济州:守护生死界限的石头|韩国旅行

旅行   2024-05-02 17:24   北京  

제주의 부드러운 산언덕 무덤가에 둘러진 나즈막한 산담과 무덤 앞에 서 있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의 동자석은 화산섬 제주의 고유한 풍토와 신앙이 만들어 낸 상징물들이다. 사람의 솜씨를 뽐내지 않는 겸손하고 소박한 이 조형물들을 통해 우리는 제주 사람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온 역사,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济州平缓山坡上围绕着坟丘四周的矮墙,和守在墓前一脸童真的童子石,都是火山岛济州固有风土和信仰所创造的象征物。通过这些谦逊简朴的造型,我们可以一窥济州人与自然和谐相处的历史和对人生、死亡的思考。


구좌읍 당오름에 산담군이 펼쳐져 있다. 무덤을 사방에서 둘러싼 돌담인 산담은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방목된 말과 소들이 무덤을 훼손하거나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아 준다. 산담의 상당수는 중산간 지대나 오름에서 볼 수 있지만, 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산담도 있다.
在旧左邑名为“堂岳”的山峰上散 布着一片围墓墙。环绕坟墓而建的 石墙——围墓墙,在内陆是看不到 的,它能防止牧放的马和牛破坏坟 墓和山火蔓延。相当一部分围墓墙 可见于山腰地带或山峰上,但有些 也坐落在田地中央。

한반도에 속해 있는 약 3,300 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제주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라고 볼 수 있다. 섬 전체가 해발 1,950m의 한라산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길게 누운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 170만 년 전 이 한라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화산섬 제주의 지표와 지하는 용암 분출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바로 제주의 독특한 경관을 상징하는 현무암이다. 어디를 둘러 보나 검은색에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이 널려 있는 제주도를 돌과 바람과 여자의 섬이라는 의미에서 ‘삼다도’라 부르기도 한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활용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제주 사람들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자연 조건인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자연 조건인 돌을 사용했다. 방풍과 방파를 목적으로 해식애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파식대에서 구르는 돌을 모아 해안이나 밭두렁을 따라 돌담을 쌓았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산담을 쌓았으며, 동자석을 깎아 세워 사자(死者)의 곁을 지키게 했다.
在朝鲜半岛约3300个岛屿中,最大的济州岛可以被看做一座巨大的山。这是因为整个岛屿就是海拔1950米的汉拿山的横卧姿态,显现出和缓的曲线。大约170万年前汉拿山火山喷发而形成的济州岛,地表和地下布满了熔岩喷出的痕迹。这就是象征着济州岛独特景观的玄武岩。不论走到哪里,岛上到处都是布满窟窿的黑色石头。因为石头多、风多和女人多,济州岛也被人们称为“三多岛”。
人都是适应并利用所处的环境而生存下来的。济州人同样如此,为了阻挡海风这一无法回避的自然条件,他们使用了石头这另一个自然条件。为了防风和防波,人们将散布在海蚀崖或海蚀平台上的石头收集起来,沿着海岸或田垄垒起石墙。为保护坟墓而堆起围墙,凿出童子石守护在死者身边。

제주를 상징하는 돌담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쌓아 내려온 노동의 축적이다. 아버지가 큰 돌을 적당한 크기로 마름질하면 아들이 그 돌무더기를 날라다 담을 쌓았고, 어머니는 밭을 일굴 때마다 수시로 호미에 걸리는 잔돌로 돌담의 구멍을 메웠다. 이 단순하고 고된 일이 얼마나 오래된 노동의 반복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그러나 하늘에서 이 섬을 내려다 보면 크고 작은 검은 돌담이 자유분방한 선을 그리며 섬 전체를 휘감아 안고 있는 것이 마치 거대한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대지를 캔버스 삼은 작자 미상의 이 신비로운 ‘예술 작품’들이 특별한 것은 사람의 손길보다는 천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象征着济州的石墙,是几代人劳动的积累。父亲把巨大的石头截成合适的大小,儿子把这堆石头运去垒墙,母亲在翻垦田地的时候,随时把锄头碰到的石块拿去填补石墙的窟窿。我们无从知道,这一简单而辛苦的工作已经重复了多久。但是,如果从天上俯瞰这座岛屿,可以看到大大小小黑色的石墙绘制出自由奔放的线条,遍布于整个岛屿,仿佛是巨大的美术作品。这些以大地为画布、无名创作者的神秘“艺术作品”的特别之处在于其天然之美,而非人工雕琢。
제주의 돌담들은 하나같이 정해진 규칙이나 양식이 없이 제멋대로 구불거리며 대지를 휘감고 있다. 그리고 그 돌담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선들은 마치 바람에 쓸려 저절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래서 누군가는 “제주의 땅과 돌담은 원래부터 한 몸이었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济州的石墙,没有固定的规则和形态,恣意蜿蜒,环绕于大地。而且,这些石墙所绘出的诸多线条,自然得就像是被风吹得各归其位似的。也许正因如此,才会有人说,“济州的土地和石墙本来就是浑然一体。”


