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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춤추는 백조
1
해산일이 이제 한달 남았다. 은령이는 해산후 산후조리원으로 갈 생각이였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본인이 직접 산후조리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십년 동안 하던 보모일도 그만두고 귀국하겠다고 하였다. 리유는 외손자들도 다 키워주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친손자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였다. 적어도 애기를 돌까지 키워주고 다시 떠나겠다고 하였다.
은령이는 어떻게든 그런 시어머니를 말리고 싶었다.
은령이는 발레강사이다. 몸매관리가 중요한 직업이라 전문인의 케어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름 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첫째는 순산해서 몸에 칼자국을 남기지 않기. 둘째는 가슴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모유수유를 하지 않기. 셋째는 해산후 운동을 통해 빠른 시간내에 몸매를 회복하기. 이러한 계획을 실천함에 있어서 시어머니는 방해만 될 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그것이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시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은령이는 시어머니가 귀국하지 않도록 전화를 해서 막으라고 남편을 닥달하였다.
“어머니, 은령이 해산 때문이라면 안 오셔도 돼요. 지금은 다들 산후조리원에 가고 은령이도 그걸 원해요.”
“야, 그건 량쪽 부모가 안 계시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어 가는 거지. 시엄마가 있는데 왜 거기 가겠니? 들으려니 돈도 몇만원씩 든다더구만…”
“돈은 걱정 안하셔도 돼요. 장모님이 못 오셔서 조리원비용을 대주신다고 하셨어요.”
“돈도 그렇지만 거기서는 영양식단이다 뭐다 하면서 돼지발쪽과 같은 젖이 잘 나는 음식은 안 먹이고 그저 야채만 먹인다더라. 그러니 애기 엄마들이 젖이 안 나와서 애한테 분유 먹이고 그런다더라. 애는 그래도 혈육이 봐야 진심이지. 남을 어떻게 믿겠니?”
“어머니,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조리원 시스템이 잘돼있어 그런 일 없어요. 그리고 본인이 산후조리원 가고 싶다잖아요.”
“솔직히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런다. 딸네 애들은 셋이나 봐주고 하나밖에 없는 친손자를 안 봐주면 말이 되겠니? 나이 들어서 오래는 돌봐주지 못하지만 산후조리까지 안해주면 내가 이다음 며느리 볼 면목이 없어서 그런다. 마지막에는 그 며느리 손에서 밥 얻어먹어야 할 거 아니니? 날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말리지 말아. 비행기표나 빨리 끊어줘.”
남편을 내세워 시어머니를 설득하려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령이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오더라도 산후조리원으로 갈 것이다. 그러려면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오빠, 몸매가 내 생명인 거 알지? 내가 빨리 몸매를 회복하고 학원에 나가야 우리 집이 사는 거야. 내가 한달 이상 학원에 안 나가면 애들 다 뺏겨. 우리보다 규모가 큰 학원이 날마다 일어서는데 그 때 가서는 어쩔 거야? 집 대출, 차 대출, 학원 임대료까지. 게다가 애가 태여나면 양육비도 엄청 나올 건데 오빠 혼자 수입으로는 안되잖아. 산후조리원 프로그람 좀 봐, 어머님이 해줄 수 있는 거 있나. 한가지라도 있으면 내가 말을 안하겠다.”
은령이는 프린트해놓은 산후회복 프로그람표를 꺼내들고 남편 앞에 내밀었다.
“오빠가 말해봐, 어머님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한참 들여다보던 남편은 찾았다는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있구만. 영양조절과 정서조절은 엄마가 해줄 수 있지 않을가?”
은령이는 신대륙을 발견하듯 기쁨이 흐르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비꼬듯이 말했다.
“모유수유도 안할 건데 돼지발쪽이나 곰탕을 먹는다는 건 나한테 고역일 거고, 그러느라면 나의 정서는 바닥을 칠 건데 정서조절이 될 수 있겠어?”
시무룩해진 남편은 힘없이 대답한다.
“알겠어요, 우리 공주님. 어머니가 오시면 제가 잘 말씀 드려볼게요.”
“오빠는 완전히 내 편이지? 그 때 가서 또 다른 소리 하기 없기다.”
은령이는 한번 더 그루를 박아놓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다른 의견을 세우다가도 은령이가 고집하면 포기가 빠른 남편이다.
은령이는 주견이 세고 강한 편이였다. 그러나 그건 겉보기만 그렇지 사실은 마음이 여린 녀자였다. 반면 남편은 어려서부터 누나 두명의 기에 눌려서인지 성격이 온순했다. 그래서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보일 때가 많고 남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했다. 남편은 은령이의 용기와 결단력과 독립적인 면이 마음에 들었을 거고 은령이는 남편의 온화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사랑은 서로 보완해주며 각자 모서리를 깎아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2
결국 시어머니가 왔다. 무거운 캐리어 두개를 끌고 커다란 가방을 메고 들고 그렇게 온몸을 짐가방으로 무장한 채 활기차게 왔다. 손자를 볼 마음에 기분이 한결 들떠있었다.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이 가득했고 눈에는 기쁨과 기대가 가득차있었다. 아마도 외손자들보다는 친손자가 더 반가운가 보다.
