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해마다 10월 31일이면 라디오든 TV든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잊혀진 계절'이다. 그냥 노래만 나오면 그러려니 할 텐데 노래를 부른 '이용'이 당시 얼마나 대단한 가수였는지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1985년 마치 야반도주라도 하듯이 미국으로 훌쩍 떠난 이용, 도착 며칠 후 교포 여성과 약혼을 했다. 느닷없는 약혼 발표도 놀랍지만 알고 보니 서울에 동거 중인 여성이 있었고 심지어 세 살짜리 딸도 있었다.
연예인 생활에 멀미가 나서 아예 가수 일을 집어 치우려나 했더니 그도 아니었다. 그러다 몇 년 후에 슬며시 돌아오면 대중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줄 알았나 보다. 그로부터 불과 4년 뒤 1989년 MBC <10대 가수가요제>에 깜짝 등장했으니 말이다. 감격에 겨워 목이 메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이듬해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일명 '토토즐'로 복귀를 시도했으나 미리 기사가 나오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하지만 그 다음 해 1991년 12월 27일 SBS <쇼 서울 서울>에 배우 송승환과 함께 등장했다. 두 사람이 휘문고 동기 동창이라는데 그 자리에서 송승환의 대리 사과가 이어졌다, "이용 씨가 큰 실수를 했죠. 하지만 그 실수 때문에 대한민국 연예인 사상, 연예인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렇게 오랫동안 여러분에게 꾸지람을 받고 혼난 사람은 이 사람 밖에 없을 겁니다.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고 좋은 남편이고 이 친구만큼 음악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으니 이제는 여러분 앞에서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용서와 화해의 장이 열릴 수 있기를, 친구로서의 바람입니다." 그리고 당사자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잊혀진 계절'을 불렀다. 대리 사과라니, 기상천외하다.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아무리 좋은 곡이라 할지라도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한다. 하지만 연예인이 대중 앞에 서려면 충분한 자숙 기간이 필요하고 반드시 진심 어린 사과가 따라야 한다. 한 사람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히고도 사과하지 않은 또 한 사람, 1989년 MBC <화요일에 만나요> 진행자 이택림이다. 앞서 이용, 송승환과 이택림이 고교 동기 동창이란다. 지난 10월 22일 KBS <아침마당> '화요 초대석'에 나온 이택림이 동창이라고 밝혀서 알았다.
생방송 <화요일에 만나요>에서 벌어진 만행, 얼마 전 나영석 PD 유튜브 채널에서 베우 김희애가 말하길 1980~90년대는 제작 방식이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였다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왜 생방송이었나 하면 엽서를 뽑아 라디오처럼 시청자에게 전화를 거는 방식이었다. 정수라 차례가 되어 지역을 고르는 돌림판을 돌렸는데 아뿔싸, 몸무게 공개에 걸리고 말았다. 정수라가 펄쩍 뛰며 난색을 표했건만 굳이 재촉을 하며 체중계에 오르라고 몰아댄 이택림. 결국엔 몸무게가 공개됐다. 나중에 이택림이 본인 의지가 아니었다, 앞에서 제작진이 빨리 하라고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변명을 했다는데 당시 그가 PD 말을 꼭 따라야 할 위치였을까? 1988년 '환희'로 정점을 찍은 정수라는 그날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공백 기간이 워낙 길다보니 재벌 총수 아이를 낳았다는 헛소문까지 떠돌았다.
하지만 지금껏 이택림이 사과하는 장면은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했을까? 듣자니 가수 이미자가 자신의 콘서트 사회자로 이택림을 세운 게 11년째란다. 후배인 정수라 앞길을 망친 인물이거늘 가요계 선배가 왜? 의문이었다. 알고 보니 이미자가 TV를 일체 안 본단다. 유일하게 보는 KBS <가요무대>에 나온 이택림을 보고 진행자로 발탁했다나. 후배의 앞길을 막은 자에게 도리어 살 길을 마련해주다니, 정수라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겠나. TV가 해롭다고? TV를 안 보면 이런 일이 생긴다.
사과 없이 대중 앞에선 또 다른 연예인이 있다, 심지어 원로라고 떠받들기까지 한다. 애처가로 칭송을 받기도 하고. 가수 태진아. 남의 가정을 박살을 내놓고, 심지어 범죄이지 않나. 당시엔 간통죄가 시퍼렇게 살아 있었으니까. 그런가하면 가수 편승엽은 KBS <박원숙이 같이 삽시다>에 나와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했다. 보지 않을 권리라는 게 있단다. 대중이 안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굳이 끌어다 보여주는 거, 도대체 무슨 심리인지. 제발 10월의 마지막 날 '잊혀진 계절' 틀지 마요.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KBS, SBS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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