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2일 길림성 돈화시에 몇 대의 경찰차가 남쪽 교외의 한 조선족이 많이 사는 마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번에 경찰은 한 죄수를 데리고 현장을 확인하러 왔는데.. 26년 전인 1993년 그날, 이 마을에서 남성 최충(崔冲)은 잔인하게 한 조선족 모녀를 강간하고 살해했다. 충격적인 것은 살해된 모친 강민(姜敏)은 최충(崔冲)의 외숙모이고 강간, 살해된 딸 박진영(朴真英)은 최충(崔冲)의 사촌 여동생이다. 최충(崔冲)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강민(姜敏)의 가족들은 매우 분노했다. 그것은 강민(姜敏)의 두 아들과 최충(崔冲)은 매우 친했고 셋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으며 매우 가까웠다. 게다가 최충(崔冲)이 체포되기 전에는 최충(崔冲)은 강민(姜敏)의 두 아들과 함께 한국에서 일도 했었다. 1993년 어느 날, 돈화시 승리촌의 주민 정은경(郑恩京)은 밤중에 이웃집에서 비명소리를 들었고 누군가 부부싸움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농촌에서는 흔한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상상도 못했다. 이 소리가 강민(姜敏)의 집에서 나온 것이었고 어떤 미친 남자가 강민(姜敏) 모녀를 해치고 있었다는 것을 강민(姜敏)은 망치로 맞아 죽었고 그녀의 꽃다운 둘째 딸 박진영(朴真英)은 강간당한 후 살해되었다. 다음날 마을 주민 정은경(郑恩京)이 미리 약속했던 일 때문에 강민(姜敏)을 찾아갔을 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앞의 끔찍한 광경에 혼비백산했다. 그녀는 급히 뛰쳐나와 소리쳤다. "살인이에요, 다 죽었어요! 다 죽었어요!..." 당시 출동 기록에 따르면 중년 여성 강민(姜敏)은 바닥에 누워있었고 머리가 도끼로 여러 번 찍혀 이미 숨져있었으며 20살의 딸 박진영(朴真英)은 질식사했고 살해되기 전에 강간당했다고 한다. 범행 현장에는 범인의 지문 반 개만이 남아있었고 당시 기술의 한계로 범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1993년, 갓 결혼하여 아들이 있던 최충(崔冲)은 다른 사람들처럼 해외에 나가 돈을 벌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해외 취업을 위해서는 1만원이 필요했고 당시로서는 1만원이 일반 가정에게는 매우 큰 돈이었다. 최충(崔冲)은 도저히 이 돈을 마련할 수 없었고 형제자매들도 모두 형편이 어려워 빌릴 수 없었다. 최충(崔冲)은 한 번에 1만원을 빌려줄 수 있는 친척은 외숙모 강민(姜敏)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민(姜敏)의 가족은 마을에서 몇 안 되는 만원 호였고 남편과 아들도 해외에서 일하며 딸라를 벌고 있었기 때문에 최충(崔冲)은 그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7년 전 외삼촌과 한 번 다툰 적이 있었고 외삼촌이 그를 때린 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자존심 때문에 그는 차마 이 부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해외에 나가 큰돈을 버는 것을 보며 마음이 급해졌고 이제는 아내와 아이도 부양해야 했으며 경제적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하였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여 강민(姜敏)에게 부탁하기로 결심했다. 강민(姜敏)의 집에 가기 전에 용기를 내기 위해 술을 반 병 마시고 술기운을 빌려 용기를 내어 밤 8-9시쯤 강민(姜敏)의 집을 찾아갔다. 강민(姜敏)은 최충(崔冲)이라는 사람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이상하고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7-8년 동안 왕래가 없었던 최충(崔冲)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매우 놀랐다. 그리고 최충(崔冲)이 돈을 빌리려고 했을 때 그의 온몸에서 나는 술 냄새가 강민(姜敏)에게 매우 나쁜 인상을 주었다. 누가 늦은 밤에 술에 취해 돈을 빌리러 오겠는가? 따라서 강민(姜敏)은 그 자리에서 거절했고 이는 최충(崔冲)을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친척 관계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1만원은 작은 금액이 아니었고 게다가 두 집안이 이렇게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는데 최충(崔冲)이 이런 식으로 돈을 빌리려 하는 것은 태도부터 올바르지 않았다. 그래서 강민(姜敏)은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거절했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최충(崔冲)은 강민(姜敏)의 이런 말들이 자신을 모욕했다고 느꼈고 이는 결국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최충(崔冲)은 수치심과 분노로 가득 차서 강민(姜敏)의 집을 떠났지만 바로 떠나지 않고 강민(姜敏)의 마당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조금 전 강민(姜敏)의 말을 생각하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는 원래 돈을 빌린 후 조용히 떠나려고 했다. 밤에 강민(姜敏)의 집을 찾아간 이유는 낮에 가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을 빌리지도 못하고 강민(姜敏)에게 꾸중을 들은 채 쫓겨나와 그 자신도 매우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꼈다. 결국 그는 내면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범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강민(姜敏)의 둘째 딸 박진영(朴真英)이 돌아왔고 그는 한 구석에 숨어 강민(姜敏)과 딸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먼저 전선(电线)을 끊어 범행 시 자신이 발각되지 않도록 했다.이어서 그는 집 안에 있던 쇠망치를 들고 강민(姜敏)의 앞에 나타났다. 그가 구들에 올라가려고 할 때 강민(姜敏)이 깨어났지만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최충(崔冲)이 쇠망치를 휘둘러 이마를 세게 내리쳤고 여러 번 내리친 후 강민(姜敏)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서쪽 방에서 자고 있던 박진영(朴真英)이 소리를 듣고 일어나 확인하러 나왔다가 최충(崔冲)과 마주쳤다. 박진영(朴真英)은 놀라서 방으로 도망쳤고 이불로 막아보려 했지만 최충(崔冲)이 이불을 통해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녀가 거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르다가 이불을 치우고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이때의 최충(崔冲)은 마치 미친 짐승처럼 인성을 잃은 상태였고 옷이 흐트러진 박진영을 보고 욕정이 일어나 그녀를 강간했으며 이후 그녀를 살해했다. 살인 후 돈도 가져가지 않고 밤을 틈타 현장을 도주했다. 살인 후 최충(崔冲)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그는 절대로 신분증을 사용하지 않았고 공안 시스템에서 업무를 처리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7-8년 동안 승리촌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경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년 후 그는 구실을 만들어 돈화 승리촌에서 더 멀리 떨어진 영길현(永吉县)으로 이사를 갔고 이렇게 해서 그는 완전히 경찰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는 계속해서 요행을 바라며 사건이 20년이 지나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계속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국으로 노무 수출을 하러 가서 큰돈을 버는 것을 보고 다시 마음이 동했고 결국 여권을 만들어 한국에 갔다. 바로 이때 지문이 공안부서에 채취되었고 경찰은 빅데이터 비교를 통해 당시 살인 현장의 반쪽 지문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최충(崔冲)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지 못하고 2019년 4월에 체포되었다. 우리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 돈을 빌려주는 것은 정이지만(借钱给你是情分), 빌려주지 않는 것은 본분이다(不借你是本分). 이 사건에서 최충(崔冲)의 결말은 동정할 가치가 없다. 그는 심리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생활의 불순(不顺)을 타인에게 돌리고 자기 반성은 하지 않아 결국 자기 자신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이렇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대할 때에는 거절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담아 전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