짐을 풀어놓으니 가관이였다. 유아용품에서 산모용품, 산모 몸조리에 필요한 주방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거실 가득 벌려놓은 짐꾸레미들을 만족스러운듯이 둘러보며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너희들도 다 준비했겠지만 이건 할머니의 성의다. 그리고 이 몇가지는 내가 특별히 산후도우미를 하는 분을 찾아서 문의하고 산모한테 꼭 필요하다고 해서 산 거야.”
시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기적거리며 기여가 짐무데기 속에서 보따리 하나를 찾아들고 펼쳐보이였다.
“이건 수유브라라고 하는 건데 가슴을 지지해주고 처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거다. 우리 은령이는 무용수니까 몸매가 중요하잖아. 또 산모의 젖이 새서 옷을 적시는 경우도 방지하고 가슴이 딱딱한 물체에 스치며 생기는 아픔도 예방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이건 유축기인데 엄마가 젖이 너무 많아 아기가 다 먹지 못하는 경우 유축기를 사용하여 젖을 빨아내면 젖가슴이 뭉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단다.”
시어머니는 잊어버릴가 봐 메모해둔 종이장을 꺼내들고 신나서 손짓까지 하면서 설명하였다. 이런 시어머니의 성의에 찬물을 끼얹을가 봐 은령이는 송구스러웠다. 모유수유를 하지 않을 것이니 실용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은령이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시어머니는 계속하여 다음 물건을 소개하였다.
“이건 산육용 패드란 거고 또 이건 허리 패드다. 산육용 패드는 산모의 분비물이 침구를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산후출혈을 관찰할 수도 있고 세균감염도 방지할 수 있어 산모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구나. 허리 패드는 산후허리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어때? 이런 것들은 너희들이 준비 못했지?”
시어머니는 소리 내여 설명서를 읽고는 만족스러운듯 환하게 웃으신다. 손자뿐만 아니라 며느리인 자신의 건강까지도 챙겨주는 시어머니가 너무 고마워 은령이는 마음이 뭉클해났다.
“어머님, 고맙고 미안해요. 그래도 전 어머님 의사를 따를 순 없어요. 죄송해요.”라는 말을 은령이는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산후허리통증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래서 상철이를 낳은 거야. 산후병은 산후에 치료 받아야 한다고 해서… 안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일할 수 없지. 그런데 넌 순산할 거지?”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할 수만 있다면…”
“그래. 생각 잘했다. 그런데 우리 친구 며느리는 점 보고 날자를 받아서 수술을 받는다고 그러더라. 산후통증이 무섭고 순산을 하면 관절들이 다 갈라져서 몸매가 망가진다나. 그 집 며느리는 모델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우리 며느리는 발레무용수인데도 애를 생각해서 순산을 한다고. 그 친구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었다. 네가 못 봐서 그렇지 그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보면서 내가 얼마가 고소했는지 알어? 흐흐흐…”
시어머니는 소리 내여 웃는다. 배려심 많고 마음씨 착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는 시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한다. 그 웃음은 사고를 거치지 않은 행동으로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발로일 것이다. 인간은 리기적인 동물이니까.
그러나 시어머니는 실언하였다. 은령이한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 것이 되였다. 은령이는 아차 싶었다. ‘그래, 주역을 보면 출생일과 사람의 운명이 련관이 있다고 했지. 그걸 왜 생각 못했을가? 그래, 좋은 날자를 받아서 수술 받아야지. 몸매도 망가지지 않는다잖아.’
은령이는 슬그머니 순산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생각을 바꾸었다. 수소문 끝에 유명한 주역선생을 찾아가서 거금을 들여 길일을 받았다. 시어머니한테는 출산전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일단 검사를 받은 다음에 볼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검사결과 의사선생님은 태아가 작아서 아직 절개수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애들은 하루볕이 새롭다는데 작은 아기를 일찍 태여나게 했다가 혹시라도 건강에 문제라도 생기면 안될 일이였다. 거금을 들인 길일은 그렇게 허무하게 놓쳐버렸다. 하지만 제왕절개수술로 해산하려는 은령이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은령이는 출산신호만 오면 뼈마디가 벌어지기 전에 즉시 수술을 받을 속셈으로 집에 가서 기다려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병원에 입원하였다. 시어머니에게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서 관찰을 받아야 한다고 또 거짓말을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시어머니는 지극정성으로 하루 세끼 산모밥을 해서 집과 병원 사이를 오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시어머니가 불쌍해보이기도 하였다. 이후에 시어머니에게 잘해드려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은령이는 미안한 마음을 달래였다.
예정일을 4일 앞두고 새벽부터 산통이 시작되였다. 은령이는 신호가 오자 즉시 간호사를 불러 절개수술을 받을 의향을 밝혔다. 그러나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 서명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제야 남편한테 전화를 하였다. 당장 빛의 속도로 달려오라고 말하였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시간이 지난 뒤였고 하늘땅을 뒤엎을 듯한 통증이 소나기처럼 뼈의 마디마디를 갉아내기 시작할 때였다. 허둥지둥 병실에 들어선 두 사람을 보고 은령이가 소리를 질렀다.
“왜 이제야 와? 빨리 의사를 불러와. 수술할 거야.”
남편은 고통으로 범벅이 된 은령이의 얼굴을 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급히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다. 의사는 잠에서 금방 깬듯 부석한 눈을 비비며 병실로 들어와 검사를 하였다.
“자궁이 다 열리려면 아직 멀었어요. 두시간후에 다시 부르세요.”
은령이는 애원하듯 말했다.