무덤을 지키는 동자석은 남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석상이다. 제주의 동자석은 성긴 현무암이 주는 질감과 단순하면서도 영적인 분위기를 살린 표현 방법이 눈길을 끈다.
守护坟墓的童子石是童男童女石 像。济州的童子石因为玄武岩所具有 的松疏质感和既单纯又体现神灵氛围 的表现手法而引人注目。


산담은 크게 한 줄로 쌓는 외담과 겹으로 쌓는 겹담으로 나뉘는데, 산담의 크기와 형태는 집안의 재력을 가늠하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围墓墙可分为筑成一排的单墙和叠 排筑起的双墙,其规模和形态是衡量 家庭财力的指标。


为死者而立的石墙


온 섬에 뒹구는 제주의 돌은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농부의 일손을 더디게 할 때는 잠시 재앙이 되지만, 돌이 이처럼 흔치 않았다면 사람과 짐승의 집은 물론 죽은 자의 영혼이 쉴 무덤 또한 제대로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돌로 울타리를 세운 집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다시 돌담이 둘러쳐진 무덤에 누웠다. 그렇게 돌은 인간의 삶과 죽음 모두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散布在整个济州岛上的石头,究竟是神灵的礼物还是祸害?虽然在耽误农夫干活的时候,它暂时成为祸害,但如果石头不是如此常见,人畜的住所、死者灵魂安息的坟墓恐怕无法修筑。济州人出生并生活在用石墙围起来的房屋,死后又躺在用石墙围起来的坟墓里。石头就是这样深入地参与了济州人的生与死。
제주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돌담 가운데 무덤을 둘러싼 돌담을 ‘산담’이라 부른다. 산담은 여러 용도의 돌담 중 유독 신성시되는 것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이자 영혼의 집임을 표시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산담은 한 줄로 쌓은 외담과 겹줄로 쌓은 겹담으로 나뉘는데, 외담은 다시 모양에 따라 원형 산담과 도토리 모양의 산담, 사각형 산담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무덤 뒷부분을 좁게 조성한 사다리꼴의 겹담도 있다.
在济州随处可见的诸多形态的石墙中,围绕坟墓而建的石墙叫做“围墓墙”。围墓墙是诸多用途的石墙中唯一被敬若神圣的,它既是保护坟墓的围栏,也是标志着灵魂之家的界线。围墓墙分为筑成一排的单墙和叠排筑起的双墙,单墙根据其形状又可以分为环形围墓墙、橡果形围墓墙和四边形围墓墙。此外,还有把坟墓后面部分收缩起来的梯形双墙。
산담에는 영혼이 다니는 신문(神門)인 ‘올레’를 둔다. 산담 좌측 혹은 우측에 약 40~50cm 정도를 터놓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터진 공간 좌우측 담장 위에 긴 돌 1~3개를 올려놓아 마소나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다. 올레의 방향이 좌우로 나뉘는 기준은 무덤 주인의 성별이다. 남자의 무덤은 망자의 시점으로 볼 때 좌측에 만들고, 여자는 우측에 만들며, 합묘인 경우 남자를 중심으로 좌측에 만든다. 간혹 산담 앞쪽에 만든 사례도 있으며, 쌍묘에서는 특별히 좌우 양쪽에 올레를 내는 경우도 있다.
