济州: 石文化公园, 先觉者留下的遗产|韩国旅行

旅行   2024-05-07 17:19   北京  

제주시 조천읍에는 광활한 100만 평 대지 위에 ‘제주돌문화공원’이 들어서 있다. 돌은 이 섬의 본질이기에 사람들은 이곳에 돌을 테마로 한 공원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선각과 고집스러운 노력이 없었다면 제주의 설화와 돌로 꾸며 낸 이 아름다운 공원은 우리 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济州石文化公园坐落于济州市朝天邑,占地面积100多万坪。济州岛以石多而闻名,人们想当然地认为,应该会有一个石头主题公园。然而,如果没有一个人的先知先觉和不懈努力, 济州岛的传说故事和这座石头装饰的美丽公园就不会展现在人们眼前。


제주시 조천읍에 자리하고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도청이 부지와 비용을 지원하고, 백운철 단장이 기획을 맡아 조성됐다. 드넓은 100만 평 대지 위에 제주의 민속과 신화, 역사가 돌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位于济州市朝天邑的济州石文化公园占地100多万坪,由 济州道政府提供用地和费用,由白云哲先生负责企划和修 建。这片广阔的土地将济州的民俗、神话和历史与石头融 为一体。

1960년대 후반 서울예술대학에서 연극연출을 공부하던 청년 백운철은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한 강원도 산골 공병대에서 수백 년 된 나무들의 경이로운 모습과 운명처럼 조우했다. 그는 죽은 나무를 뿌리조차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캐냈고, 하루 걸릴 일을 일주일 넘게 했다. 자연 친화적 성향의 그가 제대 후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다. 당시 정부 주도로 개발을 앞세운 새마을 운동의 기치 아래 한국의 지도는 하루가 다르게 수정되고 있었다.
20世纪60年代后期,就读于首尔艺术大学戏剧导演专业的白云哲到江原道山区工兵部服兵役时,命运般地邂逅了百年老树,并被其奇特魅力所吸引。为了不破坏枯树的树根,他在刨树时小心翼翼,原本可以一天就能干完的活竟干了一个星期。主张自然保护主义的他退役之后所面对的现实却十分残酷。当时由政府主导开展 “新村运动”,韩国各个地方每天都在发生翻天覆地的变化。


제주돌문화공원 제1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이 돌하르방(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2-21호)은 약 3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큰 눈과 앙다문 입, 머리에 쓴 감투, 두 손을 배에 모으고 서 있는 모습 등이 전형적인 돌하르방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본래 제주 사람들은 ‘장승’을 뜻하는‘벅수머리’라 불렀으나 관광 기념품으로 만들어지면서‘돌하르방’이란 명칭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在济州石文化公园第一条旅游线路上可以见到“石爷 爷”(济州特别自治道民俗资料2-21号)像。据推测,该 石像造于300年前。大眼睛、紧闭的嘴、头戴圆顶笠帽、 两手放在腹前,这座具有典型造型特征的石像原本被济州 人称为“法首”, 意为“守护神”,成为旅游商品后, “石爷爷”这一名称广为传播。


与枯树树根的邂逅


“단지 경제적으로 잘 살아 보자는 구호 아래 마을 환경 현대화 운동을 벌이면서 자연을 마구 훼손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가 일었어요. 미력하지만 한 가지라도 지켜 내자고 마음을 먹었죠.”
자고 일어나면 멀쩡한 길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던 그때, 백운철은 이런 결심으로 발이 닳도록 다니면서 모은 수집품들을 담아 제주 시내에 소박한 규모의 ‘탐라목물원’을 열었고, 이후 이를 발전시켜 ‘탐라목석원’을 개원했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돌과 나무를 테마로 정원을 기획했고, 여기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는 창의성을 발휘했다. 전래 설화이면서 민요와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 이야기를 돌과 나무로 연출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대표적 신혼 여행지였던 제주를 찾은 신혼부부들에게 목석원은 필수 코스가 되었다.
“在经济发展的口号下开展的农村现代化运动中,大自然受到极大破坏,我对此感到非常愤怒。虽然力量微薄,但我决心要守护哪怕一样东西。”
那时每天一觉醒来就会发现好好的路突然消失或横空出现新的路,白云哲抱着这样的决心,为收集各种收藏品四处奔波,终于在济州市开了一家小规模的“耽罗木物苑”,后来逐渐发展扩大为“耽罗木石苑”。他早早意识到大自然的重要性,打造了以石头和树木为主题的园林,并创造性地引入讲故事的方式,用石头和树木再现了以传说、民谣和电影等形式广为流传的“甲多伊和甲顺伊”的爱情故事。对于前来蜜月胜地济州岛的新婚夫妇而言,木石苑因此成为必去的景点之一。

