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 · 潮歌网 www.zoglo.net
조선족글로벌네트워크 · 主播微信号:zoglo-net22
겨울의 입구에 서서 가을을 불러보며
한영남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창밖 쟁글거리는 마가을 해볕을 한줌 쥐여 냄새를 맡아봅니다
역시 가을은 오곡백과 무르익는 계절이네요
이럴 때면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싶군요 앞에 놓인 커피가 다 식어가도록
청춘은 때론 가을하늘을 몰라도 좋다고 했던가요
가슴을 열면 세상이 온통 내 것처럼 느껴지던 젊음을 뒤로 하고 이제 얼마쯤의 생각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여 가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도 좋을 듯 합니다
단풍으로 붉었다가 락엽으로 흩날리는 가을이 저렇게 터벅터벅 세월의 뒤안길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꽃으로 왔다가 씨앗으로 갑니다
가을은 생글거리며 왔다가 리별의 아픈 눈물이 되여 떠납니다
가을은 잘 익은 술처럼 향기가 그윽하고 성숙된 남자처럼 매력적입니다
가을은 한 점 뜨거운 정열로 막 달려왔다가 웃음기를 거두고 사색 한 웅큼으로 응어리집니다
가을은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푸른 하늘이 흐르고 맑은 샘이 솟구치며 투명한 바람이 설레입니다
가을은 모르는 척 하려 해도 저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게 만들어놓고 그러고는 시치미를 떼고 저렇게 넌짓이 높아가고 멀어갑니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인생의 빗겨금 하나 주욱 그어주고 겨울한테 자리를 내주고는 짐짓 아무 말도 없이 강남 가는 기러기를 따라 훨훨훨 날아갑니다
그럴 때면 명년에 다시 보자는 약속이 왈랑절랑 차거워진 공기속에서 들려오는 듯 합니다
가을일가요?
가을이네요!
제대로 즐기지 못한 가을을 보내고나면 그해 겨울은 내내 침울하고 지어 짜증마저 납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노래말처럼 왔을 때 즐겨야 하는데 말입니다
겨울이 저만치서 얼음우를 미끄러져 오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새삼스레 떠나간 가을을 그리워해도 좋을 듯 합니다
겨울이 왔는데 겨울을 맞이할 궁리도 하지 않고 가을을 그리워하는 것은 약간 겨울에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가을이 그냥 좋은 걸요
해마다 보는 가을이 싫지 않고 밉지 않고 그냥 그냥 좋은 걸요
애인처럼
사랑처럼
`
서정수필
하늘이 저렇게 푸르게 열리면 가을아
한영남
아침 하늘이 어쩜 저리도 푸르다냐? 밤새 누가 저 너른 가을하늘을 락엽 하나 없이 푸르게 푸르게 쓸어놓았다냐?
시인들은 저 푸른 하늘에 손 내밀면 금세 푸른 물이 들 거라고 읊기도 하고 돌을 뿌리면 쨍그랑 하고 깨여질 것 같다고도 말하지. 근데 그거 알아? 난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면 웬지 자꾸 울어버리고 싶다는 것을.
물이 바닥 모래알마저 세일 수 있을 정도로 맑아지고 공기가 초겨울 살얼음처럼 투명해지고 기러기들이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남으로 남으로 날아가는 가을이야.
산에서는 활활 타오르던 단풍들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고요한 호수물에 닁큼닁큼 뛰여내리고 가을바람에 억새들이 못참겠다는듯이 하얗게 너흘거리고 있어.
가을은 사색하는 계절이요 독서의 계절이요 말들을 하지만 그거 알아? 난 저렇게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보면 웬지 자꾸 울어버리고 싶다는 것을.
가을 하늘을 마주하고 가을 벌판에 벌렁 누워 두팔을 펼쳐본 적 있니? 나는 그럴 때마다 지구를 등짐으로 짊어지고 하늘이라는 바다에 풍덩 뛰여드는 착각을 하군 해.
