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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문단, 희망의 오아시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협회가 많기로 소문난 산동 청도에서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역시 그저 그렇게 얼렁뚱땅 생겨난 협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공식명칭은 ‘연변작가협회 청도창작위원회’, 공식 등록된 단체이며 문화를 사랑하고 문화를 지키기 위한 유지인사들의 혼이 담긴 조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전신은 2007년 12월에 설립된 ‘청도연해조선족문인협회’이며 제1임 회장은 당시 《송화강》잡지사 청도특파원으로 있던 리호원이다.
설립 멤버로는 리상각, 박창묵, 홍영빈, 리호원, 장학규, 김춘택, 리홍철, 조광명, 홍군식, 김명숙, 송련옥, 최균필, 박영희, 김정호이다.
“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이 청도에 모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리상각, 박창묵도 청도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저희들은 놀랐지요. 문단의 기라성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출범 초기부터 함금량이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멤버이자 현재까지도 청도작가협회에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평론가 장학규씨가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보면서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설립 이듬해인 2008년 7월, 청도연해조선족문인협회는 연변작가협회 청도지역 창작위원회로 되였고 청도지역에 왕성한 창작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하였다.
기성작가들도 있지만 아마추어 작가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들은 신예문학인들의 가슴에 창작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당찬 시도를 했다. 회원작품집을 발간하는 것이다.
2009년, 청도누가의료기기유한회사 정효권 리사장의 후원하에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첫 회원작품집인 《갯벌의 하얀 진주》가 고고성을 울렸다. 회원작품집 발간 소식은 당시 청도 지역사회의 큰 이슈로 되였다. 이는 지역사회를 향한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신고식인 셈이였다. 매기 35만자 이상 되는 회원작품집은 이 협회의 브랜드로 되였고 2018년까지 이미 8권을 공식 출간했다.
“제9권도 몇해 전에 이미 편찬이 끝나고 출판사에 교부한 상황입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제3임 회장인 리문혁씨가 설명했다.
“사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가 오늘과 같은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위기를 용케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초창기부터 청도조선족작가협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한 유지인사가 10여년 전의 일을 되돌이켜보면서 말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를 보면 제1임 리호원, 제2임 리홍철, 제3임 리문혁… 모두가 리씨이다. 그러나 그 연혁을 살펴보면 2010년 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회장직무대리 시간이 있다. 회장직무대리를 한 주인공은 바로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장학규이다.
당시 제1임회장 리호원씨가 《송화강》 잡지사로 소환되면서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진통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회장이 없는 협회’로 표류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가 존페의 기로에서 헤맬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평론가 장학규였다. 성품이 올곧고 강직한 장학규는 문학사랑이 각별하다. 정성 들여 세운 작가협회가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던 장학규는 협회를 살리기 위한 일에 본격적으로 뛰여 들었고 회장대리를 맡아 협회를 근 1년간 무난히 이끌었으며 제2임 회장을 성공적으로 탄생 시켰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에서 2010년 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의 시간을 ‘생존과 발전의 분수령’이라고 보고 있는 리유이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제2임회장 리홍철은 2010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청도조선족작가협회를 이끌고 자기만의 색갈을 구축했다. ‘연문’컵 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했고 대원학교와 서원장조선족소학교를 찾아 백일장을 펼쳤다. 올해까지 11년간 이어온 청도조선족작가협회 백일장은 제2임 리홍철 시대부터 시작되였다. 리홍철은 해외 문인협회와의 교류를 빈번히 조직했고 작가들의 창작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헌신적인 모습으로 연임에 성공했던 리홍철은 생활의 수요에 의해 청해성으로 이주,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또다시 새로운 회장을 탄생시켜야 할 력사적인 순간을 맞게 된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2014년 3월,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전성기 도래를 예고하는 투표의 시간이 초봄의 어둠을 타고 다가왔다. 련임하기로 하였던 제2임 리홍철 회장의 개인 사정 때문에 불시로 펼쳐진 회장 선거이다.
회장 후선인도 없고 회장 선거에 나선 사람도 없다. 문학적으로 크게 이름을 떨친 사람도 있고 참여와 봉사의식이 높은 사람도 있었으며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도 있는 상황에서 가능하게 반수 이상 득표자가 없어 2차 투표를 해야 할 것이라는 추측도 돌았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명랑했다. 리문혁(1966년생)씨가 압도적으로 득표하여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제3임 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고향이 흑룡강성 오상인 리문혁은 흑룡강성 오상사범대학 조선언어학부를 졸업, 1993년도에 청도에 진출하였다. 1983년 《장백산》 잡지에 <교정의 종소리>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고 지금까지 수십편의 작품을 각종 간행물에 발표하였다. 올해에는 그가 창작한 노래 <정다운 내 고향>이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매주일가 프로에 방송되면서 인기가요로 뜨기도 했다.
리문혁은 문학창작과 기업경영을 병행하는 문화인으로 민족사회에 각인되여있으며 연변작가협회 리사,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넉넉한 인심과 한결 같은 됨됨이가 리문혁 회장에게 몰표를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
당시 투표에 참가했던 한 작가가 당시의 선거분위기를 돌이켜보면서 말했다.