이 독특한 개념의 정원은 2001년 프랑스 문화부 건축/문화유산국에서 발행한 『Monumental 2001: Jardins historiques』에 세계 12대 정원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운철에게는 이 성공한 정원마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 계기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작품 전시 차 파리를 방문했다가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에서 제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작 그걸 몰랐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귀국하자마자 운전을 배운 그는 이후 10년 동안 120만㎞를 달리며 사라져 가는 민속품과 돌 수집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다니던 해안도로에서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왈칵 눈물을 쏟아 냈다.
2001年,这个概念独特的园林被法国文化部建筑与遗产司发行的《纪念物年鉴(2001):园林史》评为世界十二大园林之一。然而,有件事却让白云哲果断放弃了这座成功的园林。其契机要追溯到1988年。他还是个摄影家,在去巴黎办摄影作品展时,他发现这座世界艺术之都高度重视济州岛的价值,对自己的愚钝深感惭愧。他回国后立刻学了车,并在此后10年时间里,行驶120万公里,致力于收集即将消失的各种民俗工艺品和石头。有一天,在时常行经的海岸公路上,他发出深深叹息,泪水也突然翻涌而出。
“제주의 자연이 뿜어내는 영적인 분위기와 용암이 바다로 흐르면서 만들어 낸 각양각색의 돌들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섬의 아름다움을 새삼 재발견했어요.”
“从济州岛大自然散发出的灵气,以及岩浆流入大海时形成的各式各样的石头中,我再次发现了生我养我的这座岛屿的美丽。”


각양각색의 돌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제주의 아름다움과 영혼을 재발견한 백운철 단장은 2020년 완공 목표인 설문대할망 전시관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在形形色色的石头中,白云哲先生重新发现了他生长 的地方济州的美丽和灵魂。为了在2020年前完成雪门台 婆婆展览馆的建设,他倾注了所有精力。


用石头讲述神话故事


그날의 깨달음은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던 목석원을 포기하고,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돌문화공원’의 구상으로 이어졌다. 현재 제주돌문화공원이 들어선 장소를 둘러보며 가슴이 더욱 뜨거워진 백운철은 “곧 사라질지도 모를 운명에 처한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결심했고, “여기에 설문대할망을 살려 넣자”고 다짐했다.
那天的顿悟让他果断放弃了视如己命的木石苑,一个关于“展望未来一百年的石文化公园”的想法在他脑海中形成。他环顾济州石文化公园所在地时,内心无限澎湃。他下决心“一定要守护这块即将消亡的地方”,“让雪门台婆婆在这里复活”。
설문대할망은 제주의 창조 설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키가 크고 힘이 센 거인 여신이다. 그녀는 ‘오백 장군’이라 불리는 오백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가뭄이 극심해 모두가 굶주리고 있을 때 이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그만 솥에 빠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는 익숙한 이 설화의 주인공에게서 제주 여성들의 삶을 지배하는 노동의 기원과 함께 인류애로 확장시킬 수 있는 위대한 모성성을 발견했고, 이를 제주돌문화공원의 키워드로 잡았다.
雪门台婆婆是传说中造出济州岛的一位个子高大、力大无比的女神。她生下五百个儿子,他们成了“五百将军”。有一年遭遇大旱,五百个儿子遭受着饥饿,她为儿子们熬粥,不小心掉进锅里而死。从这家喻户晓的传说故事的主人公身上,白云哲发现了相伴济州女性一生的劳动的起源和可升华为人类大爱的伟大母爱,并把它定为济州石文化公园的关键词。
그는 그동안 모은 민속품을 비롯해 돌 하나까지 남김 없이 제주도에 기증했고, 지자체에서는 100만 평의 부지를 마련해 이후 모든 비용을 책임지기로 했다. 1999년 그는 제주도청과 공원 조성을 위한 20년간의 민관 협약을 체결했고, 전시와 연출을 총괄하는 기획단장을 맡았다. 2006년 개원한 제주돌문화공원은 지금도 미완성의 공간이다. 한때 쓰레기장이었던 지하에 박물관이 만들어지고, 공연장을 겸한 오백장군 갤러리와 전통 초가 마을, 자연휴양림 등을 갖추게 되었지만, 설문대할망 전시관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아직 공사 중이다. 그래서 그는 공원 안 다섯 평 남짓 좁은 공간에 여전히 홀로 기거하며, 자신의 상상과 직관에 따른 연출을 계속하고 있다.
他把过去收集到的民俗工艺品和石头毫无保留地捐赠给了济州岛,地方自治团体提供了100万坪用地,并承诺负担今后的全部费用。1999年,他与济州岛政府签订了为期20年的公园建设协议,并担任主管展览和策划的企划团团长。2006年开放的济州石文化公园至今仍未完工。原是垃圾场的地下空间被改造为博物馆,兼作演出场地的五百将军画廊、传统草屋村、自然休养林等已建成,但雪门台婆婆展览馆仍在施工中,计划于2020年竣工。因此,他依旧独自生活在园内5坪的狭窄空间里,继续按照自己的想象和直觉指导工作。
“거미가 줄을 뽑을 때 생각하면서 뽑나요? 줄줄 그냥 나오는 거죠. 저도 그래요.”
수십 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는 그가 얘기를 이어갔다.
“蜘蛛吐丝时会边思考边吐丝吗?是丝就那样自己出来的。我也如此。”
为实现数十年来的梦想,正做着最后努力的他继续说道。