가을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지. 그게 가을이야. 굳이 누구와 언제와 어디라는 걸 떠나서 그냥 혼자라도 언제라도 어디라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 가을이야.
가을이면 어딘들 명소가 아니며 누군들 나그네가 아니랴.
굳이 알프스가 아니라도 좋겠지. 돈강, 센강, 템스강, 라인강, 허드슨강이 아니면 어때? 가을이라는 낱말만으로도 울먹이는 감성적인 사람이 곁에 없어도 괜찮겠지. 이 하늘, 이 공기, 이 물, 이 산, 이 바람만으로도 가을을 온전히 즐길수 있잖아. 근데 그거 알아? 난 저렇게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보면 웬지 자꾸 울어버리고 싶다는 것을.
나풀거리는 락엽이 가을이오 속삭이고 있어. 뒤산 내리는 개구리들이 가을이오 꽈르륵거리고 있어. 무서리가 내린, 조색판보다 더 다양한 색상의 들판에서는 메뚜기들이 가을이오 시름없이 풀쩍이고 있어. 산 정수리에서는 세월이 스쳐가는 소리가 가을이오 들릴 듯 아슴하게 메아리치고 있어. 바싹 마른 콩꼬투리 속에서는 노오랗게 또르르 살진 콩알들이 가을이오 차르랑차르랑거리고 있어. 근데 그거 알아? 난 저렇게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보면 웬지 자꾸 울어버리고 싶다는 것을.
가을이면 세상이 익어가고 익어가는 세상이 가을이오 소리소리 지르지만 왜 우리는 가을을 즐기면서도 가을을 보내야 하는 걸가?
가을의 뒤꽁무니를 따라 겨울이 오고 겨울의 하얀 치마자락에 끌려 봄이 오고 봄의 연두빛 미소 뒤켠에서는 장마비 가득 움켜쥔 여름이 기다리고 있고 여름의 무더위를 걷어내며 또 가을이 오겠지. 푸른 하늘에 기대선 백양나무 가지들이 부저가락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가을, 누가 뭐래도 이젠 가을이겠지. 근데 그거 알아? 난 저렇게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보면 웬지 자꾸 울어버리고 싶다는 것을.
내가 통곡해도 가을은 오고 내가 통곡해도 가을은 가는데 먼발치에서라도 가을 푸른 하늘을 보면 나는 왜 리유없이 그저 그 하늘이 무너지도록 통곡하고 싶은 걸가.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눈물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가을은 저렇게 저혼자 깊어가는데…
인생은 이렇게 저혼자 지줄대는데…
한영남
언론출판인
시인
한영남의 작품세계
⭕ [문학공부 인생공부] <상상想翔문학아카데미> 문학방 개강~
[문학인생담] 력사의 뒤안길에서 이 땅의 영령들을 찾아 - 사학자 리광인교수와 만나다(한영남)
(서정장시) 나에게도 당신을 위해 내놓을 만한 왕관이 있어준다면
[문학평론가 김룡운선생 별세] (추모시) 물이시여 흐르는 물이시여
[작가 현춘산 세상 도전기] 새로운 도전을 앞세운 변신은 언제나 무죄이다
[문학닷컴] 한영남 제3 시집《거기에 추억은 울바자처럼 서있었네》출간
[문학닷컴] 류춘옥 시 '도쿄의 조선족'(외4수)/한영남 시평: 재팬 드림 그 실상과 허상에 대한 고발...
[남영전토템시에 대한 일가견] 주해봉 한경애 한영남 김승종
[영상시] 한영남 시 "길에 길을 물으니"/ 랑송 남향매
[평론] 한영남근작시에서 살펴본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탐구정신 (허인)
[珍藏版] 한영남 제3시집《거기에 추억은 울바자처럼 서있었네》
www.zoglo.net/weixin
조글로
조글로 웹사이트에 진입~