 우리는 정말로 팽이처럼 돌며 너무 어렵게 살아 왔었어요. 결혼초기에 기초 없는 살림에서 엄청난 빚이 압력이 되여 사업단위에 출근하는 내가 짬짬이 장거리 장사까지 여러번 다녀와야 했고 휴일이면 부업도 하면서 아글타글 버텼어요. 

수많은 고생을 이겨냈고 갖은 풍상고초를 거쳤어도 당신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내 마음속에는 풀리지 않은 매듭이란 없었고 내 인생에는 후회라는 것이 없었어요. 드디여 결혼 15년이 지나서야 저축통장도 쥐여 보았고 우리들의 생활은 날따라 피여 갔어요. 우리는 그 보귀한 현실을 보람으로 느꼈고 서로를 아끼면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가기에 노력을 다 하였어요. 

집안이 화목하고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하니 나는 통신계통 사업터에서 여러번 선진공작자와 모범 며느리로 당선 되였구요. 

당신은 정법 기관에서 맡은바 일을 잘하면서 여러차례 성급과 주급의 공을 세웠고 련 몇해는 해마다 로동모범으로 거듭 났었어요. 그리고 남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언제나 발벗고 나서면서 베풀며 사는것을 락으로 간주 했었지요. 

당신은 그렇게 사회에 많은 공헌을 했으며 아울러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었고 모두가 인정하는 보람있는 인생을 살았어요. 

뒤 돌아보니 어느덧 우리의 결혼생활 27년째 되였을 때였어요. 이제 행복한 나날만 남았을 무렵인데 우리에게는 받아 들이기 힘든 시련이 닥쳐 왔어요. 2004년 6월 당신은 간암 진단을 받았고 우리 온 집안은 청천벽력을 맞고 천길 낭떠러지에 빠진듯 암담했어요. 그 때만 해도 암의 생존률은 너무나 희박하였었어요.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수 있다고 우리는 재빨리 모든 상황을 받아 들였어요. 그리고 암진단 사흘째 되던날에 전국에서 암치료에 유명하다는 상해 중산병원에 도착했어요. 당신을 살릴수만 있다면 하나밖에 없는 집이라도 팔고 싶었어요. 친척 친구들의 많은 지원을 받았었고 수만원의 돈도 꿨었어요. 저마다의 이런 간절한 용망속에서 당신과 나는 손을 잡고 그렇게 암과의 싸움을 시작하였어요. 

상해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다행히 암초기였지만 다발성 간암이여서 진행속도가 빠를 가는성이 있다고 했어요. 십수만원이란 거액을 탕진하면서 두달동안 간을 지지고 태우고 ( 射频 ) 부분적으로( 介入 )화학료법하며 할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했었지만 암세포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고 병세는 더 악화만 되여 갔어요. 주치의사가 하는말이 자기네는 최선을 다 했으니 이젠 간을 이식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최후 통첩을 내렸어요. 간이식을 하면 살수 있을까고 마음의 동요도 해보았지만 수소문 끝에 간이식은 명지한 선택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어요. 

그 때는 당신에게 비밀로 한 일이였지만 상해병원 주임의사는 당신에게 이제 생존할수 있는 앞날이 4개월도 못 된다고 하였어요. 하늘도 무심하지~ 

할말을 잃은 나는 불안속에서 하늘만 원망하였지요. 두달동안 련일되는 40도의 고열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희망을 가지고 건강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기를 갈망하였던가요. 그러나 그 때 신은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는 딱지를 등에 달고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야만 했어요.

집에 돌아 온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지프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소문 했었지요.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암 전문가도 찾아 다녔지만 역시 희망이 없다는 꼬리표만 달고 돌아 왔었어요. 여러가지 비싼 약들도 사 먹으면서 혹시나 이번에는 효과를 보지 않을까고 요행을 바랐지만 역시나 번마다 무효였어요.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사기를 치는 같아서 분했지만 그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할 곳이 없었어요. 

마음을 조이는 긴박한 상황에서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 또 두달이 지나 갔어요. 이제 두달도 못 산다는 지방병원의 최후 판단이 나왔을때 우리에게는 항체가 생겼는지 더는 타격을 받지도 않았고 오기가 생겼지요. 더 이상 절망할 여지도 없었고 더는 지체 할수도 없었어요. 간 전체의 70프로까지 암이 발전 했다고 했어요. 병원치료까지 포기당한 상황에서 죽든살든 실 한오리의 희망이라도 품고 이름모를 독약이라도 찾아봐야 했어요. 그야말로 생사판가리의 변두리에서 방황하며 헤매였었지요. 

마음이 급했던 내가 어느날 늦은 밤에 약재 구하러 다니다가 돌에 걸려 발톱이 빠지면서 피가 엄청 많이 났었지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는 당신을 살릴수만 있다면 이런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면서 아픈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당신은 감격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파하던 일이 지금까지 머리속에 생생하게 떠오르군 해요. 

당신은 처음에 조금 반신반의 했지만 그 후부터 결심을 내렸어요. 이름도 모르던 독성이 강한 약재들을 달여서 실험적으로 먹으면서 토하고는 또 먹고 또 토하기를 반복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가요. 그렇게 삶의 끈을 놓지 않은 용망이 있었기에 그 어려운 나날을 견지할수 있었어요.

