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단하지 아니한가?! - 라전칠기 장인 최창선] 옻칠 향기와 자개 빛 그리고 그것들로 이뤄진 오묘한 세계~

文摘   2024-11-12 06:12   吉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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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 향기와 자개 빛 그리고 그것들로 이뤄진 오묘한 세계




작은 칠기 한점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천년. 그렇게 칠기는 긴긴 세월을 용케 버티며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칠공예는 시간의 예술이다. 옻나무에서 옻칠을 채취하고 정제해 도료로 만드는 데 수개월이 소요된다. 물건에 옻칠을 하는 것은 칠과 건조를 반복하는 인내의 세월이다.

온통 민속공예품으로 가득찬 작업실에서 라전칠기 장인 최창선을 만났다. 그는 수십년이 넘는 세월을 이 한길만 걸어온 장인이다.

실처럼 켜낸 자개 우에 상사칼을 조심스럽게 대고 ‘툭’ 끊어낸다. 굳은살이 두텁게 박힌 투박한 엄지손가락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이리 보면 자색이고 저리 보면 청색인 얇은 자개가 가지런히 누워있다. 다시한번 칼을 들어 자개를 끊어낸다. 적게는 불과 몇밀리메터의 길이로 자개를 일정하게 끊어내는 작업에 상사칼의 각도와 방향 심지어는 숨결 한줌도 자개의 빛갈을 다르게 만드는 변수가 된다.

자개를 켜켜이 쌓고 오리고 끊어내 비로소 만들어지는 라전칠기, 최창선의 오랜 인내와 그보다 더 무거운 세월들이 이 오색 자개 우로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령롱하게 빛나는 라전칠기의 세계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한 색채의 세계였다. 그리고 우리의 라전칠기는 그 빛과 색채 만큼이나 깊은 아름다움과 오랜 력사를 간직하고 있다.
최창선이 작업을 끝낸 그릇을 들어올린다. 기계로 찍어낸 듯 섬세하고 정교한 문양이 오색으로 빛난다. 자개를 켜켜이 쌓고 오리고 끊어내 비로소 만들어지는 라전칠기, 최창선의 오랜 인내와 유유한 세월의 흔적이 오색 자개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개를 켜켜이 쌓고 오리고 끊어내 비로소 만들어지는 라전칠기, 최창선의 오랜 인내와 그보다 더 무거운 세월들이 이 오색 자개 우로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조선족라전칠기제작공예는 현재 주급 무형문화유산 전통공예 종목 명부에 이름이 올라있다. 대표적인 기능보유자는 물론 최창선이다.
“라전칠기는 부의 상징이였습니다. 라전칠기 장롱, 그릇은 인기 혼수용품이였고 안방을 차지한 화려한 자개장 하나로 그 집안의 품격이 정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최창선의 작품들


