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컵의 물 때문에

文摘   2024-09-17 16:28   中国台湾  

6백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독일군인들의 양심이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은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했습니다.

유태인을 짐승으로 전락시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은 

죽이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태인 수용소에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32천명이 수용된 곳에 

하나의 화장실만을 지어놓았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수용소의 문이 닫힙니다.

하루 두 번까지 화장실 가는 게 

허용되었지만 일과 시간에만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앞에서 

한없이 기다려도 

제 차례가 오기 전에 문이 닫혔습니다.

그들은 배변의 고통에 시달렸고 

그리하여 자신들의 식기와 깡통에 

배설치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수용소는 

온통 배설물로 악취가 나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인간이기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린 그 생명들은 

독일 군들의 눈에 살려둘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으로 이 포로 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 컵의 물 때문에 살았다고 말합니다.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커피 한잔이 배급되었습니다.

커피라는 이름뿐 실제는 악취가

나는 따뜻한 맹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물을 반 컵만 마시고 

나머지 반 컵의 물로 세수를 하고 

옷의 한 귀퉁이에 물을 적시어

이를 닦고 얼굴을 씻고 

온 몸을 씻었습니다.


독일인은 유태인을 

짐승으로 전락시키려 했지만

반 컵의 물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발버둥쳤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짐승으로 살기보다는

인간으로 죽기를 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월간 좋은 생각 중에서 -

그렇습니다.

어떻게 견디고 살았던가 싶을 만치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지금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를 추억하다 보면

더욱 생생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시간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이고

고통스러운 삶의 질곡에 

서있다 할지라도

결코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가진 것의 조금을 잃었을 뿐인데

자신의 전부를 

잃었다고 절망하는 것은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이 

보이지 아니함이요

남이가진 것과 비교해 

조금 덜 가짐에서 오는 욕심이지요.


비워야할 것을 비우지 못한 

허욕 때문이다.


포기와 버림에 

익숙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기로에 서있는 

사람들의 자기실현은 

참으로 소박합니다.  

비록 평생 일어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살아 숨 쉬고 있음 그 하나가

간절한 자기실현의 목표가 되고

살아 있음 그 하나만으로도 

더없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남의 가슴에 

들어 박혀 있는 큰 아픔 보다

내 손끝에 작은 가시의 찔림이 

더 아픈 것이기에

다른 이의 아픔의 크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더 이상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스스로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는

일은 말아야 합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았고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한 시간 이였을 지라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 날의 새로운 소망이 있기에

더 이상은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려하지 마십시요

 

아픔없이 살아온 삶이 없듯이

시간 속에 무디어지지 않는 

아픔도 없습니다.


세상을 다 잃은듯한

아픔과 

슬픔 마져도

진정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병실에서 아스라히 꺼져가는 

핏줄의 생명선이 안타까워

차라리 이순간을 내 삶에서 도려내고 

싶었던 기억 마져도..  


그런 모습이라도 

잠시 내곁에 머물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부족함 투성이로 아웅다웅 살았어도

자츰 멀어져가는 현실의 정들이 아쉬워

사탕한알 서로 먹으려던 

시절이 그리운 것은

사람 사는 정이 있었기에 

돌아 올수 없기에

더애틋함으로 아려옵니다


지금의 힘겨움 또 어디쯤에선가 

그리워하게 될지..

살아온 시간들속에 참 많이도 격은 

경험으로 분명하답니다.  


주저앉고 싶었고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고통

한두 번쯤 우리 곁을 스쳐갔습니다.


사는 일이 이런 것이라며 

주어진 고통의 터널을 헤쳐 나가려 

안간힘 쓰던 때에는

지금보다는 패기가 있어 좋았고

당당함이 있어 좋았답니다

 

그 어려움의 시간들을 

좋았다라고 표현할수 있는건

지금에 없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행복안에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행복을 위한 삶에 작은 미소가 가득한 

하룻길 되시길 소망하며....산마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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