회장에 당선된 리문혁은 거창한 구호나 위대한 공약 같은 것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우량한 전통은 지키고 열심히 섬기고 열심히 봉사하겠다고만 하였다.
코로나19 시국하에서도 방역규정을 준수하는 전제하에서 대원학교와 서원장조선족학교를 찾아 봄과 가을에 각기 한차씩 진행하는 백일장을 펼치며 10년 동안 견지한 백일장의 맥을 끊지 않았다.
“청소년 백일장은 이젠 어린이들이 기다리는 명절로 되였습니다. 덕분에 작문수준도 많이 제고 되였습니다.”
소학생 작문지도에서 성과를 내여 주목받고 있는 청도대원학교 권연이 선생이 말했다.
지난 2018년까지 펼쳐졌던 청도조선족민속축제는 청도조선족사회를 놓고 말하면 최대의 명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만명이 축제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때 리문혁과 작가협회 주요 멤버들은 가장 번화한 곳에 부스를 설치하고 도서판매에 열을 올렸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민속축제에서 도서 판매에 나선 이들의 모습은 민속축제의 또 다른 풍경선으로 되였다. 오고가다 이들의 모습을 본 많은 시민들은 흔쾌히 호주머니를 털었고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사회적인 인지도는 또 한단계 올라갔다. 청도 뿐만 아니라 위해에서 열린 민속행사장에도 왕복 다섯시간을 소요하면서 도서를 메고 달려갔다.
“협회 경비를 일정 부분 해결한 것도 있지만 주요한 것은 문화를 팔았고 문화의 가치를 전파한 데 있다고 봅니다.”
리문혁의 간단명료한 대답이다.
그는 회원들의 창작령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문화탐방도 조직했다. 회원들을 이끌고 제2임 리홍철 회장이 잠시 동안 머물렀던 청해성을 찾아 장족의 ‘줘마’ 문화를 직접 체험했고 력사가 유구한 서안을 찾아 력사의 숨결을 엿들었다. 위해 석도를 찾아 장사의 ‘신’ 장보고의 일생을 돌이켜도 보았으며 평도, 봉래 등 명승고적과 문화유산을 찾아 견식을 넓히기도 하였다.
문화탐방에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작품교류이다. 참가자는 반드시 작품을 제공해야 하며 작품이 없을 경우에는 창작계획이라도 발표해야 한다.
지금까지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회원작품집 《갯벌의 하얀 진주》를 8권 출간했다. 주지하다 싶이 민간단체에서 35만자 분량의 작품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리문혁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린 비용 때문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회장님이 다 해결하니까요.”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사무국에서 밝힌 말이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설립 10돐 행사도 거창하게 펼쳤고 4년 전부터는 회원을 상대로 ‘민들레 문학상’을 펼쳤다. 올해부터는 또 청도를 넘어 전 산동을 상대로 ‘민들레 문학상’을 내걸었다. 올해까지 10년, 리문혁은 청도조선족작가협회를 이끌고 봉사와 베품과 헌신의 시간을 10년간 보냈다. 지난 10년간 그가 작가협회를 위해 호주머니를 얼마나 털었는지 누구도 모른다. 그 역시 단 한번도 내색을 낸 적 없다.
“나앉는다고? 누구 마음대로, 천만에!”
리문혁이 임기가 만료되였기에 회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할 때마다 부딪친 벽이다. 부동한 년령층의 작가들과 리문혁 회장의 ‘임기만료’ 문제에 대해 문의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토론할 여지조차 없다고 하였다.
“잘하고 있는데, 임기는 무슨 임기… 우린 이대로 그냥 가기를 원하며 회장 임기 같은 건 묻지도 않습니다.”
한 중견작가가 흥분되여 소리쳤다. 그는 사람이 좋고 분위기가 좋아서 청도작가협회에 계속 몸담고 있는다고 고백했다.
“도박도 모르고 낚시도 모르고 골프도 모르고… 그는 오직 작가협회 밖에 모릅니다.”
리문혁의 한 친구가 밝힌 말이다. 한마디 더 부언한다면 그는 술과 사람을 즐긴다. 지인 몇이서 저가락을 두드리며 몇시간씩 놀 수도 있다.
친구의 일이거나 어느 단체에 행사가 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는 사람 역시 리문혁이다. 그리고 그는 또 ‘몰카’를 즐긴다. 그의 휴대폰에는 기상천외한 사진들이 많고 많다. 거의 모두가 그가 직접 찍은 작품이다. 언젠가는 ‘몰카’ 작품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멋진 남자 리문혁, 그의 머리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장미빛 래일이 기대된다.
“많은 협회를 돌아봐도 청도조선족작가협회 만큼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협회가 없습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한 녀성작가의 말이다.
입 안의 혀도 씹을 때가 있고 형제 사이에도 버성기는 일들이 흔히 발생하지만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언제나 조화롭다. 년령구조를 살펴보면 30대부터 80대까지이다. 30대부터 50대까지 한축으로 움직이고 있고 60대부터 80대까지 또 한축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분산과 집중의 형식을 결합하여 작가협회 팀웍을 이루고 있다.