“후대에 보여줄 역사의 흐름을 설문대할망 전시관에 담으려 합니다. 민속, 신화, 역사는 셋이면서 하나고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입니다. 모두 한 줄기이고 제주에서 그 핵심은 바로 돌이죠. 여기서는 돌 위에서 삶이 이뤄지고, 돌 위에서 죽습니다. 따지고 보면 밤하늘의 별도 돌이고, 우주 자체가 돌이죠.”
공원의 이름에 ‘돌문화’를 강조한 것도 “이 모든 것이 돌 위에 피어난 제주 사람들의 문화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다.
“我想把留给后人的历史收入雪门台婆婆展览馆。民俗、神话和历史本是三位一体的概念。它们源自同一脉络,而在济州岛,其核心就是石头。在这里,人生源于石头,又终于石头。仔细想来,夜空中的星星是石头,甚至宇宙本身就是石头。”
公园的名字也特意强调了“石文化”,关于这一点,他解释道:“因为想强调这一切都是源于石头的济州人的文化”。
他接着又说道:

“돌을 기초로 해 평화를 위한 일에 남은 생을 걸고 싶습니다. 일종의 명상과 치유 같은 것이죠. 돌 자체가 영적인 존재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너무 물질로만 치닫고 있는데,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작고한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a)는 이 공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박물관 안에 돌을 채워 넣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인데도, 중산간 지역이라는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 자연 환경과 조화를 잘 이뤄 냈다. 특히 설문대할망 전설은 너무나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이 공원을 방문한 프랑스 사진가 레오나르 드 셀바(Léonard de Selva)는 “제주의 돌에선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 돌의 섬에서 돌문화공원은 제주다운 신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유명한 것처럼”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我想用石头为实现和平付出我的余生。这就像一种冥想和治愈。石头本身就是灵性的存在。现代人都太关注于物质,但认识到另外一个世界的存在也很重要。”
已故墨西哥世界著名建筑师里卡多•列戈瑞达曾这样评价过这个公园。
“用石头装饰博物馆是极大的挑战,但它很好地理解了半山腰的地形特点,与自然环境形成了很好的协调。特别是雪门台婆婆的传说非常吸引人。”
另外,造访这座公园的法国摄影师莱昂纳尔•德塞尔瓦感叹道:“我从济州岛的石头感受到了某种灵韵。我认为,在以石头闻名的济州岛上,石文化公园可以成为济州岛式的神话。就像虽然我们不知道复活节岛的巨大石像来自哪里,但它依然很有名一样。”