“지금 절개수술을 해주세요. 저 순산을 원하지 않아요.”
“순산이 가능한데 이제 와서 수술을 받겠어요? 할 수는 있지만 산모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가족 분들이 토론하시고 다시 결정해주세요.”
의사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병실을 떠났다.
“아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아. 순산이 되는데 왜 수술하겠어? 다들 그러면서 엄마가 되는 거야.”
시어머니의 말에 은령이는 대꾸도 않고 남편을 향해 명령하였다.
“빨리 가서 싸인하고 나 수술시켜줘.”
남편은 시어머니와 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그 자리에서 맴돌며 어쩔 바를 몰라하였다.
갑자기 온몸에 지진이 일어난듯 찢기는 통증이 몰려와 은령이는 저도 몰래 “아—” 하고 높고 긴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온몸은 용광로에 던져진 남비가 오그라들듯 아무렇게나 마구 구겨지더니 드디여 뜨거운 액체가 아래로 콸— 쏟아져나왔다.
‘아— 죽는구나. 죽는다는 게 이렇게 한순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은령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산모가 눈을 움직였어요. 산모님, 정신 차리세요. 아기 머리가 나오고 있어요. 조금만 힘을 주세요.”
땀으로 얼룩진 얼굴로 초조하게 은령이를 내려다보는 애된 얼굴의 간호사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애를 낳는 중이였구나.’ 그런데 힘을 주려고 해도 힘이 없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안되겠어요. 자궁파렬이 너무 심해요. 이러다간 산모까지도 위험할 수 있어요. 빨리 수술을 합시다.”
의사의 단호한 말과 함께 다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온다. 은령이는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3
긴 꿈에서 깨여난듯 은령이는 갑자기 눈이 떠졌다. 점차 흐려진 시야가 뚜렷해지며 자신이 익숙한 얼굴들에 둘러싸여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얼마나 걱정하였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은령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칼로 에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숨 쉴 때마다 수백만마리의 개미가 상처를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계획은 결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길일도 지나치고 몸이 찢기는 듯한 순산의 고통도 겪었다. 은령이는 복부에 긴 칼자국이 생겼고 하부에 봉합수술자국이 생겼으며 마음에도 깊은 상처가 남았다. 죽음의 신에게서 도망쳐 그녀가 얻은 것은 앙앙 울어대는 피덩이뿐이다. 고대 신화에 나오는 릉지처참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났다. 새 생명을 얻은 기쁨보다는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슬픔이 더 컸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세상만사가 귀찮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김은령님, 아기 대면시간입니다.” 간호사의 다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은령이는 고통스러워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보에 싼 작은 생명을 그녀 옆에 뉘인다. 코를 쿡 찌르고 들어오는 아기냄새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수술실에서 들었던 “공주입니다.”라는 말만 어슴푸레 기억나고 지나친 고통 때문에 아기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새하얀 보에 싸인 어린 생명은 크고 동그란 눈을 슴벅거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하는 듯하였다.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건 엄마를 닮은 것 같았다. 검고 숱 많은 머리는 아빠를 닮은 것 같았다. 꽃잎처럼 작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아기는 이 없는 이몸을 드러내며 웃는다. 은령이는 무장해제 당한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얼굴에 웃음이 피여오른다. 코를 아기 가까이에 대고 냄새를 킁킁 들이켰다. 아기의 냄새는 은령이에게 너무나 익숙한 본인의 냄새였다. 자신의 분신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하였다. 은령이는 자기를 똑같게 닮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새로운 생명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기적을 느꼈고 생명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따뜻함을 다시 인식하게 되였다.
퇴원후 은령이는 곧바로 산후조리원으로 입소하였다. 기어이 순산을 권하여 며느리가 고통을 겪는 것을 목격한 시어머니는 그것이 자기 잘못이라며 미안해하였다. 그 미안함 때문에 산후조리원으로 가려는 은령이를 막지 못하였다.
“그래, 몸도 많이 상했는데 전문인의 간호를 받는 게 좋겠다. 대신 영양식은 내가 책임질게. 한달만 지나면 애 물기가 빠질 거고 그 때면 돌보기도 훨씬 쉬워질 거야.”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 완전히 바뀐 이 주장에 진심이 얼마나 차지할가?
변덕스러움도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은 부동한 사물과 환경에 의하여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생존본능일 것이다. 카멜레온처럼.
아파서 죽는다는데 녀자라면 다 겪는 일이라는 몰인정한 발언을 한 시어머니한테 은령이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친정엄마라면 아마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서운함이 남아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의 생활도 만만치가 않았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상처자리가 아파났고 하혈이 계속되여 생리대를 자주 바꾸어도 옷이나 누운 자리에 자국을 남기였다. 그 때에야 시어머니가 마련한 산육용 패드와 허리 패드가 생각나서 꺼내 사용하였다. 간호사도 어디서 산 거냐며 희한해하였고 입소문이 나서 다른 산모들도 뒤늦게나마 장만하느라고 은령이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좋은 시어머니를 만났다며 부러워하면서 대신 자기들의 시어머니 흉을 한참씩 보고 갔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서 좀 살 만하다 했더니 젖이 불어오면서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였다. 젖이 돌아선 것이였다. 생각보다 량이 많아 애가 빨지 않아도 저절로 뚝뚝 떨어져 부지런히 닦아내도 웃옷을 적시였다. 모유수유를 안하고 싶었다. 젖이라도 안 나오면 구실도 좋으련만 반갑지 않게 이렇게 잘 나올 줄이야.