젊은 세대중의 리홍숙이 이끄는 ‘7번방’은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활력소로 되였다. ‘7번방’ 10여명 문학도들은 이미 아마추어 때를 벗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수십편 작품은 이미 각종 간행물에 발표되였다.
‘7번방’이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신진 작가들의 산실로 자리잡았다면 65세 이상의 작가들로 구성된 ‘노을팀’은 로익장을 과시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80세 이상의 홍영빈과 허만석 작가는 이미 시집과 장편소설을 출간한 경력이 있고 70대 초반의 최화자는 디카시 대상 및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음악제 동요제에서 우수상과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0대 후반의 정순금, 리광학, 김운천, 림동호 역시 작품집을 내놓았으며 리순자, 최종원은 디카시창작에서 두각을 내밀고 있다.
50대 후반의 회장 리문혁, 고문 장학규, 부회장 최재문이 부동한 년령층을 넘나들며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협회 사무국을 책임진 구인숙, 김영분, 권연이, 리홍숙 등 작가들은 부드럽고 후더운 이미지로 협회에 따스함을 불어넣고 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가 량적, 질적인 비약을 이룰 수 있게 된 데는 ‘김학철문학상’ 수상자 장학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출판업계에서 다년간 편집사업을 했던 장학규는 소설, 평론, 수필 집을 여러권 출간했으며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간판’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장학규의 작가협회 사랑과 문학사랑은 일품이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에서 지금까지 공식 출간한 회원작품집 《갯벌의 하얀 진주》 8권은 모두 장학규가 편집한 것이다. 35만자가 아니라 350만자라고 해도 그는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다 읽어보고 수정의견을 제기한다. 그는 종래로 남의 작품에 손을 대지 않는다. 작품으로 완성될 때까지 수정의견을 제기하고 또 제기한다. 때문에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은 완성도가 높다.
다년간 장학규, 리홍철, 한춘옥, 최재문, 리길룡, 리문혁, 윤명해, 김영분, 구인숙, 리홍숙, 권연이, 강희선, 전향미 등 작가들이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주축을 이뤘다면 요즘은 30, 40대들의 약진이 거세여 무척 고무적이다.
김연, 김춘희, 리병군, 류선희, 김련화, 김선화, 현미화, 박목 등 신진들이 륙속 문단에 두각을 내밀고 있으며 이들중 리홍숙과 리화는 이미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들의 작품은 문단의 각종 문학지면을 도배하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응모에서 청도는 언제나 한자리를 차지했다.
한편 축하의 문화는 창작 열정의 기폭제로 되였다. 현재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위챗방에는 74명 회원이 있다. 그 누구를 불문하고 작품이 발표되기만 하면 응원의 메세지가 춤추듯 날아오른다. 일전 송화강문학상에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한춘옥과 전향미가 수상자 명단에 오르자 회장 리문혁은 직접 할빈으로 날아가 두분 회원의 로고를 치하하고 격려하면서 작가로서의 영예감과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몇해 전부터 회원들이 작품집을 발간했을 경우 모임을 가지고 출간식을 치러주었다. 정순금, 허만석, 림동호, 리홍숙 등 작가들이 영광의 주인공으로 되였다. 그중 리홍숙의 작품집 《탈춤》 출간식은 온라인으로 생방송되기까지 하여 큰 이슈로 되였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들은 흔히 ‘민들레문학상’을 ‘노벨문학상’이라고 부른다. ‘민들레문학상’은 청도조선족작가협회에서 2020년에 설립한 문학상으로 올해까지 이미 제4회를 맞는다. 첫 3회는 청도작가협회 회원들만 대상하여 펼쳤지만 올해부터는 산동반도 문학인들을 대상으로 펼쳤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장 리문혁은 향후 ‘민들레문학상’을 전국 나아가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치고 싶다고 했다.
해마다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들의 250여편 작품이 조선족문단의 주요 잡지와 간행물에 실리고 있으며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 《송화강》 잡지와 연변일보, 흑룡강신문, 길림신문, 료녕신문 등 매체에서는 지면을 할애해 ‘청도특집’을 내기도 했다.
가사는 청도조선족작가협회의 약한 고리이다. 가사창작 열조를 일으키기 위해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청도삼구식품’의 후원하에 올해 연변음악가협회 림봉호 주석과 시인 박춘선을 청도에 요청해 가사창작 학습반을 개최, 그중 두수의 가사가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매주일가’에 선정되여 방송되기도 했다.
10여년간의 노력 끝에 청도는 민족문화의 불모지로부터 민족문화의 옥토로 변했고 ‘청도현상’은 잠간 반짝이는 불꽃이 아닌 료원의 불길로 산동반도를 덮고 있다.
소설, 시, 수필, 평론, 가사, 칼럼, 극본… 청도조선족작가협회는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았다.
이들이 달리는 길에는 ‘풍년가’ 구성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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