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안 계시는 고향도 고향인가
최유학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모님일 것이다. 그럴진대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 그 고향은 온전한 고향이라 할 수 없다. 승인하기 싫겠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부모님이 돌아가는 아픔을 겪게 된다. 지금 30년대 생, 40년대 생의 노인들이 하나 둘씩 우리를 떠나고 있다. 부모님이 떠나신 다음 가슴을 두드리며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나무가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를 외워봤자이다. 그대가 살아온 고향은 온통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기억과 흔적 들 뿐이겠는 걸.
치열한 경쟁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현대사회는 젊은이들의 일에 관심을 많이 쏟고 있는데 사회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아까운 청춘들이 바위에 부딪히는 계란처럼 여기저기서 깨어져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하는 데는 누구나 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건강에 이상이 생겨 가족의 기둥이라고 할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맥없이 쓰러지는 그 참담함은 차마 눈뜨고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30년대 생, 40년대 생들 즉 고령의 노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일에는 다소 무감각한 듯하다. 그들의 삶에 대한 배려도 그렇다. 대부분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큰일이 났다는 식으로 고령사회를 논하며 부모로 인해 사회와 자녀들이 떠안게 되는 부담만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현대사회에서 노인들이 겪는 불편과 어려움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은 더욱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고령 노인들 세대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이다. 그들은 부모님을 모시며 효를 다하였지만 자식들의 효는 별로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세대들에 대해 극진한 효도를 다할 때 주변사람들과 어르신들로부터 매일과 같이 들은 말은 "이렇게 효도를 다하면 후에 반드시 복을 받게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그 복’인즉 자식들도 그들을 본받아 더 극진한 효를 다할 테니 아무 걱정할 필요 없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누린다는 복이다. 자신들의 효도와 효행이 자식들의 효도와 효행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그들이건만, 그러나 웬걸! 그들은 늙어서 그런 ‘복’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고독자로 떠밀려 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가족과 사회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안고 있어도 모자랄 슬픈 나이에, 그들이 매일 대해야 할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경제관계로 혈연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멀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이며 그 중에 어떤 분은 홀로 남겨진 세상이 아닌가? 더구나 코로나까지 덮쳐 직격탄을 받은 세대가 바로 고령 노인들이다.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저 세상으로 가셨으며 살아남으신 노인들은 그 가혹한 코로나를 이겨오느라고 또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다 부모님을 등한시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전반 분위기가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부모님들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이 시대의 변화로 인한 잔혹한 환경이며, 이로 인해 자식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서러움이다. 한평생 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키우고 손자손녀들을 키우며 앞으로도 자식과 손자손녀들과 삼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그렇게 염원했건만 그들의 꿈은 지푸라기보다 가벼운, 하늘의 구름보다 더 허황한 꿈으로 되어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오늘도 그들은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함께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인, 운명적인 슬픔’을 안고 이슬처럼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 일본의 독거자 고독사 관련 기사가 세상을 놀래우고 있다. 세계에서 복지가 그래도 잘되어 있다는 일본에도 해마다 3만 명 이상의 독거자가 고독사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그중 80%이상이 독거노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너나할것없이 책임감을 느끼고 전반 사회적으로 효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노인들의 과거 공로를 충분히 인정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고 그들의 현재의 삶의 가치도 인정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과거에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켰고, 낯선 도시의 추운 귀퉁이에 발을 동동거리며 서서 김치를 팔면서 자식 학비를 보탰다.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의 발전이 있었을리 만무하다. 그들이 삶의 존엄감을 느낄 수 있게 불편함 없이 특히 정신적인 불편함이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보살펴줘야 한다. 더욱이 가족들은 그들이 앞 세대에 기울인 효와 아래 세대를 키워온 공로를 충분히 인정을 해주고 그 감사함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그들의 노후생활을 잘 보장해주고 오늘날 그들의 행복한 삶을 영위해드리는 것이야 말로 자신들의 앞으로의 행복한 삶의 기반임을 충분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안계시면 형제간도 멀어진다고 하는데 부모가 안 계시는 고향은 더 말해 무엇하랴!
최유학 프로필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조선언어문학학부 부교수
저서 <박태원의 문학과 번역>(2010. 신성출판사) 등
국내외 학술지에 20여 편의 논문 발표.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