围墓墙设有供灵魂出入的神门——“偶来”,它指的是在围墓墙左侧或右侧开出的40-50厘米左右的缺口。而且,缺口左右两侧的石墙上面,会放一至三块长石来控制牛马和人出入。决定缺口开在左还是右的,是坟墓主人的性别。如果是男性的坟墓,用死者的视角来看位于左侧;如果是女性,则在右侧;如果男女合葬,则以男性为中心开在左侧。偶尔也有开在围墓墙前方的情况,如果是双墓,也有在左右两侧都开的。
산담은 원래 밭머리가 아닌 들판에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화재로 인한 소실, 또는 마소 등 짐승의 침입으로부터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했다. 하지만 들판이었던 땅이 점차 경작지로 변하면서 밭머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물론 친인척에 의한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밭 한쪽에 무덤을 만들고 산담을 조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가 근처에 있더라도 산담의 돌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타당한 이유나 허락 없이 산담을 함부로 넘어서도 안 되었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길을 잃었을 때에 한해서는 산담 안에 들어가 잠을 자면 무덤 속 영혼이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围墓墙原本都建在旷野而不是地头,之所以如此,是出于保护坟墓不在火灾中受损或免受牛马等畜类入侵的需要。但是,随着曾经是旷野的土地逐渐变为耕地,墓地的位置也变成了地头。当然,这种变化也可以看做是为了方便亲友维护,而在田地的一头修墓并筑起围墓墙。但是,即便位于人家附近,围墓墙上的石头也是任何人都不能触碰的禁忌对象。如果没有合适的理由,或者未经允许,也不能随意翻越围墓墙。但也有例外,仅限于长途跋涉迷了路的行人。人们相信,如果这样的旅人进入围墓墙睡觉,墓中的灵魂会保佑他。
산담에는 일반 돌담과는 달리 돌을 다루는 제주 사람들의 기술을 가늠할 수 있는 품격이 다른 조형적 미학이 배어 있다. 그 조형성을 간단히 정의하면 ‘한국적인 선의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한국의 기와집은 처마의 선이 좌우로 갈수록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들려 있어 마치 가볍게 날아오를 것 같은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산담의 선도 이와 유사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높이가 낮은 뒤쪽에서부터 천천히 위를 향해 들리듯 구부러져 흘러서 앞쪽 좌측 끝에 오면 담장의 각은 하늘을 향해 살아나 유연한 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이 선이 중앙으로 이동할수록 서서히 잠기듯 낮아지다가 반대편 우측 끝으로 갈수록 다시 살아나 좌측 끝과 대칭을 이룬 뒤 멈춰 선다. 더 나아갈 수 없이 살짝 멈춰 버린 산담의 선은 바라볼수록 평온하다.
围墓墙与普通石墙不同,其中包含有风格不一的造型美学,可以反映济州人处理石头的技术。如果给其造型简单定义,可以说是“韩国式线条的美学”。比如说,韩国的瓦房,屋檐的下边沿越向左右两边伸展,就越是平缓地挑向天空,给人以振翅欲飞的节奏感。围墓墙也显现出类似的美感。从高度略低的后边开始,缓缓地向上翘起,而到了前面左侧尽头,石墙的角朝天上扬起,显出柔和的曲线。这条线越往中间,就越是缓缓地走低,而向反方向右侧尽头时,则转而逐渐高扬,直到与左侧尽头形成对称才停止。在两端轻轻止住的围墓墙的线条,越看越觉得平稳。