남들의 눈 때문에 애한테 젖을 물리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 은령이는 젖을 물리려고 아이를 가슴에 안았다. 그런데 은령이의 유두는 안으로 옴폭 패여들어간 함몰유두였다. 애기는 입을 오물거리며 젖꼭지를 찾아 가슴 주위를 더듬었다. 한참을 헤매던 애기는 배도 고프고 화도 났는지 젖꼭지를 찾는 걸 포기한 채 앙앙 울어댔다. 게다가 며칠간 크고 물렁물렁한 젖병을 빨아온 터라 갑자기 작고 빨기도 힘든 엄마의 젖꼭지를 빨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은령이는 함몰유두를 주신 친정어머니한테 새삼스레 감사를 드리면서 얼씨구나 하며 모유수유를 자연스럽게 포기하였다.
애를 먹이지 않는데도 젖은 쉼없이 흘러내렸다. 이번에도 시어머니가 사준 수유브라가 큰 작용을 하였다. 시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젖가슴이 뭉치면서 돌처럼 딴딴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젖가슴이 확장되면서 고통에 신음소리까지 터져나왔다. 살짝 스쳐도 숨 넘어가게 아픈데 손으로 주물러서 딴딴한 것을 풀고 젖을 짜내야 했다. 은령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를 악물고 시어머니가 마련해준 유축기로 젖을 빨아내였다. 많이 빨아내면 젖이 다시 돌 수 있으므로 적당량만 뽑아내야 했다. 뽑아낸 모유를 애한테 먹일가 고민하다가 애가 모유맛을 들이면 분유를 먹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젖을 뗄 수 없을 것 같아서 은령이는 다 버렸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시어머니는 날마다 족발이며 사골탕이며 물고기탕이며 산모에게 좋다는 음식을 번갈아가며 만들어서 먼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산후조리원으로 들고 왔다. 먹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못 먹는다고 사정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시어머니의 정성으로 주변 산모들한테서 사랑해주는 시어머니를 만나서 좋겠다는 칭찬을 받았을 뿐이다. 한달 동안 다른 집 시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령이는 시어머니가 더욱 고마웠다.
첫인사를 드리러 시집에 갔을 때 아버님이 돈봉투를 주었는데도 조용히 따로 돈봉투를 챙겨주면서 이쁜 옷 사입으라며 환하게 웃어주던 일, 결혼식에서 세트로 입자며 시골에 계시는 은령이의 부모님 복장까지도 같이 맞춰주던 일, 발레를 추는 며느리 발이 걱정되여 외국제 발안마기를 사다 주던 일, 며느리 생일 때마다 류행하는 금장신구를 보내주던 일, 시댁 친척들 대소사 축의금은 걱정 말라며 알아서 다 해주던 일… 그렇게 시집 가문에서 은령이의 위망을 높여주어 별로 한 것도 없이 칭찬 받는 며느리로 만들어주시였고 해산한다고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일자리마저 포기한 채 외국에서 달려와주신 시어머니였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속이고 모유수유를 안하려고 애쓰는 자신을 생각하며 은령은 자책을 느꼈다. 그래도 앞으로를 위해서 적당한 희생은 불가피적이라고 생각하며 은령이는 자아위안을 하였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젖은 자연스럽게 가버렸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나가는 날 차 안에서 은령이는 시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니, 앞으로 제가 잘할게요. 고마워요.”
시어머니도 은령이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애틋하게 말씀하셨다.
“얼굴이 축 난 거 봐, 고생했다. 녀자로 태여난 게 죄지.”
진심 어린 시어머니의 따뜻한 말에 은령이는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시어머니한테 효도하는 착한 며느리가 되리라 마음을 다지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늘의 구름처럼 끊임없이 그 모양을 바꾸며 변한다는 것을 멀지 않아 깨닫게 되였다. 삶은 끝없는 거짓과 진실의 공방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부단히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 그 자체뿐이다.
4
젖과의 전쟁을 하는 사이 어언 한달이 지났다. 난산이여서 그런지 은령이의 몸은 회복이 늦었다. 소변이 잦아서 자주 화장실을 다녔는데 한번씩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허리가 끊어지듯 아팠다. 조금만 힘을 써도 소변이 찔끔찔끔 흘렀다. 산후조리원에서 한두달 더 지내고 싶었으나 날마다 찾아오는 시어머니가 안타까워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은령이는 시어머니에게 애기 분유를 먹이는 량에 대해 먼저 알려주었다.
“먼저 분유를 한숟가락 평평하게 떠서 젖병에 넣어요. 다음 물온도가 40도를 유지하게 정해놓은 보온병의 물을 젖병에 부어요. 젖병에 100이라고 쓴 금이 있는 데까지 물을 부은 후 잘 흔들어서 먹이면 돼요.”
시어머니는 알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전혀 다른 물음을 제기하였다.
“근데 왜 분유를 먹이니? 내가 그렇게 젖이 잘 난다는 음식을 매일같이 가져갔는데 젖이 안 나오니?”