제3코스에는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제주의 전통 초가집 50동이 재현되어 있어 옛날 섬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옛집 200채 분량의 오래된 자재가 사용되었다.
第三条旅游线路上有仿建的50座济州传统草屋 (原型已几乎全部消失),它们是用从200间 传统房屋拆下的旧材料建成的,从中可以窥见 从前岛民的生活面貌。


제주돌박물관 지하 1층 돌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자연석. 용암이 굳으면서 만들어진 자연석 중 특이한 형상의 돌들을 따로 모아 전시하고 있다.
陈列于济州石博物馆地下一层石画廊的自然石, 这些奇形怪状的石头是从由岩浆凝固而成的自然石 中收集来的。


一生献予石文化公园


백운철 단장은 부모에게서 ‘안복’(眼福)이라는 고마운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인간의 온갖 표정을 돌에서 발견하고, 버려진 것들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눈을 타고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주가 설문대할망이라는 여신에 의해 탄생되었듯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데도 여자들의 힘이 컸다. 여장부였던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위해 자신의 과수원에 30평짜리 창고를 지어 주었다. 남들 눈에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산과 들로 돌이나 주우러 다니는 그가 대수롭지 않게 보였겠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첫 번째 전시 공간을 열어준 파트너이자 지원자였다. 어머니는 칠남매 중에서도 유독 이 아들과 성격이 잘 맞았다. 아들이 좋은 돌을 갖고 오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힘든 길에 묵묵히 그와 함께 동행해 준 아내의 공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제주는 돌로 만들어진 섬이죠. 돌이 무더기로 쌓여 곶자왈이 형성되었고, 민가들이 있는 지대에는 만리장성보다 더 긴 돌담이 조성되었어요.
白云哲表示,自己是从父母那里得到“慧眼”这一珍贵礼物的。因为他相信“自己能在石头里发现别人眼中看不到的人类的各种表情,生来就独具慧眼,能够废物里识宝”。就像济州岛是因女神雪门台婆婆而诞生的一样,他能拥有今天的成就,女性的力量功不可没。他的母亲是个女强人,为了儿子的梦想,在自己的果园建起了30坪左右的仓库。在别人眼里,他没有像样的工作,成天在山野里捡石头,没什么出息,但母亲却愿意当他的合伙人和支持者,给他提供了第一个展览空间。在七个兄弟姐妹中,母亲唯独和他性格很合得来。当他发现好石头带回家时,她就会拍掌鼓励。同样,在艰苦道路上默默与他同甘共苦的妻子的功劳更是不言而喻。
“济州岛是用石头构建的岛。石头堆成堆,形成了石林,在有人家的地方形成了比万里长城还长的石墙。石头营造了灵性的氛围。尤其是分散在济州岛各个地方的48座石爷爷是最珍贵的宝物。玄武岩形成的这种石像在世界其他任何地方都很难找到。石爷爷是为抵抗倭寇侵略而造的守护神,若在晚上看它们瞪大的眼睛,确实毛骨悚然。所有石像都是由无名石匠打造,但却仿佛都融注了灵魂。”


맷돌, 정주석 등 제주 사람들의 의식주와 관련된 돌 민속품을 볼 수 있는 야외 전시장이다. 백운철 단장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것들이다.
在户外展厅可以看到石磨、石门墩等与济州人衣 食住行相关的民俗石器,这些物品都是白云哲先生 几十年来收集的。