灵魂的侍者——童子石


산담 안에 세우는 동자석은 이름 그대로 어린 남자, 또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자석은 여러 기능으로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예를 갖춘다. 그중에는 숭배적 기능, 봉양적 기능, 수호적 기능, 장식적 기능, 주술적 기능, 유희적 기능이 있다. 제주의 동자석은 내륙으로부터 온 여러 성씨의 입도 시조나 부임하는 목사, 제주 출신의 양반 토호, 유배객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하지만 불교적 색채가 채 가시지 않은 채 약간의 지역적 특징만 더해진 내륙의 대다수 동자석들과는 사뭇 다르다. 유교 문화의 중심권인 한양 지역에서 잉태된 묘비석인 동자석이 멀리 남쪽 끝 변방인 제주까지 흘러오는 동안 각 지역의 독특한 풍습과 여러 신앙이 결합되고, 여기에 제주의 풍토와 사상이 더해지면서 매우 독특한 동자석으로 재탄생했다. 다시 말해 제주의 동자석은 불교, 무교, 도교 및 토속 민간신앙의 다양한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반영된 점이 특징이다.
제주의 동자석은 매우 친근한 정감을 준다. 특히 18세기 조선 영·정조대에 만들어진 동자석들은 눈이 크고 선이 부드러우며 보다 정교한 특징을 지녔다. 이는 육지 왕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국상(國喪) 때마다 능역(陵役)을 자원하여 육지에 다녀왔다. 인조 재위 때인 1629년에 내려진 출륙금지령으로 인해 육지 출입이 쉽지 않았던 탓에 능역 자원 봉사는 제주 사람들이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때 그들이 왕릉 조성 과정에서 보고 기억한 석상을 재현한 것이 지금의 제주 동자상이다. 문인석을 모방해 만든 것인데, 기술이 부족한 아마추어 장인들의 손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석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 결과 제주 동자석은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현무암을 사용해서 매우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는 고유의 단순미에서 우러나는 건강한 원시성으로 인해 제주의 매력적인 얼굴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竖立在围墓墙内的童子石,正如其名,是童男或童女的形象。童子石是向死者的灵魂给予礼遇,具有多种功能。例如崇拜功能、供养功能、守护功能、装饰功能、咒术功能和游戏功能。济州的童子石,是由来自内陆的诸多姓氏的入岛始祖和赴任的牧使、济州出身的两班土豪、被流放者们普及开的。但是,它与佛教色彩并未完全消除、只是添加了若干地域特征的大多数内陆童子石截然不同。童子石本是孕育于儒教文化中心圈汉阳地区的墓碑石,在流传至南方边陲济州的过程中,结合了各地的独特风俗和诸多信仰,再加上济州的风土和思想,重生为独特的济州童子石。换言之,济州童子石的特征综合反映了佛教、巫教、道教以及原生民间信仰等多种因素。
济州的童子石给人以十分亲切的感觉。尤其是18世纪朝鲜英祖、正祖时期的童子石,眼大而线条柔和,具有比较精巧的特征。这可以看做是与陆地往来的影响。每当国丧的时候,济州人就要自请参与陵役,前往陆地。受仁祖在位时1629年下达的出陆禁止令影响,济州人出入陆地不容易,参与陵役成为出岛上陆的好机会。他们根据营造王陵过程中所看到的石像造出了今天看到的童子像。它们本是文臣石的模仿之作,但在技术不过关的业余匠人手里,变成了完全不同形态的石像。由于使用陆地上罕见的玄武岩,济州童子像的形态十分独特。如今,因其独特的简单朴实而具有健康的原始美,成为济州的迷人脸面,广受人们喜爱。


用作日常生活工具的济州岩石


화산섬 제주도는 현무암이 발달해 있어서 예로부터 주로 돌로 된 생활 도구들을 사용했다. 돌이 흔하기도 하거니와 비가 많이 오고 습도가 높아 나무 도구가 빨리 썩기 때문이다. 돌로 만든 제주의 전통 생활 도구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물팡, 물방애, 돗통시이다. 그밖에 맷돌, 화로, 정주석, 도고리도 있다. 요즘은 대부분 사용하지 않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추억이 어려 있는 물건들이다.
火山岛——济州岛遍地玄武岩,自古以来人们主要使用石头制作生活工具。这是因为岛上不仅石头多,而且多雨湿度高,木制工具容易腐烂。在以石头制作的济州传统生活工具中,最有代表性的当属水罐架、石臼、猪圈。此外,还有石磨、火盆、定柱石、石盆等。虽然这些工具现在大部分已不再使用,但对济州人而言它们都是有着特殊记忆的物件。