은령이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아니요. 젖이 잘 나왔어요. 근데 난산이라서 그런지 5일후에야 돌아서더라고요. 그사이에 분유를 먹였더니 애가 젖을 안 빨아요. 어머니, 저기 젖병 꼭지를 봐요. 얼마나 커요. 거기에 습관돼서 젖을 빨려면 힘드니까 애가 안 빨아요. 글쎄 어쩌면 갓난애들도 힘든 걸 벌써 싫어하더라고요.”
켕기는 데가 있어서 그런지 은령이는 횡설수설 말이 길었다. 시어머니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젖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뭔가 생각난듯 은령이를 유심히 쳐다보며 되물었다.
“내가 유축기를 보내주었는데 그걸로 짜서 모유를 보관했다가 다시 먹이는 방법두 있잖니.”
“그게요, 어머니, 랭장고에다 보관했다 먹이니까 애가 설사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먹이다 안 먹이다 하니까 젖이 가버렸어요.”
시어머니의 얼굴색이 변하였다. 젖이 많이 나오라고 한달 내내 고생한 것이 헛수고로 되였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은령이의 거짓말을 믿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는 모르지만 모유수유를 안하는 것은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버렸다.
며칠후 애기의 자지러진 울음소리에 은령이는 잠에서 깨여났다. 애기는 입술이 빨개서 앙앙 울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젖병을 들고 어쩔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어머니, 너무 뜨거운 걸 먹이셨네요. 제가 온도 맞추어놓은 물로 하시라고 했는데 끓인 물로 하신 거예요?”
“아니, 그게 너무 미지근해서 분유가 제대로 풀리겠나 싶어 내가 뜨거운 물로 풀었지. 아니, 손등에 떨구어보니 괜찮던데…”
말을 마치고 시어머니는 젖병을 입에 물고 쪽 빨았다.
은령이는 저도 몰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머니, 그걸 빠시면 어떡해요? 그리고 내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본인 생각 대로 하시는가 말이예요.”
은령이는 아픈 허리도 돌보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찡— 하는 아픔이 발끝까지 전해지며 미간이 찌프러졌다. 젖병을 시어머니 손에서 나꿔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뚜껑을 열고 우유를 싱크대에 부어버린 후 꼭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후로 시어머니는 다시는 분유를 건드리지 않았다. 낮이나 밤이나 서너시간 꼴로 일어나 분유를 풀어먹이느라 은령이는 늘 잠이 부족했다. 하루는 애가 온밤 울면서 보채여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머리를 짚어보아도 열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려고 보니 엉뎅이부터 항문 주위까지 피부가 빨갛게 까져있었다.
“어머니, 기저귀를 두시간에 한번씩은 무조건 바꾸어야 하는데 아깝다고 자주 안 바꾸시더니 이것 좀 보세요.”
시어머니는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다가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엎어지듯 달려왔다.
“어머, 이걸 어쩌니?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옛날식 대로 천기저귀를 쓰자고 했잖니. 다 만들어왔구만.”
시어머니는 보따리를 뒤지더니 천기저귀를 꺼내서 애한테 착용시켰다.
“그런 걸 쓰지 마세요. 자주 바꾸면 되잖아요. 이런 거는 위생적이지 않다구요.”
“씻어서 해볕에 말리면 되지. 그게 제일 좋은 소독이다. 그리고 저 비싼 세탁기는 언제 쓰니? 건조기능에 소독기능도 다 있다면서 이럴 때 쓰는 거 아니니? 우리 때는 그런 거 없어도 애들이 탈 없이 잘만 크더구만…”
이번에는 시어머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기저귀를 쓰게 되면서 두가지 기저귀를 병용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건조대에서 펄럭이는 기저귀는 마치 시어머니의 승리의 기발처럼 보였다. 은령이는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령이의 몸은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허리통증에 소변이 잦고 뇨실금이 계속되였고 변비까지 더해져 일상생활이 불편함투성이였다. 게다가 내리지 않는 체중과 망가져버린 몸매를 볼 때마다 이대로 살 수 있을가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빠져 아기마저도 돌볼 수 없어 억지로 밥상에 마주앉았다. 밥상 가득 차려진 고기반찬을 보며 은령이는 미간을 찌프렸다.
“전 젖도 안 먹이고 체중도 줄여야 하는데 이제 채소반찬도 좀 만들어주면 안돼요?”
“아니. 산모가 영양보충을 잘해야 몸이 빨리 춰서지. 너 그렇게 안 먹으니까 몸이 춰설 리 있겠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내가 절개수술만 제때에 받았어도 난산이 아닐 테고 몸도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거 아닌가요? 어머니가 순산, 순산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아니, 얘 봐라, 그게 어떻게 다 내 탓이냐? 너도 생각이 왔다갔다했잖아. 난 그냥 너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인데… 내가 잘한 건 아무 것도 없구나.”
결국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였고 얼굴을 붉히고야 말았다. 며칠간 둘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앞의 일만 수걱수걱 하였다.
밥상에는 야채반찬이 오르기 시작하였지만 역시 기름을 듬뿍 붓고 고기까지 넣고 함께 볶은 거라 은령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야채반찬을 하는 것으로 시어머니는 한발 물러섰건만 은령이가 먹지 않으니 서로의 오해는 깊어만 갔다. 은령이도 그 점을 느끼고 화해할겸 좋은 마음으로 부드럽게 시어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어머니, 채소를 씻어서 견과류를 조금 넣고 깨기름과 샐러드소스를 뿌려서 주세요. 그게 하기도 편하고 단백해서 먹기가 좋아요.”
