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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보금자리
현애옥
유수와도 같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느덧 젊은 세월을 추억 속에 파묻어 놓고 황혼의 문턱을 넘어섰다. 나이가 들수록 복잡한 시내가 싫어지고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진다.
그러던 몇년 전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모아산 정상에 올랐다.
아~폐부를 씻어 내는 듯한 청신한 공기, 장수를 뽑 내는 사철 푸른 소나무들과 키 다툼하며 쭉~쭉 뻗은 홍송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젊어지게 하는 것 같았다.
추억의 독립운동을 연상시키고 사과 배 고향으로 소문난 용정의 새로운 모습과 날마다 발전하고 있는 연길의 황홀한 정경이 한눈에 안겨 온다.
사면팔방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가 가관인데 저도 모르게 야호~ 하고 환성이 터져 나온다.
모아산 아래 굽이를 바라보니 대지의 젖 줄기인 듯 만물의 소생에 단비 되여 유유히 흐르는 해란강, 연변의 옥토로 손색없는 동성용벌의 기름진 논밭들, 해마다 아름다운 봄을 단장시켜 주는 사과 배 꽃들이 만발하는 무아지경의 들판들, 저 멀리 바라보이는 세라벌을 감싸 안은 듯한 락타 등 같은 첩첩산중의 산봉우리들.
아~, 이것이 정녕 나의 동년 시절부터 우리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던 풍수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 아닌가? 여기가 바로 내가 꿈꾸어 오던 곳인것 같았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이고 시원하게 안겨오는 들판과 집앞을 흐르는 강물이다.
간절한 꿈은 언제나 실현되듯 얼마 후 우연하게 바로 해란강 뒤 켠에 아담하게 지어진 빠리궁관을 찾아오게 되였다. 이름 그대로 12 년 전에 내가 여행하며 다녀왔던 프랑스 빠리의 한 모퉁이를 연상케 하는 아담한 농촌 마을에 자리 잡은 아파트였다.
용산촌 변두리에 줄 지어 진 엘리베이터식 5~6층 집 소구역. 그야말로 황혼기에 들어선 그 누구에게나 욕심나는 보금자리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갈망했던 곳인지라 보자마자 이곳에 와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삼십여년간 정들어 살아왔던 연길 시내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왔다. 기분 좋게 운전하며 지켜보니 모아산까지 삼분 거리고 용정과 연길까지는 각각 십분 거리다. 큰 시내에 비하면 너무나 가까운 거리이다.
용산의 뒤 동산은 지구 보호구역이여서 일목일초도 보호되여 있는 훌륭한 산소공장을 방불케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실컷 마실 수 있는 청신한 공기가 하루의 에너지를 더해주고 찜통더위 삼복철에도 저녁마다 해란강변을 거닐면 시원한 강바람에 더위를 식힐 수 있다는게 참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다에서만 사는 줄 알았던 갈매기도 둘씩 짝을 지어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노닐고 있지않는가, 해란강이 궁금해서 날아왔을까? 아마도 여기서부터 150Km 거리에 있는 바다에서부터 거슬러 올라 왔는가 보다. 물오리도 뒤질세라 헤염치며 숨밖꼭질 한다. 우리 집 옥상에는 아침마다 까치들이 찾아와서 좋은소식 전하려는듯 꺅~꺅 울어댄다.
근년에는 인근에 큰 병원들이 줄지어 졌고 여러가지 상업 청사들이 일떠섰으며 개업을 앞두고 있다. 멀지 않아 자연과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존된 아름다운 신도시로 거듭날 것 같다.
내가 선택한 황혼의 보금자리에서 나는 나의 황혼 인생을 산천초목과 동반하고 저 하늘을 날아예는 새들을 바라보며 집 앞을 유유히 흐르는 해란강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모든 것에 감사해 하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다.
2023년 5월/2024년 10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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