돌로 인해 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제주에 산재한 48기의 돌하르방은 최고의 보물입니다. 현무암으로 된 저런 석상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왜구의 침략에 항거하는 수호신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의 부릅뜬 눈을 밤에 보면 정말 무서워요. 전부 이름 없는 석공들이 만들었을 텐데, 모든 돌하르방에는 하나같이 혼이 깃들어 있어요.”
그는 제주의 동자석에서는 “인간 세계 그 너머를 본다”고 했다.“영적으로는 동자석, 미학적으로는 돌하르방, 이 둘이 제주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꼭 수집해야겠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만나면 경제적으로 어떤 부담이 되더라도 손에 넣고야 말았어요.”
그가 수 차례에 걸쳐 목석원에서 돌문화공원으로 가져온 수집품은 트럭 500대 분량에 달했다. 또한 그는 옛집 200채 분량의 오래된 자재로 초가 50동이 모여 있는 중산간 마을을 재현했다. 이 마을은 민족 분단과 이념 갈등으로 인해 제주도민들이 겪었던 아픈 현대사인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의 촬영 무대가 되기도 했다.
他说,从济州的童子石可以看到“人类之外的世界” 。“从精神上是童子石,从美学上是石爷爷,它俩是济州的象征。所以,如果遇到必须收藏的东西,就算经济上有负担,也会想办法弄到手。”
他分多次从木石苑搬到石文化公园的收藏品数量可达500辆卡车。此外,他用从200栋旧房子拆下的材料重建了一座有50间草屋的山区村落。该村庄成为电影《土豆》的拍摄场地。这部电影描绘了因民族分裂和思想理念差异而引发的“四三事件”,展现了济州岛人曾经历的惨痛的现代史。
“我不是单纯地还原过去的村庄,而是想建一个能够继承和传授祖先智慧的文化体验场所。即使传统文化在别的地方消失了,在这里也要一直保存下去。”
他说,在他看来,“所有石头都在闭目冥想。”不管是否同意他的想法,如果有一天想要见见古老的东西,来这个公园不失为一个办法。也许就会超越时间的界限,与自然浑然成为一体。而且十之八九会在这里看到带着旧帽走在土路上的白发仙人似的他,如同黑白照片中的一道风景。


石屋, 济州的另一张面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의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아키플랜(ArchiPlan)은 곶자왈에 분출한 화산섬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현무암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노출 콘크리트로 건물 외벽을 마감했으며, 곳곳에 실제 현무암을 사용해 일관된 이미지를 만들었다.
负责济州岛道立金昌烈美术馆设计的阿基普兰建筑事务所为了制造出树 丛中喷发的火山岛的幻觉,在外墙上使用了玄武岩般的黑色混凝土,馆内也处 处使用玄武岩,以保持风格上的一致。

제주를 거대한 한 덩어리의 화산석으로 볼 수 있을까? 쌀을 주식으로 해 온 나라에서 쌀농사를 지을 수 없는 국토 남단의 척박한 땅. 이 섬에서는 어디에서나 땅을 조금만 파 들어가면 금방 돌을 만난다. 예전에 이곳 사람들은 사방에 굴러다니는 이 검은 돌을 모아서 집을 짓고 담을 쌓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를 캐내서 깎고 다듬어 건축 자재로 공급하는 공장이 여러 곳 있는데, 이 화산돌 자재가 최근 건축 붐 속에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济州岛是否可看做一块巨大的火山岩?在以大米为主食的国家,在国土最南端的这片贫瘠土地上却无法种植水稻。岛上无论何处,只要稍稍往下挖,就会看见石头。从前,这里的人们会把这些遍布全岛的黑色石头堆在一起,然后用来建屋筑墙。不过,现在有很多家工厂开采这些石头,加工后作为建筑材料出售。这种火山岩在最近的建筑热潮中深受欢迎。
약 10년 전부터 제주에 일고 있는 건축 열기는 이곳이 관광지뿐 아니라 ‘살고 싶은 곳’으로 뜨겁게 떠오르면서 내륙으로부터 인구 유입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제주의 곳곳에서 짓고 있는 새 집들을 보면 공공 건물, 개인 주택 또는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공들인 설계에 빠지지 않는 요소가 이 섬 특유의 화산돌이다.
大约从10年前开始,在济州岛兴起了建筑热潮,因为这里不仅是旅游胜地,还成为了人们向往的“最理想的居住地”,因此从陆地流入的人口不断增加。最近,济州岛各处建造的新建筑物,从公共建筑、个人住宅到各家旅馆,都各显特色。在这些精致的设计中不可缺少的元素,就是这座岛特有的火山岩。
그러나 인기 높은 이 ‘제주 돌’은 정감 가는 색조와 질감에도 불구하고 집의 골조를 세우는 데 쓰지는 못한다. 용암이 흐르다 굳어진 성긴 구조로 인해 집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식 가옥이나 요즘 현대식 건물이나 이 돌들은 벽체, 담, 마당 등 안팎 장식에 두루 쓰이며, 예나 지금이나 제주 경관을 특징짓는 매력적인 요소가 되어 왔다.
然而,这些高人气的“济州岛石头”虽然拥有亲切的色调和质感,但却无法用于搭建房屋的骨架。这是因为,熔岩流动固结而成的松散结构无法支撑房屋的重量。因此,传统房屋和最近的现代式建筑只把这些石头用于墙体、围墙、庭院等的内外装饰,成为济州岛古今景观中独具魅力的元素。