시어머니는 밥상을 닦던 행주를 탕 소리나게 내려놓더니 얼굴에 노기를 띠며 말했다.
“난 샐러든지 뭔지 그런 신식 음식은 할 줄 모른다. 너 절로 알아서 해먹어라.”
시어머니는 쌩 바람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은령이는 놀랐다. 화해의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한 건데 이렇게 될 줄이야. 은령이는 서러웠다. 자신의 아픔과 걱정과 번뇌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서러웠다. 산모가 대접을 받기는커녕 이런 랭대를 받다니? 억울하고 슬펐다. 시어머니가 미웠다. 자신을 이렇게 힘들게 만든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은령이는 흐르는 눈물을 쓱 닦았다. 약해지지 말자, 강해져야지, 엄마니까. 은령이는 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느라 머리를 짰다.
5
해산한 지 두달이 지났건만 몸은 아직도 회복이 되지 못했다. 몸매회복은커녕 건강까지도 회복이 안되여 은령이는 우울하였다. 요즘은 시어머니와 마찰이 생기면서 우유 먹이는 일과 기저귀 가는 일이 다 은령이 몫으로 되였다. 게다가 야채반찬도 자기절로 만들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애 달래고 재우며 빨래하고 밥하며 설겆이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은령이의 건강상태로는 자신의 몫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남편이라도 불러서 도와달라고 하면 좋으련만 시어머니의 눈치가 보여서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도 없었다. 아예 시어머니 도움 없이 남편하고 둘이 육아를 하면 더 편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시어머니를 도로 가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결국 애기보모를 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머니, 우리 애기보모를 쓰면 어때요? 우리 두 사람으로는 힘들어요. 저는 몸도 회복이 안됐고 요즘은 머리카락까지 무더기로 빠져나가요.”
시어머니는 잠간 놀라는 듯하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희 마음대로 하거라. 나야 뭐 편하고 좋지. 돈이 들어서 그렇지. 제 새끼 제 뜻 대로 키우겠다는데 할미가 무슨 발언권이 있겠니.”
말에 가시가 있었지만 그래도 대답을 한 거니 보모를 청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50대 초반의 젊은 아줌마였는데 일을 깔끔하게 잘했다. 육아는 물론 시어머니 몫인 부엌일까지도 시간에 맞춰 척척 해냈다. 은령이가 잔소리 할 것도 없이 너무 마음에 들게 잘하였다. 시어머니가 잘 안되는 한어로 대화를 시도하며 뭔가를 좀 도와주려고 해도 하지 말라며 거절했다. 3만원이나 되는 로임에 해당되는 일을 하느라 그러는지, 아니면 자신의 일자리가 흔들릴가 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하기도 버겁던 일을 혼자서 너무나 거뜬하게 해내는 그의 능력에 엄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할 일을 잃은 시어머니는 이 집에 계속 있을 필요성이 없어졌다. 애기 백일잔치를 간단히 마친 후 시어머니는 다시 시누이들이 있는 외국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나 다시 외국 나가 일하련다. 내가 있어봐야 별 도움도 안되고 가서 돈이나 벌어 보태는 게 더 나을 것 같구나.”
은령이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소리였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년세도 많고 몸도 안 좋으신데 어떻게 일하시겠어요. 우리한테 이만큼 하신 것도 넘치는 겁니다. 늘 고마웠어요.”
은령이의 이 말은 진심이였으나 가지 말라고 간절하게 만류하지는 않았다.
“네가 이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이제 다시 가도 마음뿐이지 일을 오래 할 것 같지는 않다. 몸을 빨리 춰세우고 애도 잘 키우거라.”
시어머니는 눈굽을 적시며 구부정한 허리로 캐리어 하나를 달랑 끌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떠나가는 시어머니를 은령이는 측은한 눈길로 바래였다.
집에 돌아온 은령이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완전히 내가 주인이 된 집이구나 하는 생각에 신이 나기도 하였다. 먼저 애기보모에게 그동안 일한 로임을 계산해주며 그만 오라고 하였다. 보모비용을 감당하기에 버거웠고 남편과 둘이 같이 육아를 하면 굳이 보모가 없어도 큰 문제 될 것 없을 것 같았다. 남편도 쾌히 응하였다.
거실에서는 〈백조의 호수〉 발레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온다. 남편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은령이는 요람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아기에게 첫 발레무용을 선 보인다. 거실쏘파에 앉은 채로 곡에 맞춰 발레무용손동작을 선 보인다. 은령이의 현란한 춤동작에 빠져버린 아기는 은령이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날아가는 새의 동작을 흉내내면서 춤을 출 때마다 까르르 웃군 하였다. 유전자의 힘이란 그토록 강력해 생명의 본질과 의미를 재검토하게 해준다. 은령이는 자신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의 미래도 한없이 밝을 것이라 생각하며 더 힘있게 나래를 쳤다.
“우리 공주님들, 식사합시다.” 하는 남편의 다정한 부름소리에 은령이는 아쉬운듯 동작을 멈추고 일어나 발끝을 세우고 회전하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삶은 계란과 햄까지 얹은 야채샐러드가 밥상 가운데 자리에 번듯하게 놓여져있었고 남편 앞에는 곱게 썰어놓은 수육이 있었다. 석달 만에 가지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다. 남편은 아끼는 포도주를 잔에 부었다. 두 사람은 엄마, 아빠로 된 걸 자축하였다. 인생에는 다양한 역할이 있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경험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였다. 아이가 가져다주는 감동과 행복에 감사드리며 둘은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네가 먼저 씻어.”