그리고는 비가오면 우산을 들고 눈이 오면 옷을 더 껴 입으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걷기운동을 열심히도 잘하였어요. 술 담배도 멀리하고 여러가지로 관리를 잘하면서 [ 나는 꼭 살수 있다 ] 는 큰 신념을 가졌었지요. 환자에게 정신치료와 심신건강이 그렇게 중요한 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였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당신의 신체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 났어요. 15키로 내렸던 체중이 오르기 시작했고 얼마후부터는 모든 건강 표준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당신의 운명에는 8년이란 생명을 더 연장할수 있었던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 왔어요. 과연 거짓말과 같은 실화였었지요. 과학적인 진단서를 확인하던 격동의 그 날들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되였네요. 

상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두달동안 내가 불면증이 와서 당신이 잠든 사이 날마다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달랬던 걸 당신 그 때는 몰랐죠? 몇년 후 우연하게 당신이 내가 쓴 그 일기를 읽어보고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짠 하네요. 아마 그 때 흘린 눈물은 여러가지 희비가 교차 되면서 오늘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여겨지는 감동의 눈물이였지요? 원래 모습이 대표적인 상남자였던 당신의 그 눈물을 보면서 나는 당신에게 남은 인생에서 최선을 다 해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병마와 싸워 이긴 후의 7년 넘는 기간 당신은 두번째 생명을 얻었다며 모든것에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며 항상 긍정적인 삶을 살았어요. 날마다 기분좋게 

자가용을 몰고 낚시하러도 다니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건강관리를 참 잘했어요. 언젠가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새 생명을 찾은후 7년의 행복이 가장 소중했다고 하였어요. 

그리고는 항상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나를 호강시켜 준다고 출근 할때는 손도 대보지 못했던 집안 일을 도맡아 하였지요. 그때 그 모든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랐어요. 친인들은 당신을 보고 사랑의 힘이 삶의 원천이 되였다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어깨를 으쓱해하면서 자랑스러워 했었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지켜주며 서로가 마음을 의지하는 버팀목이 되였어요. 

우리가 그렇게 행복했던 나날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기관지 확장과 페기종병이 암보다 더 무서운 줄 미처 몰랐어요. 어쩐지 암치료를 시작하고 회복되여 7년이 지난 후부터 이상하게 당신에게 [ 나는 암이 완쾌 됐다 ] 는 자만 현상이 나타나면서 술 담배에 다시 애착하는 걸 내가 미처 제한 못한것이 원인이였어요. 

2012년 1월 엄동설한의 한차례 독감에서 당신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말로 다 표현 할수 없는 정신적 고통속에서 영원히 헤여져야 하는 순간을 보내야만 했어요. 당신을 너무나 보내기 아까워하는 친인들이 애절하게 지켜주는 침묵 속에서 당신의 심장은 멈춰섰고 당신은 영원히 눈을 감았으며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하늘나라로 끝내 떠나고야 말았어요. 

몇백명이 넘는 추모객들이 당신이 떠나는 길을 배웅 했었어요. 수천리 밖에서 달려온 친구들도 슬픔을 함께 했구요. 참을수 없는 눈물은 샘솟듯 나의 두볼을 적셨어요...... 

당신의 짧은 인생은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당신의 인생은 헛되지 않았어요. 당신의 그 이름 석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으면서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간후 집안의 곳곳에는 당신의 체취가 남아 있었고 당신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어요. 집안의 모든것이 빛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어요. 우리가 항상 즐겨보던 둘만의 사진들, 35년간 보관하면서 몇년에 한번씩 같이 보았던 연애편지들, 당신이 피땀으로 바꿔온 2등공과 3등공의 메달과 많은 영예증서들은 주인을 잃은 것만 같았어요...

슬픔속에서 나는 그나마 내가 당신에게 제일 유용한 사람이었구나하며 자신을 안위했어요. 당신이 가장 힘들때 내가 항상 함께 있어 주었고 언제나 정신적으로 힘이 되여 주었지요. 내가 있었기에 당신에게 저그마한 행복이라도 더 안겨줬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의 평형을 잡을수가 있었어요... 

당신이 떠나기 열흘전에 바로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였어요. 그날 아침에 당신은 일년반 전에 아우디차를 살때 대출 받으러 은행에 갔던날 내가 잃어 버렸던 백금 목걸이를 꼭 다시 사주고 싶다고 했어요. 나는 안 사겠다고 사양했지만 당신은 기어이 자기가 살아 있을 때 자기 이름으로 꼭 사줘야 원이 없을것 같다고 하였어요. 

백화점에서 잃어버린 것과 똑같은 만원짜리 백금 목걸이를 사 왔던 그 시각 당신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졌어요. 그 날은 우리가 35년간 한번도 놓히지 않고 축하해 오던 마지막 결혼 기념일이였어요. 삶을 포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던 당신의 진심어린 그 모습에 가슴이 쓰려서 나는 그날 당신 몰래 눈물을 훔쳤어요......

당신 없는 길지도 짧지도 않는 13년 세월속에서 나는 지금까지 그 어느 이성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나는 혼자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걱정없이 취미생활도 하고 건강관리도 하면서 자립생활을 잘하고 있어요. 두 딸들 집을 오고가며 손자들이 커가는 모습도 보고 자식들의 효도도 받고 있으니 당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 같아요.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리 꼭 또다시 잉꼬부부로 만나요. 그 때는 당신이 내 마음속의 별이 되지 말고 우리서로 먼저 가지도 말고 뒤 떨어지지도 말고 지구 끝까지 함께 가면서 원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약속해요...... 

당신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잘 있어요. 언제라는 약속은 못하지만 내가 당신 곁으로 갈때 우리서로 반갑게 만나요 !

당신을 영원히 존경해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요.

2024년 10월 

당신의 아내로부터

저자 현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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