‘늘작(Neuljak)’은 100년이 넘은 전형적인 제주 가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이다. 원래 초가였던 지붕이 1970년대 초반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긴 했지만, 외벽 돌담은 그대로 남아 있다.
“悠哉”是一家将一座有一百多年历史的传统济州房屋改造而成的家庭旅 馆,屋顶原为草顶,1970年代初改为石板瓦,但外墙还保留了石头围墙。


展现石之美的美术馆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네모난 돌덩이들을 모아놓은 듯한 형상의 김창열미술관(Kim Tschang-yeul Art Museum). 제주도가 한경면 저지예술인마을에 건립하여 2016년에 문을 연 이 미술관의 거무튀튀한 외관은 얼핏 화산석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칠게 마감된 노출 시멘트에 검은색 칠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제주 돌을 써서 짓지 않았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관람객이 느끼는 의문일 것이다.
若从天上俯瞰,金昌烈美术馆如同四方形的石块。坐落在翰京面楮旨艺术人村的这家美术馆于2016年对外开放。其黑黝黝的外观乍看像是一大块火山岩,但若仔细观察,就会发现它只是在粗糙外露的水泥上刷上了一层黑漆而已。那么,为什么它没用济州岛的石头建呢?或许这也是大部分游客内心的疑问。
그 이유는 앞에 말한 대로 화산석 자체로는 이처럼 큰 건물의 뼈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벽체를 쌓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돌의 느낌’을 이 건물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제주 건축의 핵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속 깊은 해답을 이 미술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다듬지 않은 화산돌을 마치 성벽처럼 높게 쌓아 올린 입구의 장식벽, 미술관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망에 담긴 화산돌로 된 낮은 담, 잘게 부순 화산돌이 깔린 지붕, 심지어 가운데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연못 한가운데 놓인 까만 대리석마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순간 화산돌로 착각하게 만들고 싶은 의도에 이르기까지.
原因是,正如前面所说,火山岩本身不能被用作如此大型建筑的承重骨架,而且也不适合用来砌墙。尽管如此,建筑师大概还是想把“济州石头的感觉”融入到这座建筑物里。毕竟这是济州岛建筑的特色。
建筑师的这种思考和煞费苦心的解决方式在这座美术馆内处处可见。把未经雕琢的火山岩堆积成城墙一样的入口装饰墙,仿佛环绕整座美术馆的用装在网里的火山岩堆成的矮墙,铺满碎火山岩的屋顶,甚至占据整个庭院的荷池中央的黑色大理石乍一看也会让人误认为是火山岩。

그리하여 이 미술관은 이 섬의 땅속 깊이 누워 있는 거대한 돌덩어리들의 중후한 느낌과 온 섬의 땅 위에 굴러다니는 검은 돌멩이들의 일상적 풍경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현하여 관람객에게 전해 주고 싶은 ‘제주의 원초적 꿈’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因此,这座美术馆可以说是“济州原始之梦”的象征。它将沉睡在岛屿深处巨大石头的厚重感以及散落全岛地表的黑石子的日常风貌以现代审美方式再现,并努力传达给参观者。



‘VT 하가 이스케이프(VT Haga Escape)’를 에그플랜트팩토리(Eggplant Factory)와 공동 설계한 피그건축사사무소(fig.architects)의 김대일(Kim Dae-il 金大逸) 소장은 여행자들이 실내에서도 제주의 마을 풍경을 느낄 수 있도록 곳곳에 현무암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펜션에 사용된 제주 돌은 공간을 구획하는 한편 외벽 마감재인 노출 콘크리트에 조형미를 더해 준다.
与艾格普兰特工厂建筑公司共同设计VT Haga度假村的具象建筑师事务所所 长金大逸说,为了让游客在室内也能欣赏到济州村庄的风景,在房屋的各个角 落都使用了玄武岩。这座别墅使用的济州岛的石头在分隔空间的同时,增加了 混凝土外墙的造型美。