남편은 은령이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이건 그들만의 사랑의 신호였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첫날밤처럼 긴장되고 기대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속으로 “내 몸이 이전의 그 몸이 아니야.”라며 불안을 표했다. 그는 웃으며 “나는 너의 령혼을 사랑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몸은 서로의 따뜻함과 진심을 느끼며 뭉쳤다. 두 사람의 열띤 숨결이 여운처럼 울려퍼지고 그녀는 발끝까지 그들먹이 차오르는 행복을 느꼈다.
갑자기 그녀를 어루만지던 손길이 멈추었다.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불을 켰다. 흥분에서 깨지 못한 은령이의 알몸이 그대로 불빛 아래에 드러났다.
“이게 뭐야? 밸이 나왔네.”
놀란 남편이 퀭하니 은령이의 다리 사이를 바라보았다. 은령이는 급히 이불깃으로 몸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확실히 웬 고기덩이가 나와있었다. 은령이도 깜짝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그길로 병원급진실로 향했다.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이는 난산인 산모한테서 흔히 생기는 현상인데요, 자궁탈출증이라 합니다. 자궁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골반기저근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시면 정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운동치료로 개선이 안되는 경우에는 수술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큰 병이 아니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이긴 했지만 어쩐지 모를 불길함에 은령이는 가슴이 떨리였다.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우울함이 담겨있었다.
남편은 직업가수였는데 로임이 적었지만 휴일에 결혼식장에 가서 노래하고 저녁에 클럽에서 노래 부르면서 부수입을 벌었다. 그런데 근년에 직장외의 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제한을 받자 아예 직장을 버리고 친구와 함께 자그마한 웨딩회사를 차리였다. 사장이다보니 시간이 자유로웠다. 노래 부르는 일외에는 별로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업무처리를 하군 하였다. 그런 남편을 크게 믿고 시작한 두 사람의 육아는 불화의 시작이 되였다. 남편한테 시키면 마음에 들게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일을 하고도 나무람만 받으니 남편의 열정도 식어갔다. 처음에는 못 들은 척하거나 뒤로 미루더니 후에는 회사 일을 핑게로 대며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였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마치고 은령이는 거울 앞에 마주앉았다. 거울 속의 녀자는 시간과 현실에 고문을 당한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들어있었다. 그녀는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으려고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 미소는 무력함과 슬픔으로 가득차있었고 마음속 깊은 곳의 고통과 걱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한때 열정으로 가득차있던 그녀의 손은 이제 그녀의 옆에 힘없이 매달려있었다.
갑자기 짙은 안개가 앞을 가로막은 것처럼 삶이 혼란스러워졌다.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자신을 더 깊이 가라앉히는 절망으로 서서히 다가옴을 은령이는 어렴풋이 느꼈다.
6
돈 벌어서 보내주겠다던 시어머니는 소식이 없다. 꼬박꼬박 로임을 바치던 남편도 생활비를 내놓지 않는다. 그전에는 남편의 수입이 눈에 차지 않아 바라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자존심이 상했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령이는 아기를 안고 슬그머니 식사를 하고 있는 남편 앞에 앉았다.
“어머니는 이젠 우릴 안 도와주려나 봐, 소식이 없네.”
“그만큼 도움 받았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남편은 은령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은령이는 남편의 태도에 저으기 놀랐다. ‘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나와?’ 하는 생각에 욱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럼 당신은 왜 생활비를 안 줘?”
“언제는 내 돈은 비려서 안 쓴다며… 차를 새로 바꾸었어.”
“차를 바꿔? 나하고 상의도 없이? 너 마음대로야?”
“지금까지 살면서 다 네 마음대로 하면서 살았잖아. 나도 한번 쯤 내 마음대로 하면 안되니? 사사건건 너한테 보고해야 돼? 나는 뭐 생각 없는 줄 알아? 나도 좀 숨 쉬고 살자구.”
두 눈을 부릅뜨고 은령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울부짖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남편이 아니라 한마리의 성 난 짐승 같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다정하던 남편이, 은령이의 말이면 무조건 오케이던 남편이, 공주님이라며 떠받들던 남편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니? 남편이 더는 애 낳고 망가져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날 밤 이후로 남편은 한번도 은령이 옆에 온 적이 없었다. 참고 있었던 울화가 화산처럼 폭발하였다. 온몸이 달아오르며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서 네가 잃은 게 뭔데? 나는 몸매도 망가지고 녀자두 망가지고 생명 같은 내 발레두 더는 못하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이잖아.”
그녀의 눈은 분노로 가득차있었고 이를 갈며 히스테리적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다 네가 선택하고 네가 자초한 일이지. 너의 그 우월감과 오만이 날 얼마나 작아지게 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알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구…”
남편은 경멸에 찬 눈초리로 은령이를 손가락질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이마의 피줄이 솟아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은령이는 걸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국그릇을 들어 남편한테 확 뿌렸다. 길다란 미역줄기들이 남편의 얼굴을 가리웠고 시커먼 국물이 미역줄기를 따라 상 우에 뚝뚝 떨어졌다. 남편은 손으로 미역줄기를 확 걷어내더니 “너 미쳤어?” 하고 꽥 소리를 지르더니 은령이의 귀뺨을 찰싹 때렸다. 그 서슬에 은령이는 아기를 안은 채로 밥상에 얼굴을 묻고 엎어졌다. 찝찔한 미역국이 입술에 흘러들었다. 은령이는 그것을 빨았다. 짭짤하니 맛 있었다. 놀란 아기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온다. 은령이의 앞에는 맑고 넓은 호수가 펼쳐졌다. 〈백조의 호수〉 음악이 천천히 흘렀고 그녀는 백조가 되여 그 호수에서 마음껏 날아옜다.