물팡은 물을 긷는 허벅을 올려 놓는 받침대로 주로 부엌 문 밖에 설치했다.
水罐台是用来放置打水罐的石台,一般设在厨 房门外。


水罐台


물을 긷는 허벅을 올려놓는 물팡은 현무암 돌로 만든 사각형의 받침대이다. 기능성과 동선을 고려해 주로 부엌 문 밖에 설치하는데, 제주 여성들은 수시로 허벅을 등에 지고 마을의 공동 샘에서 물을 길어다 이곳에 내려놓았다. 샘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마을마다 집마다 물을 길어 오는 거리가 제각기 달랐다.
用来放置水罐的水罐台,是用玄武岩制作的四角形底座。考虑到功能和走动路线,它主要设在厨房门外。济州妇女随时背起水罐,去村里共用的泉边打来水放在那里。泉水往往离家很远,每个村子每户人家打水的距离各不相同。
해안가 마을은 일반적으로 마을 중심지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샘이 솟아났다. 이 물을 ‘산물’이라고 불렀는데,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서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물때를 맞춰서 물을 길어 왔다. 산간 마을에서도 빗물이 고인 봉천수를 허벅으로 날라다 먹거나 비가 올 때 나무에서 흐르는 빗물을 받아 생활 용수로 삼았다. 산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초가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받아 저장해 두었다가 먹었다.
海岸边的村庄,泉水一般在离村里中心约一公里的地方,这种水被称为“活水”。因为它会随着潮涨潮落而出水量不一,所以要在涨潮的时候去打水。而在山村里,人们用水罐打回雨水积攒的池水来吃,下雨的时候则接树上流下的雨水作为生活用水。在活水不足的地方,人们往往接草棚顶上流下的雨水,储存起来使用。
물은 주로 부인들이나 여자아이들이 길어 왔다.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소와 말, 돼지에게도 먹였다. 제주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허벅 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들의 하루는 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다가 물항아리를 채우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허벅은 물을 운반하기 좋게 만든 둥글고 검붉은 옹기 그릇이다. 먼 거리에서 나를 때에도 물을 흘리지 않게 목이 좁고 배가 불룩하게 만들었으며, 나이에 맞게 쓸 수 있도록 크기도 다양했다.
打水的活主要是由妇女或女孩子来干。打来的水用作饮用水,也用来喂牛、马和猪。济州的女性自幼就把背水罐当做日常生活。她们的一天是从背起水罐打水、灌满水缸开始的。水罐是便于运水的圆形黑红色瓮器。它的形状是颈窄腹大,就算从远处运水,水也不会洒出来,其大小也为方便不同年龄使用而有多种。



돌방애는 제사에 올릴 떡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되었으며, 옷감에 감물을 들이는 데도 긴요한 도구였다.
石臼主要用于打制祭祀时上供的糕饼,同时也 是用柿汁染布时必不可少的工具。


石臼


가족의 생일보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중요하게 여겼던 제주 사람들은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내어 떡을 만들기 위해 집집마다 방아가 필요했다. 이 돌로 만든 방아가 제주 말로‘돌방애’이다. 방애는 2명, 또는 3명의 여성이 번갈아 가며 찧었다.
방애는 노동복을 만들 때도 긴요하다. 제주도 민가에서는 여름 장마철이 지나면 풋감을 따서 옷감에 감물을 들였다. 푸른 풋감을 따서 방애에 넣고 빻으면 반달 같은 감씨가 나오고(아이들은 재미로 이 떫은 감에서 나오는 감씨를 먹곤 했다), 풋감이 적당히 뽀개지면 삼베나 광목 천을 방애에 넣고 손으로 골고루 문질러 옷감에 감즙만 묻히고는 돌담에 널어 햇볕을 맞게 한다. 감옷이 마르면 다시 물을 적셔 널기를 반복하여 열흘 이상 지나게 되면 빳빳하고 질긴 천이 되는데 이를 ‘갈천’이라고 하고, 그 천으로 만든 옷을 ‘갈옷’이라고 한다. 이 갈천으로 각종 노동복을 만들어 입었는데 갈옷은 땀이 잘 차지 않고 시원하며 빨래를 할수록 점점 질기고 색이 짙어진다.
比起家人的生日,济州人更加注重对祖先的祭祀。为了给谷物去壳、碾成粉末并制作打糕,家家户户都需要石臼。用石头做成的臼,用济州话讲就是“石臼”。用石臼捣东西时往往由两三名女性轮番舂捣。
石臼在制作劳动服时也必不可少。济州岛人一过了夏天雨季,就会摘下青柿子,给布料上色。摘下绿色的青柿子,放到石臼中捣,就会捣出来半月形的柿籽儿(孩子们以吃涩柿子里捣出来的柿籽儿为乐),当青柿子变红到一定程度,就把麻布或白坯布放入石臼中,用手细揉,让布料浸透柿汁,并放在石墙上晾晒。等到布料干透,再次用水打湿再晾干。如此反复操作,等到十天以后,就成了硬梆梆而结实的布匹,它被称为“褐布”,用这种布料做出来的衣服则被叫做“褐衣”。人们用这种褐布制作各种劳动服,褐衣十分吸汗而凉快,而且越洗越结实,颜色也越来越深。

