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지 오래된 지금도 학교 앞을 지나갈 일이 있을 때 마다 생각나는 추억의 썰을 적어보려합니다.
당시 응답하라1994 방영 이후 기숙사,원룸자취 보다 하숙집이 다시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대 전역 후 1년을 쉬고 복한한 저는 기숙사에서 생활하였고 당시 학과에서 친하던 남,여 친구후배들이 한 하숙집에 몰려있어 가끔 놀러다니며 하숙집 주인 아줌마,아저씨와 인사드리고 저녁도 얻어먹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또래에 인기는 없지만 어른들에게 오히려 먹히는 얼굴이였습니다. 그 덕에 살진 않지만 반찬도 가끔받아먹을 정도였죠.하숙집 생활하던 친구가 먼저 졸업을 하며 이사하게되어 이삿짐을 옮겨주기 위해 자차가 있던 제가 하숙집으로 갔습니다.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가려던 중 마지막으로 아줌마께 인사드린다던 친구를 따라 뵈러갔습니다. 아줌마는 미시룩에 얇은 가디건을 하나 걸치시곤 소파에서 티비를 보고 계셨습니다.
아저씨는 당시 건설업에 종사하셔서 사우디로 장기 출장을 가셔서 안계셨습니다. 아줌마는 당시 40중반의 나이에 쳐진살 없이 가슴은 b컵정도로 보이는 몸으로 혈기왕성한 저의 그곳은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치찌개 끓여 놨다며 밥 먹고 가라는 말에도 급히 인사드리고 가자던 친구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후딱 정신을 차리고 차를 끌고 이동했습니다.
친구집에 도착하여 이삿짐을 정리하던 중 하숙집에 말려놓은 이불을 깜빡했다는 말에 저는 바로 “내가 차로 다음날 가져다준다” 말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친구가 연락을 해놓은 참인지 하숙집에 갔더니 아줌마가 이불가방을 가지러 왔냐며 잘 왔다고 밥먹고 가져가라고 하여 꼴리는 미시룩과 끝에나마 보이는 가슴골을 볼겸 감사하다고 밥을 먹었습니다.
다먹고 이불을 가지러 가는데 세탁실이 아줌마방 옆에 있어 따라 가는중 아줌마의 브라 팬티가 빨래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폭발할 듯이 빨개졌는데 아줌마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면서 저를보고 웃기만 했습니다.
세탁실에 도착해 이불가방을 드는 순간 아줌마가 남편이 장기출장가서 너무 외로운데 오늘 같이 있어 줄 수 있겠냐고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으시는 겁니다.
전역하고 2년동안 여친도 없었겠다 평소에 미씨류 야동을 즐겨봤던 저는 뒤도 안돌아보고 키스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줌마는 혹시나 친구들이 빨래하러 올 수 있으니 방으로 가자고 해서 아줌마방 침대에서 키스를 이어 나갔습니다. 평소에 아저씨랑 같이 쓰는 침대에서 내가 키스를 하고있고 아줌마의 가슴을 만지고 있으니 너무 꼴려서 그때부터 서로 옷을 벗기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박아댔습니다.
당시엔 최소 하루3딸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몇번을 싼지 모를 정도로 했습니다. 확실히 아줌마는 또래에 비해 스킬이 좋은것이 또래가 펠라해주는건 너무 싫었습니다.
치아에 걸리고 잘하는 애를 찾기가.힘들었는데 입으로만 싸게하는 엄청난 스킬에 몇발을 뽑았는지.. 또 싼 정액을 정성스럽게 삼키는 모습은 얼마나 꼴렸는지..당시 임신되서 인생망칠까봐 콘돔없인 하지도 못했던 겁쟁이가 노콘으로 임신 걱정없이 싼게 얼마나 큰 희열이였는지 모릅니다.
쌀거 같을때 양손으로 제 허리를 꽉잡고 안쪽 깊숙히 싸라는 멘트는 어후.. 아직도 빠짝서는 추억입니다.
관계가 다 끝나고 아저씨가 돌아오기 전까지 제가 하고싶을때 언제든지 와서 하기로 한 후 이불가방을 들고 나왔는데 하숙집에 살던 같은 과 동기여자애와 지나치는데 오빠가 왜 아줌마방에서 나오냐하는데 능청스럽게 친구 이불 대신 가지러 왔다고 할 땐 얼마나 속으론 떨렸었는지 모르겠네요ㅎㅎ..
이후 부모님에게 쫄라서 기숙사 나오고 하숙집에 들어가서 살면서 쭉있던 썰들도 풀고싶은데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학교앞을 차로 지나가는데 문뜩 생각나서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