“은령아, 머리 들어. 왜 그래?” 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음악 속에 묻혀버렸다.
남편의 손이 힘껏 은령이의 머리를 받쳐들었다. 은령이는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밥상에서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주위의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발끝을 세웠다. 회전도 가능했다. 가벼운 점프도 가능했다. 그녀의 춤 추는 자세는 마치 백조의 령혼이 발을 따라 움직이듯 경쾌했다. 눈빛에는 끝없는 슬픔이 담겨있었고 그 슬픔을 화려한 춤으로 변신시켰다. 그녀는 자정까지 계속 춤을 추었고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때에야 침대에 쓰러졌다.
그후에도 은령이는 남편만 집에 들어오면 발레를 췄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그녀만의 불만과 항의인지 아니면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인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이상이 온 건지는 그녀만 알았다.
밤 12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남편은 아직 귀가전이다. 은령이는 수면제 두알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12시는 은령이가 남편한테 정해놓은 통금시간이다. 남편은 그것을 잊고 사는데 은령이 혼자만 지키고 있었다.
탕 하고 차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돌아온 거다. 은령이는 잠옷바람으로 베란다로 뛰여갔다. 아래를 굽어보니 과연 남편이 새로 뽑은 빨간 차가 정차해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나오질 않는다. 랭전중이라 서로 말을 섞지 않는데 부르기도 무엇하고 또 한밤중에 큰소리를 낼 수도 없는 터라 내려가 볼가 말가를 고민하는 사이 운전석문이 열리고 긴 머리의 녀자가 내렸다. 이어서 오른쪽 차문도 열리더니 남편이 내렸다. 자기 차를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걸 싫어하는 남편이다. 둘은 마주서서 껴안고 키스를 하더니 아쉬운듯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10층이라 벽 쪽에 붙어섰는지 잘 내려다보이지 않았다. 은령이는 창문을 살며시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안 보였다. 웃몸을 더 앞으로 내밀고 아래를 굽어보았다. 안 보인다. 발끝까지 쳐들고 기웃거리였다. 이 때 갑자기 “뭐하는 거야?” 하는 소리와 함께 억센 손이 란간에 엎드려있는 은령이의 허리를 안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남편이 가쁜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은령이가 죽으려고 란간에 엎드려있는 줄로 오해한 것 같았다. 은령이는 쓴웃음이 나왔다. 이런 반응은 뭐지? 내가 죽는 건 두려운 건가? 나한테 남은 그의 감정은 뭘가? 련민? 그런 생각을 하니 남편이 가소로웠다. 은령이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미친 척해보기로 했다. 도대체 네가 어떻게 나오나 두고볼 심산이였다. 은령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하” 소리 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백조의 호수〉 발레를 추면서 날을 밝혔다. 어차피 불면의 밤일 테니까.
날이 밝자 은령이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무리 정신 나간 것이 아니라고 해도 남편의 서명으로 그녀는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그 날부터 정신병원에는 ‘백조’라는 별명의 환자 한명이 불었다.
낮에는 백조처럼 댄스치마 바람으로 발레신발을 신고 머리를 높이 묶은 후 챠이꼽스끼의 〈네마리 백조〉의 음악에 맞춰 온 병원을 누비며 춤을 춘다. 발가락은 나비처럼 땅을 가볍게 두드리고 팔은 공중에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우아하게 움직인다. 몸의 모든 부분이 옳바른 방식으로 발레를 선 보인다. 저녁에는 《백조의 호수》 책을 펼쳐들고 열독하거나 조용히 사색에 잠겨있는다.
은령이는 그 날 밤에 본 긴 머리 녀자의 익숙한 모습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의 비밀은 바람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건만 은령이는 그녀한테 모든 걸 오픈했었다. 은령이는 리혼하고 오갈 데 없는 그녀를 발레학원 부원장으로 받아주었고 그녀와 가족처럼 지냈다. 은령이가 직업녀성으로서 성공의 희열에 빠져 사회생활에 매진하고 있을 때 자기가 비워둔 안해의 빈자리를 그녀가 은령이 대신 지키고 있었음을 은령이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은령이는 남편과의 은밀한 사정까지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어쩌면 남편의 말 대로 자신의 우월감과 오만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병원에는 날이 갈수록 춤 추는 ‘백조’가 늘어났다. 언제부터인가 병원이 아니라 발레학원인 줄로 착각할 정도로 일렬로 줄을 선 환자들 가운데서 댄스 스틱을 들고 서있는 은령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레는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예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백일 동안 ‘백조의 호수’에서 춤 추던 ‘오데트공주’는 드디여 악마의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을 되찾았다.
연변문학 2024년 12월호
[문학닷컴] (인터뷰) 허련순, 정봉숙: 《위씨네 사당》의 창작 및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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