도정을 위해서는 실제로 돌방애보다 ‘남방애’라고 불리는 나무 방애가 선호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관리도 편하기 때문이다. 돌방애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마당 구석에 세워 두고, 남방애는 비를 피해 외양간 소 뒤편에 세워서 보관했다.
 
为了舂米,较之石臼,实际上人们更喜欢木头臼。因为它相对轻巧,且易于收拾。石臼不用的时候,就放在院子角落里。而木臼则要避雨,平时要竖在牲口棚的后边保管。



돗통시는 제주 특유의 돌담을 두른 돼지 축사인데 화장실과 이어졌으며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거름으로 농사를 지었다.
济州特有的用石头垒砌的猪圈,它与厕所相 连,济州人用从这里形成的肥料种田。


猪圈


제주에서 돼지를 키우기 위해 돌담으로 두른 집을 ‘돗통시’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돼지를 ‘도새기’라고 부르는데, 단백질 공급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가축이었다. 그러나 곡물이 귀해서 주로 인분(人糞)을 먹여 키웠다.
돼지의 축사인 돗통시는 화장실 역할도 했지만 농작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거름을 만드는 장소이기도 했다. 바닥에 늘 보리 짚을 깔아 두어 인분을 먹은 돼지가 그 위에 배설을 하고 밟으면 자연스럽게 거름이 만들어지게 한 것이다. 겨울철이 되면 그 거름을 담장 밖 골목길에 쌓아 두고 두어 달 발효시킨 후 이른 봄 보리씨와 함께 섞어 밭에 뿌렸다.
돼지를 집 안에서 키운 이유는 또 있었다. 제주에서는 아들이나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어린 돼지를 두 마리 사다가 키웠다. 한 해 남짓 키워 다 자라면 결혼식 날에 맞춰 돼지를 잡아 고깃반을 만들어 하객에게 대접했다.
在济州,围起石墙养猪的地方叫做“猪圈”。在济州,猪是提供蛋白质的十分重要的家畜。由于谷物昂贵,主要用人粪喂养。
猪圈尽管发挥厕所的作用,但同时也是制作种庄稼时所需肥料的地方。猪圈地上经常铺着麦秸秆,吃了人粪的猪在上面排泄并踩踏,自然而然就成了肥料。到了冬天,人们把肥料堆放在墙外的巷道里发酵两个月时间,到了早春就把它和大麦种子和在一起,撒到田地里。
在院子里养猪,还有另外一个原因。在济州,当子女到了结婚的年龄,就要买两头小猪养着。养上一年多时间,等到猪长成了,就在举办结婚仪式那天宰杀,做成肉饭招待来贺之宾。

고깃반은 돼지고기 석 점, 순대 한 점, 두부 한 개를 올려 놓은 제주 고유의 음식으로 지금도 제주에서는 “돼지고기 석 점 언제 먹을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 언제 할 거냐?”란 뜻이다.
인분을 먹고 자라는 ‘똥돼지’는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 흑돼지는 제주가 자랑하는 특산물이다.
肉饭是在饭上放上三片猪肉、一片血肠和一块豆腐,是济州的固有饮食。现在在济州也会有人问起,“什么时候吃三片猪肉啊?”其实问的是“什么时候结婚?”
吃人粪长大的“粪猪”很早以前就已消失,但被指定为天然纪念物的济州黑猪是济州引以为荣的特产。





金唯正 济州文化研究所所长

S.R.     译


韩国驻华大使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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