分享石之温暖的屋子


애월읍에 최근에 지어진 고급 펜션 ‘VT 하가 이스케이프’는 화산석 담과 벽을 적절히 내외부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거실에 앉으면 작은 마당을 둘러싼 돌담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푸른 하늘 아래 가지런한 돌담, 그 아늑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내다 보며 고요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이 집의 매력 포인트다.
전체가 시멘트 골조인 이 집에서 만약 마당 둘레의 담마저 시멘트라면? 여행자의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두기는 어렵겠다. 아마도 건축주와 설계자는 ‘오래되고 울퉁불퉁한 돌들로 포근한 정 쌓기’에 마음이 통했고, 이것이 손님에게 온기로 전해지도록 했을 것이다.
涯月邑最近新建的高级家庭旅馆VTHaga度假村很有特色,它将火山岩外墙和内墙布置得恰到好处。坐在客厅,围着小院子的石墙尽收眼底。望着蔚蓝的天空下整齐排列的石墙,欣赏着幽静祥和的景色放松身心,这是这座旅馆的魅力所在。
这座旅馆是水泥架构。如果连院子外的围墙都是水泥的话,那就很难留住旅客的心。大概建筑师和设计者心有灵犀,都希望通过“古老而凹凸不平的石头累积温暖的情感”,让客人们感受到温暖的气息。

VT 하가 이스케이프가 제주 돌담의 현대적 응용이라면, 2011년 구좌읍에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 ‘함피디네 돌집’은 100년 넘게 전통 가옥에 박혀 있던 ‘돌들의 시간’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2014년부터는 주인이 바뀌어 ‘늘작(Neuljak)’이라는 상호로 운영되고 있지만, 옛집 세 채의 뼈대, 벽체, 돌담, 마당을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를 개조한 이 집이 배낭 여행객들의 마음 편한 휴식처 역할을 하는 것은 여전하다. 숙박 손님들이 인사를 나누고 저녁이면 가끔 한자리에 모여 작은 파티도 벌이는 이 소박한 게스트하우스는 어쩌면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드는 명절날 고향 집과 닮아 보인다. ‘고향의 정취’를 품고 있는 마을에 안기고 싶어 이 섬으로 ‘이민’을 왔고, 그래서 옛집을 그대로 살려 두고자 했었다는 이전 주인의 마음이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손님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새 집을 짓든 헌 집을 손보든 제주를 삶의 새 보금자리로 찾아들어 온 사람들은 처음 이 섬에 내렸을 때 눈길을 사로잡았던 여기저기 나지막하게 둘러친 거무스름한 돌담과 바닷가를 온통 뒤덮고 있는 반짝이는 까만 돌무더기들과의 첫 눈맞춤을 잊을 수 없을 터이다. 가슴에 담은 그 아름다움이 여러 정겨운 모습을 띠고 거실에서, 침실에서, 그리고 마당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如果说VT Haga度假村是济州岛石墙的现代化应用,那么2011年在旧左邑开业的“咸导演家的石屋”则是彻底还原了100多年来深藏于传统房屋中的“石头的时间”。自2014年起,商号虽然更名为“Neuljak”,但改造后这所旅馆依然保留了传统房屋(共三间)的原有骨架、墙体、石墙和庭院,继续成为背包客惬意的休息处。客人们互相问候,晚上偶尔一起举办小型聚会,让这间朴素的旅舍像是在外的亲人节日时相聚的老家。这所旅馆的原主人因为想生活在有“家乡气息”的村子里,所以“移民”到这里,而且把旧屋原样保留了下来。
他们希望把自己的这种情感真实地传递给客人。
无论是建新房,还是修旧屋,打算在济州岛安家落户的人,他们一定不会忘记刚上岛时一眼便望见的低矮黝黑的石墙,以及覆盖整个海岸的亮闪闪的黑堆。盛于心间的那份美丽,带着片片深情,在客厅里、在卧室里、在庭院里徐徐苏醒。





许荣善 诗人、文学评论家

安洪范 摄影家

文丽华 



韩国驻华大使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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