최창선은 모든 만남을 늘 라전칠기의 력사를 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옻나무의 천연 수액을 가공한 도료로 칠을 한 그릇 ‘칠기’는 약 8000년 전 중국 대륙에서 시작돼 실크로드와 각종 무역의 길을 통해 동아시아 전역에 전파됐다.
고대부터 명, 청까지 수천년 동안 발전했고 중국 대륙과 조선 반도, 일본 렬도에서는 옻나무의 우루시올 성분을 공통적으로 사용해 각각 특색 있는 칠기문화를 발전시켰다.
라전은 무늬 대로 오려낸 자개를 물건 표면에 붙이거나 박아넣어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반짝이는 자개를 리용하여 물건을 장식하는 방법은 세계 각지에서 리용되였다. 그러나 그것을 뛰여난 미술품으로 발전시킨 것은 동아시아에서였다.
“중국과 조선 반도, 일본의 칠기제품은 비슷하지만 또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창선은 칠기공예의 오묘함을 말하고 있었다.
‘라전’이라는 용어는 중국이나 조선 반도,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한자이다. 특히 우리는 ‘자개’라는 고유한 용어가 있어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혹은 ‘자개 박는다’라고 했다. 이 ‘자개’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였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자개장’, ‘자개농’ 등 자개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리의 라전은 대개 옻칠을 한 바탕 우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자개 표면의 칠을 갈아내여 무늬가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의례 칠이란 단어를 붙여 ‘라전칠기’라고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라전기법을 리용한 미술품이 전해지지만 중국의 대표적인 칠기공예는 검고 붉은 옻을 번갈아 칠하고 회화와 조각기법을 결합한 조칠공예기법 그리고 표면에 금니로 그림을 그리는 묘금공예기법, 칠기 면에 무늬를 새기고 다시 금가루로 메워넣는 침금공예기법이였고 일본에서는 칠 우에 금가루나 은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마키에가 대표적이다. 마키에는 헤이안 시대(8세기─12세기)에 발전된 기법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칠기가 독특하다.
최창선은 “조선 반도에서는 다양한 칠기 장식기법중 특히 라전기법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미 11세기에 고려 조정이 외국 왕실에 보내는 선물 품목에 라전칠기가 있었음을 기록한 문헌 《동국문헌비고》가 있고 12세기 전반기에 고려에 다녀간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견문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에 고려 라전칠기의 세밀하고 정교함을 ‘귀하다’라고 칭찬한 기록도 있다. 많지는 않으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려 라전합, 경함, 상자, 불자 등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라전칠기의 진면모를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도 라전칠기는 특산품으로 교역품에서 빠지지 않았으며 왕실과 상류층의 사치품이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엄격하였던 관장제도가 무너지고 18세기 이후 상공업체제의 변화로 신분체제에 혼란이 오면서 라전칠기 수요가 민간층에까지 확산되였던 것이다.
이후 근대에도 라전칠기 제작은 계속되였지만 일제강점기중 타률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일부 전통의 변질과 외곡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전통기법이 바탕이 되였으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라전칠기 공예를 포함한 다양한 제작기술이 지금 연변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지역으로 흘러들게 된다.
최창선은 “당시 우리 지역의 일상생활 도구는 주로 라전칠기를 포함한 목기거나 도자기, 금속기, 종이제품, 석제품 등이였습니다. 현재 민간에는 19세기부터 20세기초에 만들어진 라전칠기 물건들이 남아있습니다.”라고 전한다.
당시에 만들어진 라전 옷장, 라전 작은 식탁, 라전 차잔, 라전 나무상자 등이 현재 우리 문화재로 남아있다. 그때 라전칠기 공예를 비롯한 조선족 전통공예는 주로 가정이나 마을 단위로 보존되고 전승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라전에 쓰이는 조개는 주로 목제품인 칠기에 붙여졌다. 옻칠을 한 나무제품 표면에 아교나 부레풀 등 전통 접착제를 바르고 붙이고 다시 생칠하여 건조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작업을 반복하면 점차 라전이 확실히 고정되고 다시 삐뚤어진 부분을 연마하고 광을 내서 완성하는데 최창선의 라전칠기작품의 특별한 점이라면 진달래 문양과 같은 조선족 특색 문화요소를 집어넣는 데 있다.
조선족라전칠기제작공예 제3대 전승인인 최창선의 할아버지는 원래 조선 함경북도 출신으로 청나라 말엽, 중화민국 초기에 룡정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당시 최창선의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유명한 목수였다고 한다. 집을 짓고 소달구지, 전통 옷장,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 데 솜씨를 보였고 라전장식기술에도 능숙했다. 그리고 최창선의 아버지인 최철수와 최창선에 전수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라전칠기공예기술을 물려받은 최창선은 이후 연변예술학교 차종률 선생의 지도로 더욱 체계적인 기술을 익혀갔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창선이 라전칠기의 길을 걸은 것은 당연한 순차였을지도 모른다. 수강생중에서도 단연 돋보였고 다른 이는 허투로 넘어갈 부분도 집요하게 다듬어 흠이 없었다.
일찍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자개를 갈고 붙이며 하나둘 그의 작품들이 늘어났다. 최창선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자개 문양은 치밀하고 섬세했다. 길림성관광상품대회와 중국국제관광상품박람회에 조선족 민속공예 장인으로서 작품을 올리고 전국 공예대회 등 각종 공예품 대회에서 상을 쓸어담았다.
우리 지역이 왕훙관광지로 되면서 점차 민속풍정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창선의 작품은 중국조선족민속원을 비롯한 돈화중성조선족생태촌, 화룡진달래촌, 도문공신창 등 인기탐방지로 뻗어갔고 연길서역, 연길공항 등에도 그가 만든 민속공예품이 진렬되여있다. 올해에는 그의 ‘연변예술장식공정’ 공방이 연변대학 실천교육기지로 선정되였다.
하지만 최창선으로서는 걱정이 없지 않다.
현재 조선족라전칠기로 대표장인에 오른 이는 최창선이 유일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문화도 생활도 바뀌기 시작했고 주택에서 아빠트로 변화하는 주거환경에는 소반과 장농이 필요하지 않다. 장인들의 땀과 노력을 비집고 공장기계가 만들어낸 특수 자개박이 나오면서 전통 라전칠기 장인들은 사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반면에 제대로 된 자개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반년, 길면 2년이다.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오랜 시간을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다. 라전기술을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진지하게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에 젊은 세대들이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값비싼 재료와 오랜 작업 시간 때문에 상업적인 가치가 낮게 평가되기 때문에 더욱 꺼리기도 한다.
“조개 껍데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은 그야말로 오묘합니다. 껍데기가 품은 투명한 탄산칼슘 결정에서 령감을 얻은 선조들은 뛰여난 손재주를 입혀 보석함, 자개장 같은 생활예술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오래오래 이 기술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최창선은 스스로 고민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라전칠기의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새로운 작품들을 구상하고 만들어내며 라전칠기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그의 적극적인 자세라 하겠다.
요즘은 연변대학에 마련된 실천교육기지를 빌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리고 라전칠기 제작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려고 틱톡과 같은 다양한 온라인 채널도 준비중에 있다.
“라전칠기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살아있는 예술입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영원히 빛나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장인 최창선의 손길이 빚어내는, 옻칠과 조개껍질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이렇게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신연희 기자/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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